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자격 불문, 선택지는 캐셔·돌봄노동·방문교사뿐”

[여성노동 망테크]④ 비정규직 일색·경력 무시→재취업 일자리 ‘질적 하락’

기사승인 2021-08-08 0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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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여성 노동자의 낙오가 가속화하고 있다. 팬데믹을 계기로 성차별적 노동시장의 고질병들이 두드러지면서다. 성별 직종분리는 임금격차를 심화시켰다. 임금 격차는 여성의 경력단절을 야기했다.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들은 비정규직으로 수렴됐다. 일하는 여성들이 휘말리게 되는 ‘망테크’(망하는 길)를 따라가 봤다.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 ‘여초’업계 저평가
[여성노동 망테크]① 성별 따라 직종분리→임금격차

경력단절의 서막 “남편이 나보다 많이 버니까”
[여성노동 망테크]② 성별임금격차→경력단절 양산

“취준이 불맛이라면, 경단녀 취준은 핵불맛”
[여성노동 망테크]③ 경력단절→독박 가사노동·육아→“취준 틈 없어”

“경력·자격 불문, 선택지는 캐셔·돌봄노동·방문교사뿐”
[여성노동 망테크]④ 비정규직 일색·경력 무시→재취업 일자리 ‘질적 하락’

“경력·자격 불문, 선택지는 캐셔·돌봄노동·방문교사뿐”
그래픽=이정주 디자이너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저는 대학을 졸업했고, 경력과 자격요건도 충분히 갖춘 상태였어요. 하지만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지 않은 40대 여성에게 허락되는 선택지는 딱 세 가지였죠. 마트 계산원, 학습지 방문교사, 공공기관의 단기 돌봄노동자.”

여성들은 경력단절 이전보다 질적으로 하락한 일자리에 재취업한다. 사회서비스업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했던 윤 모씨는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을 경험했다. 두 아이가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재취업에 나선 그는 학위, 경력, 자격증을 갖추고 교육이수 이력을 재정비했다. 하지만 접근할 수 있는 채용공고에 정규직은 없었다.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도 찾기 어려웠다. 윤씨가 경력단절 이전과 같은 업종에 정규직으로 재취업하기까지는 꼬박 10년이 걸렸다. 그동안 윤씨 주변의 경력단절 동지들은 학위가 없다면 마트로, 학위가 있다면 방문학습지 지점으로 흩어졌다. 
 
여성들은 20대 후반부터 정규직 일자리에서 속속 사라진다. 지난해 한국노동사회연구원의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에 따르면 지난해 정규직 여성이 가장 많은 연령대는 25-29세(72만4000명)로 파악됐다. 이후 연령대에서 정규직 여성은 30세-34세 600만명, 35-39세 55만8000명, 40-44세 55만1000명으로 가파르게 감소했다. 45-49세의 정규직 여성은 62만8000명으로 반등했지만, 정점을 기록했던 20대 후반의 수치보다 10만명을 밑돌았다. 이와 정반대로 정규직 남성의 연령별 분포는 20대 후반부터 급격히 증가해 40대 후반에 정점을 찍었다. 정규직 남성은 25-20세 72만4000명, 30-34세 98만명, 35-39세 112만5000명, 40-44세 1087명, 44-49세 113만2000명 등으로 집계됐다.

50대 중반부터 비정규직 여성의 수가 정규직 여성을 앞지른다. 50-54세 비정규직 여성은 51만3000명, 정규직 여성은 56만1000명이다. 이후 55-59세에서는 비정규직 여성이 50만2000명으로 증가하지만, 정규직 여성은 39만5000명으로 대폭 감소하는 교차가 나타난다. 통계에 드러난 단서로 정규직 기혼 여성의 삶을 재구성하면, 30대 초반에 퇴사해 임신, 출산, 육아를 거쳤다. 아이가 혼자서도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크면 40대 후반부터 재취업에 나섰다. 50대에 비정규직으로 노동시장에 돌아왔다.

이에 여성들은 재취업을 해도 경력단절을 끝낼 수 없는 실정이다. 기존 경력, 전공과 관련이 없고 고용안정성도 낮은 일자리에 정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시여성능력개발원이 서울시에 거주하는 30~54세 여성 중 경력단절 경험이 있는 취업 여성 10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0.5%는 1년 이내 현재 일자리를 그만두겠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이 제시한 이유 1위는 ‘직장이나 직무가 전망이 없어서’(16%), 2위는 ‘근무조건 또는 작업환경이 나빠서’(15.7%)였다. 응답자 과반은 ‘경력단절 이전의 업무경력을 인정받지 못했다‘(51.9%)고 답했다.

기업 내 암묵적 성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한, 경력단절 여성이 경험하는 일자리의 질적 하락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모윤숙 전국여성노동조합 사무처장은 “여성에게 육아휴직과 복귀가 보장되는 환경은 몇몇 대기업에 다니는 일부 정규직 직장인들만의 이야기”라며 “우리나라 직장인의 대다수는 중소기업에서 일하는데, 중소기업 근로자의 육아휴직 사용 비율은 대기업의 절반 수준이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기업 규모별 상용직 육아휴직 비율을 보면, 2019년 대기업 여성은 24.1%, 중소기업 여성은 12.4%가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그는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여성을 쉽게 포용하지 않는 조직문화가 경력단절 여성을 더욱 열악한 일자리로 내몬다”며 “직장 문화를 쇄신하지 않으면 법과 제도를 아무리 개선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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