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소년 태호 "저 살만큼 살았어요"

[사랑한다는 걸 잊지마-아동청소년 그룹홈 아홉 자녀 엄마의 '직진'] (1)
백두산 폭발? 엄마와 함께 죽겠다는 '순장조' 태호

기사승인 2023-06-07 09: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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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 소년 태호


전성옥

1971년 전북 고창 출생. 현재는 전남 영광에서 9명의 자녀를 양육하는 '아동청소년 그룹홈' 가정의 엄마다. 여섯 살 연하 남편 김양근과 농사를 지으며 단란한 가정을 이끌고 있다. 김양근은 청소년기 부모를 잃고 세 여동생과 영광의 한 보육시설에서 성장했는데 20대때 이 시설에 봉사자로 서울에서 자주 내려왔던 '회사원 누나' 전성옥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이들의 얘기는 2017년 KBS TV '인간극장'에 소개되기도 했다.

전성옥 부부는 대학생 아들 태찬(19), 고교 2년생 딸 태희(17) 등 1남 1녀를 두었다. 이 자녀들이 어렸을 때 "어려운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주고 싶다"는 남편을 뜻에 동의해 서울 생활을 접고 영광에 내려와 그룹홈을 열었다. 이때 셋째 김태호(11)를 입양했다. 그 후 여섯 명의 딸 김초록(가명 · 19 · 대학생) 한가은(가명 · 이하 가명 · 18 · 특수학교 학생) 김현지(14 · 중학교 2년) 오소영(13 · 중학교 1년) 유민지(12 · 초교 6년) 장해지(9 · 초교 3년) 등과 함께 '다둥이 가정'을 꾸렸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전성옥은 귀농 후에도 문학반 수업을 들을 만큼 문학적 자질이 뛰어나다. 아이들과 함께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가장 즐겁게 생각한다. '사랑한다는 걸 잊지마'는 혈연 중심의 가족구성원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연재 칼럼이다.
11살 소년 태호
전성옥 부부와 아들 태호 군. 최근 모습이다. 사진=전성옥 제공


“백두산이 폭발한다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이들이 심각하다. 어디서 나온 가짜뉴스인지 모를 정보를 공유하며 어린 마음이 두려워한다.

엄마 아빠가 함께 끼어들었다.

“뭐, 무슨 이야긴데?”

“엄마, 백두산이 2025년에 폭발한대요.”

“뉴스에 나왔대요. 어떡해요?”

지들끼리 재난 대책회의를 하는 중이였구나. 국가가 해야 할 재난대책회의를 아이들이 모여서 하고 있다니 우습다.

“엄마, 저는요. 백두산이 폭발하기 전에 비행기 타고 외국으로 튈 거예요.”

제법 큰 아이가 먼저 도망친다고 말하자 일제히 입을 모아 성토한다.

“나는 미국으로 갈 거야. 미국은 안전하잖아.”

“야, 미국이 아무나 갈수 있는 곳이냐? 비자도 있어야 하고 비행기 값도 얼마나 비싼데. 그리고 미국 가서 어떻게 살 건데? 영어도 모르는 주제에.”

영어도 모른다는 말에 풀이 죽은 아이는 조금 숨을 고르다 반격에 나선다.

“그럼 언니는 어떡할 건데?”

“나는 그냥 깊은 산속으로 들어갈 거야. 동굴 같은데 찾아봐서 꼭꼭 숨어있다 화산이 다 내려앉으면 그때 나와야지.”

깊은 산속 동굴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 산속에서 재난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어떻게 버틸 것인가, 먹을 것은 어디서 가져오고 냉장고도 없는데 음식을 어디에 보관해 두고 먹을 것인지 등등. 준비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며 난리가 아니다. 재난보다 더 재난 상황이 되어버린 우리 집 분위기.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엄마 아빠를 둘러보던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11살 소년 태호
2017년 전남 영광 집 앞에서 포즈를 취한 전성옥 부부와 아들 태호 군.  

“엄마, 아빠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백두산이 폭발한다는데.”

“진짜로 백두산이 폭발한데? 2025년에.”

“아. 진짜라니까요. 우리가 다 들었다니까요. 뉴스에도 나왔어요.”

“엄마 아빠도 준비를 해야 되요. 안 그러면 그냥 죽게 된다구요.”

심각하다. 정말로 심각하다. 금방이라도 백두산이 터져서 몰살당할 것만 같은 분위기다.

“음. 그러니까 엄마 아빠는 백두산이 터지면 그냥 그 백두산 터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대로 죽을 거야. 둘이서 손잡고 대한민국을 지킬 거다. 자랑스럽게.”

엄마의 의연한 태도에 아이들은 또 한바탕 소란이다. 안된다고 도망가야 한다고. 가만히 있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고 너나없이 뜨거운 걱정이다.

그때 우리 집 막내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 00의 멋진 한방이 터졌다.

“엄마, 나도 엄마 아빠랑 같이 있을래요. 도망가지 않을래요.”

“엉, 그러면 언니들이 말한 것처럼 죽고 말텐데. 괜찮아?”

“네. 엄마, 저는 괜찮아요. 살만큼 살았어요.”

“뭐라고?”

“푸하하하.”

심각하던 온 집안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살만큼 살았다는 말이 모두의 두려움을 웃음으로 덮어버린 것이다.

두려움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초등학교 2학년의 대답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감격스러운 말 아닌가. 아이는 두려움이 없다. 엄마 아빠랑 있는 것이 더 안전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아니면 엄마 아빠가 있어 두려움을 잊게 한 것일까. 겁이 많은 아이가 저런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국가가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다면 엄마 아빠라도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놀라운 깨달음을 갖게 한 백두산 대 폭발사건이다.

전성옥 jsok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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