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다크 워터스’ 희망적 진실과 절망적 현실이 교차할 때

기사승인 2020-03-10 19: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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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시골 마을의 한 농부가 찾아와 자신의 소 190마리가 떼죽음 당했다고 털어놓는다. 농장 근처 거대 화학기업의 화학약품 때문이라는 주장을 변호사는 흘려듣는다. 이미 기업은 자신들에게 문제가 없다는 미국 환경조사국의 자료까지 내놓은 상황. 뚜렷한 증거도 없는 농부의 이야기를 흘려듣던 변호사는 직접 농장을 방문한 순간 상황의 심각성을 직감한다. 로펌에서도 특이한 변호사로 통하던 그가 듀폰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하며 어두우면서 길고 깊은 사건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다크 워터스’(감독 토드 헤인즈)는 세계 최대의 다국적 화학기업 듀폰과 20년이 넘는 법정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변호사 롭 빌럿(마크 버팔로)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듀폰사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수십 년간 사용한 화학물질이 퍼플루오로옥타노익 에시드(PFOA)가 6가지 중증 질병을 유발하는 환경오염 물질이라는 점을 밝혀내면서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영화가 주목하는 건 그 이후다. ‘다크 워터스’는 선한 마음으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끝에 기업 비리를 고발하는 실화 영웅 스토리로 흘러가지 않는다. 주인공이 주목하는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과정이 초·중반부를 이룬다면, 후반부는 잘못된 것을 옳게 돌려놓으려고 애쓰는 주인공의 사투가 그려진다. 전자가 위대한 발견이자 업적이라면, 후자는 지난하고 무력한 싸움이다. ‘다크 워터스’는 영화적인 이야기가 명확한 전반부를 충실히 그려내면서 후반부로 달려간다. 결국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곳에 있다는 듯이.


[쿡리뷰] ‘다크 워터스’ 희망적 진실과 절망적 현실이 교차할 때

대부분의 국내 관객이 잘 몰랐을 이야기다.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영화 같은 일이라고 생각할 여지도 있다. 하지만 영화 중반부에 등장하는 엄기영 앵커의 MBC ‘뉴스데스크’ 장면을 보면 더 이상 남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극장에 걸려 있는 ‘인류의 99%는 이미 중독됐다’는 포스터의 문구도 예사롭지 않다. 2020년에도 현재 진행형인 주인공의 싸움이 내 싸움이 되는 순간 영화의 맥락은 달라진다. 실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기업 앞에 한 명의 개인이 얼마나 무력해지는지, 진실과 위험 물질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주변 사람들과 국가의 태도는 어떤지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영화의 제목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언뜻 첫 장면에서 깊은 밤 유해물질이 살포되는 호수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불투명한 거대 기업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 어디까지 얼마나 뿌리내렸는지, 얼마나 깊고 험한지 알 수 없는 사건 자체를 떠올리게 한다. 마치 영화가 ‘당신이라면 이 어두운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겠냐’고 질문하는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국민 모두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지금 시기에 보면 좋을 영화다. 오는 11일 개봉. 12세 관람가.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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