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수급제 10년 ①] 엉뚱한 선정기준,빈곤층 울린다

기사승인 2009-03-16 01:3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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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수급제 10년 ①] 엉뚱한 선정기준,빈곤층 울린다


[쿠키 사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현실과 거리가 먼 선정 기준이다. 신빈곤층으로 전락한 상당수가 선정 기준을 맞추지 못해 사회 안전망 밖에서 시름하고 있다.

◇"차 있으세요?"=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러 주민센터를 찾은 사람들이 가장 처음 듣는 말은 "차 있으세요?"다. 차가 있으면 선정되기 힘든 규정 때문이다. 경기도 평택시 이재희(가명·57·여)씨가 바로 그런 경우다. 이씨는 관광지 근처 컨테이너에서 먹고 자며 간단한 음식을 판다. 지체장애 3급인데다 수입이 적은 사실을 인정받아 2006년 7월 수급자가 됐다. 하지만 4개월 동안 들어오던 돈은 같은해 10월 갑자기 중단됐다. 이씨 명의를 빌린 지인이 중형차를 구입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수급자 선정 기준은 생업용이 아닌 승용차를 보유하면 매달 상당한 소득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소득 환산율이 일반 재산은 월 4.17%, 금융 재산은 월 6.26%이지만 승용차는 월 100%에 이른다. 차를 평가한 값이 300만원이면 매월 소득 300만원이 있는 것으로 본다. 수급자가 되고 싶으면 차를 팔라는 얘기다.

명의 도용, 대포 차량은 고소·고발장이나 도난 신고 확인서를 요구한다. 류정순 빈곤문제연구소장은 "승용차 명의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수급자가 되는 사람도 있다"면서 "모르는 사람만 당하는 희한한 규정"이라고 지적했다.

◇인연 끊은 아들 때문에…=현장의 사회복지사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부양가족 기준 만큼은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 지침은 자식이 젊고 건강하면 부모를 부양할 능력이 있다고 보고 수급 대상에서 제외한다. 하지만 꼼꼼히 조사하면 부모와 연락을 끊고 사는 자식이 상당수다.

이재희씨의 경우 장사가 안 되자 차 문제를 해결하고 지난달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으나 또 탈락했다. 이번에는 서른 살이 넘은 아들이 발목을 잡았다. 연락도 안 된다고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기도 남양주 이영학(가명·75)씨는 2004년 2월 수급자가 됐다가 2년8개월 만에 탈락했다. 아들 4명의 소득이 이씨를 부양할 만큼 늘었다는 판단이 이유다. 이씨는 노령연금으로 받는 월 8만4000원과 소일거리로 번 돈으로 겨우 산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결혼한 아들 가구에 거주하는 부모도 별도 가구로 인정하는 등 기준을 완화했다. 그 전에는 딸 가구에 거주하는 부모만 별도 가구로 인정했다.그러나 자식과 떨어져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기준 완화 효과는 제한적이다.

◇집 팔려야 수급자 선정=팔리지도 않는 재산 때문에 수급자 선정이 어려운 가정도 있다. 경기도 부천 임건익(가명·46)씨는 지물포를 운영하다 지난해 8월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했다. 가장이 쓰러지자 가족 생계가 막막했다. 주민센터에서는 수급자가 되려면 집을 팔아야 한다고 했다. 집을 내놨지만 아직까지 팔리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일정 가격 이상의 집이나 전셋집이 있으면 수급자 선정에서 제외한다. 대도시에서 보증금 5400만원이 넘는 전셋집이 있으면 재산이 어느 정도 있다고 간주한다. 5400만원과 실제 전셋값 사이 차액을 재산으로 보고 월 소득으로 환산한다. 중소도시는 3400만원, 농어촌은 2900만원이 기준이다. 이 기준은 그나마 최근 상향 조정됐다.

◇신빈곤층 양산하는 규정=사회복지 전문가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수급자 선정 규정을 바꾸지 않고는 신빈곤층을 기초생활수급 제도로 떠안기 힘들다고 지적하고 있다. 참여연대 등 진보 단체들은 수급자 선정의 핵심 기준인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해야 신빈곤층 구제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류정순 소장은 "4인 가구 평균 소득 대비 4인 가구 최저생계비 비율은 1998년 45%였으나 지난해 30.8%로 줄었다"고 강조했다. 다만 정부 지원에만 기대고 일을 하지 않는 빈곤층을 양산할 수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권기석 임성수 김아진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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