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입자들만 안 됐지”… 전세 피해 지뢰밭 된 동탄 [가봤더니]

동탄 전세 피해 지역, 2030대 직장인 중심 전세 거래 활발
올해 하반기 전세 피해 정점 우려

기사승인 2023-04-20 16: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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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입자들만 안 됐지”… 전세 피해 지뢰밭 된 동탄 [가봤더니]
C씨 측이 동탄 일대 오피스텔 전세 계약 등을 위탁한 것으로 알려진 A공인중개사무소. 지난달 월 해당 중개사무소의 대표가 변경됐다.   사진=임지혜 기자

“(공인중개사 대표자가 바뀐) 3월 중순까지 A공인중개사무소 매물 광고가 제일 많았어요. 거의 양타(단독으로 중개해 양쪽 손님에게 모두 중개 보수를 받는 것)였거든. 물건은 많고 거의 투자자들이었지. 갭투자도 적당히 해야 하는데, 결국 피해를 떠안은 건 젊은 청년들이에요.” (경기도 화성시 반송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 B씨)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블라인드가 깊게 내려져 내부는 보이지 않았다. 20일 오전 10시30분 경기 화성시 동탄 한 오피스텔 건물에 입점해 있는 A중개사무소는 최근 전세 사기 의혹으로 신고된 오피스텔 계약을 맡은 중개업소다. 지난달 16일 A중개사무소의 대표자가 바뀌어 인근 중개사무소들은 말하기 조심스러워했다. 부동산을 넘겨받은 새 공인중개사는 이전 A중개사를 사기 혐의로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A중개사무소 앞은 조용했다. 전세 피해가 집중된 것으로 알려진 오피스텔의 주변도 고요했다. 곳곳에 전세 사기 피해를 알린 현수막이 붙은 인천 미추홀구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전세 피해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한 전날만 해도 전세 피해자들과 취재진이 A중개사무소와 인근 중개사무소로 몰려 문을 닫아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최근 동탄에서 전세 피해 사례가 발생한 오피스텔은 290여채로 추정된다. 오피스텔 250채를 보유한 부부에 이어 오피스텔 등 43채를 보유한 소유자도 파산신청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두 건 모두 A공인중개사가 임대차 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중개사무소 벽면에 걸린 지도에 삼성반도체 화성사업장이 눈에 띄었다. C씨 부부 등이 사들인 이 지역은 삼성반도체 화성사업장과 가까워 2030대 직장인의 전세 거래가 활발한 지역이다.

특히 A중개사무소는 이 지역에서 오피스텔 계약을 가장 많이 체결하기로 유명했다. 250여채를 소유한 임대인 C씨 역시 업계에서 잘 알려진 투자자였다고 한다. 반송동에서 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B씨는 “C씨가 A중개사무소를 통해 동탄 다른 지역 오피스텔도 많이 샀다”라며 “물론 오피스텔은 역전세가 많아 갭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한 사람이 200여개를 산 건 유난히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특히 C씨는 몇 년 전 삼성 내부 커뮤니티에 수백채 갭투자로 입방아에 올랐다고 한다. 그 뒤로 C씨 명의로 전세를 거래하기 어려웠다는 게 업계 이야기다.

“젊은 세입자들만 안 됐지”… 전세 피해 지뢰밭 된 동탄 [가봤더니]
전세 피해가 일어난 지역은 삼성반도체 화성캠퍼스 인근으로 젊은 직장인의 전세수요가 많다.   사진=임지혜 기자 

인근 공인중개사들은 “젊은 세입자들만 안 됐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반송동에서 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D씨는 “오피스텔이란 특성도 있지만, 인근에 삼성 사업장이 있어 젊은 직장인이 많았다. 매매나 월세보다 전세 수요가 많았다”며 역전세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설명했다.

오피스텔의 경우 역전세를 이용해 투자하는 이들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오피스텔 90%가 내 돈 한 푼 안 들이고도 살 수 있다. 내 돈이 하나도 안 들어가는데 안 사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매도자 입장에서는 (오피스텔을 팔고 싶어도) 안 팔리면 역전세라도 내놓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한 사람이 250채나 가지고 있으면 이게 안 무너지겠나. 돈 없이 산 한 사람만 이익이고, 경기가 안 좋으면 피해는 국가와 세입자 몫이다. 전부터 C씨에 대해 많이 들어서 거래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블라인드와 전세 피해자 오픈채팅방 등에는 삼성전자 직원, 사회 초년생 등의 피해 호소글이 이어지고 있다. 오픈채팅방에서 분노하는 피해자들만 200명이 넘는다. 피해자 E씨는 “회사에서 일도 손에 안잡히고 죽을 맛이다. 늦게 취직해서 모은 돈 다 날리게 생겼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회사 열심히 다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이제 결혼도 해야 하는데” “파산 신청하면 끝인 게 너무 화가 난다” 등 전세 피해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젊은 세입자들만 안 됐지”… 전세 피해 지뢰밭 된 동탄 [가봤더니]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   사진=송금종 기자

앞으로가 더 문제다. 갭투자 후유증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동탄 전세 피해만 해도 C씨 부부가 오피스텔을 취득한 시기는 2019~2020년쯤으로 당시 이 지역은 갭투자 수요가 높았다. 공인중개사 D씨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너무 자주 바뀌어서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가을 이사 철이 되면 더 심해질 것”이라며 “(중개사 입장에선) 정상적으로 계약을 체결할 땐 임대인이 (앞으로) 부도가 날지, 사기꾼으로 몰릴지 알 수 없다. 역전세도 조정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고 시장이 수요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하반기에 전세 피해가 정점을 찍을 거란 예상도 나온다. 이미 인천 미추홀구에 이어 동탄 등 전국 각지에서 전세 사기 및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 팀장은 “동탄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지역이나 리스크가 있다”라며 “부동산 가격이 전반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행 제도상에서는 이미 터져버린 (전세 피해) 일들을 사실 수습하기가 쉽지 않아 더 염려된다”라며 “국토교통부가 지금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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