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머는 게임 회사 허락을 받아야 할까[쿠키칼럼]

기사승인 2022-10-13 10: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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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원
1995년생. 초등학생 때부터 독학으로 인디게임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는 어느새 3년차 게임회사 대표가 되었다. 성균관대학교 글로벌리더학부를 졸업하고, '아류로 성공하느니 오리지널로 망하자'는 회사의 모토를 받들어 올해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자퇴했다. 게임 기획자로서 '허언증 소개팅!' '중고로운 평화나라'  '서울 2033' 등 기존에 없던 소재와 규칙의 게임을 만드는 것을 즐긴다. NDC, G-STAR, 한국콘텐츠진흥원,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지역 고등학교 등 다양한 곳에서 인디게임 기획과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장르에 대해 강연해왔다.
스트리머는 게임 회사 허락을 받아야 할까[쿠키칼럼]
이유원 반지하게임즈 대표


[쿠키칼럼] 
스트리밍(인터넷에서 영상을 생중계하는 행위)과 게임은 무척 친하다. 게임 개발사와 퍼블리셔는 스트리밍을 통해 잠재적 우호 고객을 만들 수 있다. 이를 통해 막대한 마케팅 효과를 얻을 수 있고, 대세 감을 형성할 수 있다. 스트리머에게 게임은 훌륭한 방송 소재이자 수입원이 된다.

시청자와 게이머는 게임 스트리밍으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현명한 게임 소비를 위한 도움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대다수 게이머는 게임을 처음 플레이하기 전 관련 스트리밍을 찾아보는 경우가 많다. 과금 여부를 결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 같은 소규모 인디게임 개발사에서 스트리밍은 한 줄기 구원의 빛과 같다. ‘중고로운 평화나라’를 출시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였다. 반지하 자취방에 누워있는데, 지인에게 카톡이 왔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트리머가 방송 중 ‘중고로운 평화나라’를 하고 있다고 말이다. 너무나도 신기한 마음에 방송에 들어가서 후원을 하고, 스트리머와 시청자들과 함께 한참을 떠든 기억이 난다. 이날을 기점으로 다운로드 수와 노출률이 크게 늘었고, 직업으로써 게임 기획자를 고려하게 된 계기가 됐다.

실제로 소규모 인디 개발사의 경우 마케팅 자원이나 노하우가 전무해 노출 창구를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 많은 게임 스트리머들은 좋은 인디게임들을 수면 위로 견인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스트리머의 업무 특성상 늘 새롭고 참신한 게임에 목말라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바람직한 게임 문화 정착과 건강한 게임 생태계를 바라는 그들의 책임감과 의지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게임 스트리밍의 법적 성질에 대해 명쾌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장이 크고, 종사자들도 많으며, 게임 문화와 스트리밍 문화 각각에 떼놓을 수 없는 큰 영향을 주고 있음에도 말이다. 어려워 보이지만, 간단한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면 게임 스트리밍을 즐기는 우리가 한 번쯤은 떠올려봤을 질문이다.

“스트리머는 게임 회사 허락을 받아야 할까?”

‘퓨디파이(PewDiePie)’는 스웨덴 출신의 인기 유튜브 콘텐츠 제작자로, 현재 1.11억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최고의 ‘스타’다. 새로 나온 게임을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플레이하고, 캠코더를 통해 자신의 반응을 보여주고, 자막과 편집을 더 하는 등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상들은 많은 후발 게임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일종의 정석이 되었다.

그러나 ‘악동’, ‘괴짜’ 이미지에 너무 몰입한 탓일까. 몇 년 전, 퓨디파이는 그의 언행으로 인해 끊임없는 구설에 오르고 있던 시기가 있었다. 2017년 9월, 실시간 게임 스트리밍 중 퓨디파이의 입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이 튀어나왔다. 그는 발언 직후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라며 사과했지만, 영상에 기록된 그의 행동은 많은 사람의 분노를 샀다.

우리가 살펴보려는 진짜 문제는 같은 해 9월 10일, 숀 배너먼이라는 게임 작가의 트윗에서 나타났다. 숀 배너먼은 게임 제작사 캄포산토 스튜디오에서 신작 게임 ‘파이어워치(Firewatch)’를 막 출시한 참이었다. 이 작품은 산불 감시 요원인 주인공이 미국의 국립공원을 순찰하며 그곳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사람들의 내면을 관찰하는 혁신적인 어드벤처 게임이다.

퓨디파이 역시 파이어워치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한 바 있었는데, 숀 배너먼은 퓨디파이의 인종차별 사태에 대해 크게 분노하며 DMCA(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에 따라 그의 파이어워치 영상을 모두 내리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유튜브는 즉시 퓨디파이의 파이어워치 관련 영상들의 게시를 전면 중단했다.

숀 배너먼이 언급한 DMCA는 구체적으로는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의 면책 요건을 규정한 DMCA 제512조를 의미한다. 해당 조항은 네트워크상의 저작권 침해 자료에 대한 배상 책임으로부터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를 면책시키기 위한 것으로 권리 침해 여부의 판단 및 평가의 책임을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가 아닌 저작권 소유자와 사용자에게 전환하는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의의가 있다.

따라서 저작권 침해가 발생했을 때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는 제512조 (c)항, 즉 “게시물 제거 조항(takedown provision)”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 저작권법 제102조에도 유사한 내용으로서 존재한다.

쉽게 말하자면, 숀 배너먼이 유튜버에게 “내 게임의 저작권을 침해한 영상이 유튜브 속 퓨디파이 채널에 있는데, 이걸 지우지 않으면 유튜브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같은 조치가 가능하게 하려면 근본적으로 캄포산토 스튜디오에서 퓨디파이의 파이어워치 콘텐츠에 대해 저작권 침해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니, 그럼 게임 스트리밍은 사실 다 저작권 침해였던 것인가?

게임을 바탕으로 만든 콘텐츠들은 모두 2차 창작물에 해당한다. 2차 창작물의 창작자 역시 저작권을 가지나, 그것이 본 저작물의 저작권을 침해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원저작자와의 광고 계약이나 파트너십 체결과 같은 별도의 합의가 없는 한 콘텐츠 대부분은 원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 퓨디파이 역시 캄포산토 스튜디오와 특정한 계약이나 저작권 사용에 대한 합의를 거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퓨디파이의 파이어워치 콘텐츠 유튜브 업로드는 캄포산토에 대한 명백한 저작권 침해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캄포산토가 인종차별 사건으로 인해 퓨디파이의 저작권 이용 계약을 취소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작권 침해는 퓨디파이가 처음 영상을 제작할 때부터 이미 발생했으며, 캄포산토는 인종차별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묵인해왔던 자사 저작물 저작권의 침해를 주장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내막을 잘 모르고 이 사건을 바라본다면 흔한 고용주-고용자 관계에서의 사건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우리에게 게임 2차 창작물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는 현실에 비해 뭔가 개운치 못한 점들을 드러낸다.

주된 문제점은 앞서 언급했듯이 대부분의 게임 2차 창작물들의 저작권법상의 지위가 굉장히 불안하다는 것이다. DMCA에서든 우리나라 저작권법상에서든 원저작자의 허가 없이 만들어진 2차 창작물들은 명백히 원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

그래서 별도의 계약이나 합의가 없는 한 게임 개발사와 같은 원저작자의 요청이 있다면 콘텐츠 제작자들의 저작물은 즉시 게시 중단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손해배상 책임까지 물 수 있다. 엄청난 수익과 경제적 및 사회적 파급 효과를 발생시키는 그들의 위상에 비하면 비교적 초라하고 위태로운 모습이다.

명백한 저작권 침해임에도 이러한 기형적인 구조가 발생한 데에는 기업들의 암묵적인 용인이 있었다. 나의 경험을 말해줬듯이, 원저작자 입장에서 게임 2차 창작물들의 발생을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들어 가로막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일이 2차 창작물을 원저작자인 게임사로부터 허가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오히려 예상치 못한 마케팅 이득을 놓칠 수 있고(인터넷 유행이 언제 어디서 터질지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사람들이 기대하는 현대 정보 사회에 걸맞지 않게 콘텐츠 제작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원저작자와 저작권 침해자는 저작권 침해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상태인 걸 알고 그것을 암묵적으로 지켜왔다.

따라서 이 문제점은 곧 여러 가지 작은 문제들을 또다시 낳게 된다. 이번 사례에선 캄포산토가 ‘인종차별 발언에 대한 반대’라는, 충분히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이유에 의해 비록 그 수단과의 관련성은 없음에도 게시 중단을 요청하였지만, 이것이 정당한 계약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파기가 아닌 이상 비합리적이고 부도덕한 이유에 의해 게시 중단이 악용되더라도 기존의 게임 콘텐츠 제작자들은 상당히 취약한 지위에 놓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게임사가 “저작권 침해로 게시 중단을 요청하겠다”라고 윽박지르면서 정작 저작권과는 아무 관련 없는 요구나 보복을 하더라도, 콘텐츠 성행 여부에 자신의 많은 것들이 걸린 콘텐츠 제작자들은 ‘을’의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다행히 게임업계와 법조계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차츰 인지해가고 있다. 최근 일부 게임 제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게임의 초입이나 엔딩 부분에 스트리밍 가능 여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구체적인 게임 내 구성 요소들의 저작권에 대해 명시한다. 2021년 겨울, 한국저작권위원회 역시 ‘저작권동향’을 통해 “커지는 게임 스트리밍의 인기를 보았을 때 계속해서 저작권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어렵다”라며 이 문제를 짚은 적이 있다.

저작권법은 문화와 산업의 향상과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한다. 게임과 스트리밍, 두 문화와 산업이 걸림돌 없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스트리머뿐만 아니라 수많은 게임 및 스트리밍 팬들의 관심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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