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로 끝나는 반쪽 상담…극단 시도 청년들 ‘방치’된다 

[자살예방의날②] 응급실 가도 집으로 돌려보내

기사승인 2021-09-09 05: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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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20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한국에서 연간 극단적 선택 사망자 수는 1만3799명으로, 하루에 37.8명꼴이다. 우려되는 점은 젊은층에서의 자살 시도와 자살 사망자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30대에게 집중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불안 요인, 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등은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끼친다. 9월 10일 ‘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국내 실태를 분석하고 청춘들의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짚어본다. 

도움기관 연계·고위험군 발굴 어려워

‘재시도’ 막는 사례관리, 병원간 연계 필요


1393 응대율 70~80%, SNS 활용 연구 진행


전화로 끝나는 반쪽 상담…극단 시도 청년들 ‘방치’된다 

[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국내 20‧30대 청년들의 극단적 시도가 늘고 있는 가운데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해 ‘재시도’로 이어지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자살시도자의 사후관리는 ‘재시도’ 예방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재 정부와 함께 자살예방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은 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자살시도자의 재시도를 예방하고자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의 주목적은 시도자의 지역사회 연계로, 응급실에 사례관리 전담인력을 배치하고 응급의학과‧정신건강의학과와 협업해 적시 치료와 사후관리를 돕는다. 총 4회의 서비스 제공을 통해 고위험군의 응급상황을 막고 이후 지속적인 관리를 지원한다.

재단이 응급실 내원 자살시도자 2만1246명 중 사후관리에 동의하고 서비스를 4회 이상 완료한 8069명을 대상으로 효과를 분석한 결과, 사후관리를 진행할수록 자살 및 정신건강 관련 지표가 호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위험도가 높은 사람의 비율도 1회 접촉시 14.4%에서 4회 접촉시 6.5%로 크게 낮아졌다.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서울시보라매병원 송경준 응급의학과장은 “사망하게 되면 건강보험이 말소되기 때문에 건보 자료를 토대로 우리가 추적관리 했던 자살시도자와 사례관리를 받지 않은 시도자의 사망사례를 분석해봤다. 그 결과 추적관리를 받지 않은 시도자의 사망건수가 많았다”며 “또 사후관리는 총 4번정도 시행하는데 3~4번 받은 사람의 효과가 더 좋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사업이 정부 예산으로 진행되다보니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병원 응급실에 시도자가 내원할 경우 사후관리를 받지 못하고 퇴원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없는 의료기관이라면 적절한 조치가 어려울 수 있다고 송 과장은 지적했다. 

그는 “어느 병원을 가도 사례관리를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연계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그리고 연계하는 행위에 보험수가를 적용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면서 “지금은 정부 예산을 받아 사례관리자를 고용하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중소병원들이 자살시도자를 집에 보내지 않고 연계할 수 있도록 유도하려면 연계 행위에 보험수가를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사례관리를 진행하는 병원에도 그에 따른 수가를 적용토록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물론 거쳐야할 과정들이 많아 단기간에 안 되겠지만 작은 병원에서 놓치고 있는 많은 시도자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정부는 자살시도자가 사후관리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응급실을 방문하더라도 사례관리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으로 연계하는 모형의 시범사업을 지난 3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서일환 보건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장은 “지난 3월 인천시 관내 응급의료기관 및 응급의료시설들과 함께 해당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여기에는 사례관리, 의뢰행위에 대한 수가 적용도 포함됐다”며 “2년 정도 사업을 진행한 후 판단해 반영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화 상담 특성상 내담자 추적 어려워…도움기관 연계로 이어져야

최근 코로나19 영향으로 비대면 상담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복지부 운영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을 포함한 전화상담 서비스는 전화로 그치는 경우가 많아 ‘자살 고위험군’ 발굴에 어려움이 존재한다.

국내 최초 민간 전화상담기관인 한국생명의전화에 따르면, 지난해 12월31일 기준 1588-9191 전화상담은 104만8853건, SOS생명의전화는 8364건, 사이버상담은 3만2754건 발생했다. 

이 중 1588-9191은 30~60대, SOS생명의전화는 20~30대, 사이버상담은 10~30대가 많았고, 20‧30대의 경우 정신건강, 가족, 진로, 경제 문제를 호소하는 사례가 다수를 차지했다. 

생명의전화 관계자는 “하지만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전화, 사이버상담의 특성상 내담자가 어려움을 극복했는지를 추적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난해 코로나19로 1393 전화상담 수요가 폭증하고 전화 연결이 잘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었다. 다행히 전문 인력이 확충되면서 서비스 질 향상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전화만으로는 문제해결이 참 어렵다”며 “자살이라는 것은 경제, 건강, 대인관계 등 여러 원인이 복합돼 위기에 빠진 상태이기 때문에 전화 상담이 플랫폼이 되어 치료서비스로 연결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백 교수는 “치료나 심리상담, 경제적 지원 등 실질적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있다. 다양한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은 전화 상담을 포기하기도 한다. 즉 현재의 전화 상담은 고위험군을 발굴해 끝까지 책임지는 시스템이 아니”라며 “이 서비스가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전반적인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고 개선책을 제시했다. 

이어 그는 “지금은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자살예방센터 전화연결로 그친다. 물론 고위험군에 대해서는 도움기관 담당자가 직접 집에 방문하고 있지만 현재 센터 인력으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하기엔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직접 찾아가서 연계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 된다면 실질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백 교수는 청년들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SNS를 활용한 상담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30대 자살시도자가 늘고 있는 만큼 맞춤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점에서 볼  때 기존의 자살예방상담은 전화를 중심으로 제공했지만 젊은 사람들은 SNS나 문자를 통해 상담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청소년의 경우 교육부에서 SNS를 통한 상담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이상의 연령대에는 SNS 기반 상담 사업이 없다.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만큼 온라인 상담을 활성화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정부 “SNS 상담체계 구충 중, 지역 센터 인력 확충 필요”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는 1393 인력을 확충하는 한편 SNS 상담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서일환 과장은 “원래 26명으로 시작한 1393 인력을 금년 57명까지 확충하기로 했고 현재 10명이 충원된 상태다. 또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해 임시로 상담센터를 운영해 응대율을 높였다”며 “지난해 8, 9월 응대율은 30%대였는데 지금은 70~80%정도까지 나오고 있다. 내년도 정부안으로는 80명까지 확충하는 것으로 짜여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SNS 상담체계를 만들기 위해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결과가 나오는대로 시스템을 구출할 계획이지만 고려해야 할 상황들이 많다”면서 “결국 화면에 (기록이) 남기 때문에 보안상 문제도 있고 상담 인력이 들어가는 부분도 있다. 또 익명이라는 점을 악용하는 사례를 통제할 필요가 있어서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는 연구결과를 보고 고민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다만 서 과장은 “상담사가 내담자들을 찾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아주 위급하신 분들은 위치추적을 해서 소방이나 경찰이 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지역 내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자살예방센터로 전화 연결 또는 센터에 사례관리를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상황 등으로 국민들의 정신건강이 악화되고 있고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에 정부도 제도적으로 개인동의 부분을 완화하거나 고위험군을 발굴할 수 있도록 하는 여러 작업들을 하고 있지만 그분들을 관리하는 지역 센터 인력이 많이 부족하다. 예산이 충분히 확보돼 인력을 확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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