83엔으로 일궈낸 유통 공룡… 롯데와 함께한 신격호의 삶

기사승인 2020-01-19 17: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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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숙환으로 별세한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은 우리나라의 유통산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신 명예회장은 일제 강점기였던 1922년 경상남도 울산 삼남면 둔기리에서 빈농 집안의 5남 5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울산농고를 졸업한 이후인 1941년 93엔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했다. 

대학에 다니며 학업에 정진하던 신 명예회장을 우연히 만난 일본인 사업가 하나미쓰는 그를 높이 평가해 사업자금으로 5만엔을 빌려주게 된다. 신 명예회장은 이 돈을 바탕으로 1944년 도쿄 인근에 윤활류 공장을 세운다. 그러나 공장은 미국의 폭격을 받아 불타버리고 5만원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게 됐다. 

이듬해인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일본에 머물던 한국인들은 대부분 귀가했지만 5만엔의 빚을 갚기 위해 신 명예회장은 일본에 남았다. 우유배달과 공사장 막노동을 통해 사업 자금을 모은 신 명예회장은 1946년 도쿄에 ‘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 공장을 지어 비누 크림 등을 제조해 판매했다. 

이후 1946년 신 명예회장은 자본금 100만엔을 바탕으로 종업원 10명의 회사를 설립했다. 이 때 처음으로 ‘롯데’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롯데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비롯됐다. 

롯데는 껌에 이어 초콜릿, 캔디, 비스킷 등 사업 영역을 넓히며 종합 제과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롯데는 1959년 롯데상사, 1961년 롯데부동산, 1967년 롯데아도, 1968년 롯데물산, 주식회사 훼밀리 등 사업을 다각화하며 일본 10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신 명예회장은 1966년 한·일 수교로 투자의 길이 열리자 사업을 한국으로 확장해 1966년 롯데알미늄과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롯데는 쥬시후레쉬·스피아민트·빠다쿠키 등 히트 상품을 앞세워 빠르게 성장했다. 음료·빙과회사를 인수하고 관광·유통·건설·석유화학 사업에도 진출했다.


1973년 서울 소공동에 지하 3층, 지상 38층 규모의 롯데호텔을 준공했다. 1974년과 1977년에는 칠성한미음료와 삼강산업을 각각 인수해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현 롯데푸드)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1979년에는 롯데호텔 옆에 롯데백화점을 열고 유통업에 진출했다. 평화건업사(현 롯데건설)와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을 인수했으며 1980년 한국 후지 필름, 1982년 롯데 캐논·대홍기획 등을 설립하며 사업 영역을 넓혔다.

롯데그룹은 1980년대 고속 성장기를 맞았고, 연이은 인수·합병(M&A)을 통해 오늘날 국내 재계 서열 5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1년부터는 롯데그룹 총괄회장 자리에서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역할을 담당했다. 2017년 초에는 숙원사업이었던 롯데월드타워도 개장했다.

83엔으로 일궈낸 유통 공룡… 롯데와 함께한 신격호의 삶

하지만 2015년 7월 장남인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경영권 분쟁을 벌이면서 신 명예회장의 시대는 저물기 시작했다. 신동빈 회장이 2015년 7월 16일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이사회에서 대표이사 부회장에 선임돼 한·일 롯데의 수장으로 자리매김하자 신동주 전 부회장은 신 명예회장을 앞세워 일본 롯데홀딩스에서 신동빈 회장을 해임을 시도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후견인으로 있던 신 명예회장은 결국 이 사건으로 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전격 해임되는 수모를 겪었다.

신 명예회장은 2016년 호텔롯데 대표와 그룹의 모태인 롯데제과 사내이사에서 물러났고, 2017년에는 롯데쇼핑·롯데건설, 롯데자이언츠, 일본 롯데홀딩스, 롯데알미늄 이사직을 내려놓으며 한·일 롯데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신 명예회장은 지난해 11월 26일 탈수 증세로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한 후 지난해 12월10일 퇴원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숙소로 돌아갔지만, 지난 18일 다시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다. 좀 더 원활한 영양공급과 이에 따른 적절한 치료를 위해 재입원을 결정했다.

이후 고령으로 인한 여러 증세를 치료하던 중 1월 19일 오후 4시 29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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