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치료자 급증에 ‘성분명 처방’ 논쟁 재점화

기사승인 2022-03-01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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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치료자 급증에 ‘성분명 처방’ 논쟁 재점화
한 약국에서 코로나19 자가진단키트가 판매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박효상 기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재택치료자가 급증하면서 ‘성분명 처방’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약국가는 성분명 처방의 효용성에 공감하고 있지만, 안전성에 대한 의료계 우려도 적지 않다.

성분명 처방은 의사가 처방전에 의약품의 성분명을 적어 발행하는 제도다. 의사가 특정 의약품의 상품명으로 처방을 하면, 약국에서는 원칙적으로 해당 제품을 환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처방전에 성분명만 기재되면 약국에서는 상표에 한정 없이 그와 성분과 함량이 동일한 제품을 제공하면 된다. 가령, 처방전에 로슈의 여드름 치료제 상품명인 ‘로아큐탄캡슐’이 기재되면 약국은 해당 제품을 판매해야 한다. 그 대신 ‘이소트레티노인10mg’으로 성분과 함량이 기재되면 이에 해당하는 여러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 

약국가는 오랫동안 성분명 처방의 이점을 피력해 왔다. 약국에서 상표에 구애를 받지 않고 환자에게 필요한 의약품을 제공하면, 폐기되는 의약품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제품 조제를 고집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제약회사와 일부 의료기관 사이의 불법 리베이트 문제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이 코로나19 재택치료자 급증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약국이 업무 과부하를 피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약에 대한 환자의 기본적인 이해를 돕는다는 점도 약국가가 꼽는 성분명 처방의 장점이다. 의약품의 상표에 익숙한 대부분의 환자들은 자신이 복용하는 약의 성분과 함량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초기에는 발열시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을 복용하라는 보건당국의 안내에 따라 약국가에 소동이 발생하기도 했다. 성분·함량·제형이 같은 아세트아미노펜 제제 제품이 시중에 70개나 공급되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타이레놀만을 고집해 해당 제품의 품귀현상이 빚어졌다. 

약국가의 견해와 달리 의사들은 성분명 처방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의사가 환자를 직접 진료한 결과에 근거해 처방한 의약품을 약사가 다른 제품으로 변경해 조제하면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으며, 약화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의사의 판단과 권한이 침해되는 제도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성분명 처방이 취지와 달리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의사들의 우려다. 박수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약사가 경제적 판단을 토대로 구비한 일부 복제의약품들 중에서 환자에게 특정의약품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상황이 초래될 것”이라며 “의약품의 효능과 상관없이 약국에 쌓여있는 재고의약품 처분에 악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로나19 환자 급증 국면에 적절한 대응책은 성분명 처방이 아니라 ‘한시적 원내조제’와 ‘선택분업제’라는 제안도 나왔다. 원내조제는 의료기관에서 진료와 의약품 처방은 물론 조제까지 모두 담당하는 방식이다. 선택분업은 환자가 의료기관과 약국 중 의약품을 조제받을 곳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현행 의약분업을 일부 완화하는 방식이다. 

박 대변인은 “코로나19 먹는 치료제 ‘팍스로비드’의 경우, 병용금기 의약품과 특정질환에 대한 용량 감량 등 투약 요건이 많으며, 고령이나 면역저하자인 경우 급속하게 상태가 악화될 수 있어 환자 상태에 따라 신속히 선제적으로 처방·투약해야 한다”며 “환자를 직접 진료하고 적정한 의약품을 처방하는 과정에서 그 치료효과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담당의사가 복제의약품의 약효를 설명해 주고, 그에 따라 환자가 의약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의사와 약사의 견해차가 상당한 만큼, 성분명 처방의 제도화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성분명 처방과 유사한 ‘대체조제’ 제도가 시행 중이지만,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 대체조제는 병원에서 처방한 약이 약국에 없을 때 활용되는 제도다. 처방전에 명시된 제품이 아니지만, 성분·함량·제형이 같아 해당 제품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상표의 약을 환자에게 제공하는 방식이다. 약사가 대체조제를 하려면 의사에게 이 사실을 반드시 통보해야 한다. 또한 의사가 처방전에 ‘대체불가’라고 표기했다면 약사는 대체조제를 할 수 없다. 전국 약국의 전체 청구건수 대비 대체조제 청구건수로 산출한 대체조제율은 지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평균 0.24%에 그쳤다.

대체조제를 성분명 처방 수준으로 확장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구체화되지는 못했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 대체조제를 ‘동일성분조제’로 명명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제도를 관리해 의사와 약사간 정보 공유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의 약사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지난해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논의됐지만 불발됐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