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고작 5시간 쉬는 제가 누구냐면요 [시간빈곤연구소]

기사승인 2022-12-27 0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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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고작 5시간 쉬는 제가 누구냐면요 [시간빈곤연구소]
한부모 이희원씨는 아트딜러(미술품 중개인)와 보험설계 등의 업무를 병행한다. 보다 효율적인 아트딜러 업무를 위해서는 학위가 좀 더 필요하다. 시간을 쪼개 방송통신대학에 다니고 있다. 이희원씨 제공 

하루 24시간, 8만6400초.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어떤 이들의 시간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시간빈곤자 이야기다. 일주일 168시간 중 개인 관리와 가사, 보육 등 가계 생산에 필요한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이 주당 근로시간보다 적으면 시간빈곤자가 된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다양한 시간빈곤자 중 한부모에 주목했다. 생업과 양육, 가사를 모두 짊어진 한부모는 시간을 쪼개가며 1인 3역을 하고 있다. 찰나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는 사람들. 시간빈곤에 빠진 한부모의 목소리를 다섯 편의 기사에 담았다. [편집자주]

아이가 입어야 할 체육복을 빨고 밀린 설거지를 했다. 집안일을 마치니 어느새 자정이다. 책상 앞에 앉아 방송통신대 강의를 틀었다. 업무에 필요한 공부가 한가득이다. 강의가 끝나면 낮에 다 처리하지 못한 보험 설계 업무를 시작한다. 스르르. 씻고 자야 하지만 어느새 눈이 감긴다. 중학생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 이희원(43·여)씨는 이날 단 1분의 자유시간도 없었다.

일주일은 168시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그러나 공정하지는 않다. 시간은 일과 가사, 양육을 모두 홀로 책임지는 한부모에게 야박하다. 

2018년 발표된 ‘시간빈곤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취업자는 일주일에 평균 46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사용한다. 15.9시간을 가사를 돌보는 데 쓴다. 먹고 자고 씻는 기본 활동에는 61.4시간이 든다. 나머지 44.7시간은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자유시간이다. 

일주일에 고작 5시간 쉬는 제가 누구냐면요 [시간빈곤연구소]
한부모 이희원씨와 김진주씨의 일주일 시간표. 수면 및 개인관리, 근로, 가사, 자유 시간 등을 분류해 정리했다.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지난 10월 한부모들의 시간표를 살펴봤다. 매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까지 몇시에 어떤 일을 했는지 물었다. 이를 표로 작성해 정리했다. 기본 활동, 근로, 가사, 자유 등으로 분류했다.

10월12일부터 같은 달 18일까지 일주일간 이씨의 시간표를 살펴봤다. 이씨는 전체 168시간 중 수면 및 식사 등 기본 활동에 44시간을 썼다. 수면 시간은 극도로 부족했다. 하루에 고작 3~4시간을 잤다. 식사를 거르는 일도 다반사다. 근로시간은 77.5시간이다. 평일에는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했다. 프리랜서에게 시간은 곧 돈이었다. 가사에도 41시간을 할애했다. 이씨의 자유시간은 일주일에 단 5.5시간. 아이와 텔레비전으로 영화를 본 게 끝이다. 일주일 중 사흘은 자유시간이 없었다.

적은 자유 시간도 마음 편히 쓰지 못했다. 일요일이었던 10월16일, 아픈 아이를 돌보며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이씨는 이날 오후 11시 일과를 설명하며 “내일 해야 할 업무를 찾아보다가 잠깐 멍때렸던 것 같아요. 머릿속에 걱정이 조금씩은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걱정에 멍하니 있던 30분. 이날의 자유시간이 됐다. 

일주일에 고작 5시간 쉬는 제가 누구냐면요 [시간빈곤연구소]
한부모 이희원씨는 부족한 시간으로 인해 식사를 자주 거른다. 카페에서 산 커피 등으로 식사를 때우는 일도 잦다. 이희원씨 제공. 

또 다른 한부모는 어떨까. 프리랜서가 아닌 직장인 한부모도 시간빈곤에 허덕이기는 마찬가지다. 고등학생과 초등학생 남매를 키우는 한부모 김진주(54·여)씨. 전체 168시간 중 수면·식사 등 기본 활동에 66시간을 썼다. 근로에는 51.5시간, 가사에는 19.5시간을 할애했다. 김씨에게 남은 건 일주일 중 31시간이다. 김씨의 자유시간은 취업자 평균보다 13.7시간 부족했다. 비취업자(80.1시간)보다는 50.1시간을 덜 쉬었다. 꼬박 이틀 이상이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아이의 곁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다. 지난 10월13일은 초등학생 딸의 운동회였다. 딸이 운동회에 와달라고 이야기했으나 참석하지 못했다. 이날 김씨는 근로와 가사를 포함해 13.5시간을 일했다. 김씨는 “아이들이 아파도 바쁘면 같이 병원에 가주지를 못해요. 아이 홀로 병원에 가서 주민등록번호를 대고 진료받고 약을 타는 게 일상이 됐어요. 같이 가줘야 하는데 미안하죠”라고 했다. 

부족한 시간은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한부모회의 도움을 받아 한부모 5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진행했다.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의 순위를 매기게 했다. 1위 여가활동, 2위 수면, 3위 개인관리였다. 학업 및 자기개발, 가사활동, 자녀돌보기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기타 의견으로는 ‘자녀와의 여행’, ‘나만을 위한 시간’도 나왔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도움 한국언론진흥재단-세명대 기획탐사 디플로마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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