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걸 잊지마-아동청소년 그룹홈 아홉 자녀 엄마의 '직진'](2)
"엄마처럼 해보자" "고마워, 엄마는 책 읽고 있을께"
기사승인 2023-06-13 14:02:19
전성옥
1971년 전북 고창 출생. 현재는 전남 영광에서 9명의 자녀를 양육하는 '아동청소년 그룹홈' 가정의 엄마다. 여섯 살 연하 남편 김양근과 농사를 지으며 단란한 가정을 이끌고 있다. 김양근은 청소년기 부모를 잃고 세 여동생과 영광의 한 보육시설에서 성장했는데 20대때 이 시설에 봉사자로 서울에서 자주 내려왔던 '회사원 누나' 전성옥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이들의 얘기는 2017년 KBS TV '인간극장'에 소개되기도 했다.
전성옥 부부는 대학생 아들 태찬(19), 고교 2년생 딸 태희(17) 등 1남 1녀를 두었다. 이 자녀들이 어렸을 때 "어려운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주고 싶다"는 남편을 뜻에 동의해 서울 생활을 접고 영광에 내려와 그룹홈을 열었다. 이때 셋째 김태호(11)를 입양했다. 그 후 여섯 명의 딸 김초록(가명 · 19 · 대학생) 한가은(가명 · 이하 가명 · 18 · 특수학교 학생) 김현지(14 · 중학교 2년) 오소영(13 · 중학교 1년) 유민지(12 · 초교 6년) 장해지(9 · 초교 3년) 등과 함께 '다둥이 가정'을 꾸렸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전성옥은 귀농 후에도 문학반 수업을 들을 만큼 문학적 자질이 뛰어나다. 아이들과 함께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가장 즐겁게 생각한다. '사랑한다는 걸 잊지마'는 혈연 중심의 가족구성원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연재 칼럼이다.
휴일, 다둥이 엄마 '여왕의 식탁'
휴일의 아이들은 심심할까? 아니다. 함께하면 심심할 시간이 없다. 긴 휴일의 한날 점심은 아이들이 만든다.
“얘들아, 오늘 점심은 너희들이 해볼래?” 엄마 여유 있게 책 읽고 있을게.
아이들의 대답은 하늘을 난다.
“네~ 저희가 할게요.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고 아이들에게 부엌을 맡겼다.
엄마가 식사를 준비하는 것을 본 것이 있는지라 저마다 잘할 수 있다고 난리다. 엄마의 일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흥분되는 일이다.
앞치마를 입혔다. 제복을 갖춰 입어야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자부심이 있지 않은가. 막내와 둘째는 서로 먼저 입겠다고 야단이다. 그리고 엄마는 뒤로 물러섰다.
주방이 보이지 않는 거실 소파에 앉아 소리만 듣는다. 책을 읽겠다고 했지만 글자만 보고 있다. 집중이 될 턱이 없다. 아이들의 밥 짓는 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
그래도 제일 큰 언니, 먼저 제안을 한다.
“야, 얘들아 일단 앉아봐. 무엇을 만들지 먼저 결정해야 해.”
“언니, 언니, 냉장고에 유부가 있으니 유부초밥하자.”
“아니야, 볶음밥 하자, 양파도 있고 햄도 있고 참치도 있잖아. 엄마가 만드는 거 봐서 할 수 있어.”
엄마가 만드는 거 봐서 안다는 말에 빵 터졌다. 엄마가 밥하는 것을 봤을까? 어디한번 어떻게 만들어지나 보자 하는 맘이 들었다.
“계란을 먼저 풀어야 해.”
언니의 말에 촐삭쟁이 막내가 나선다.
“언니, 내가 계란 깨고 싶어.”
“안돼. 계란 잘못 깨면 껍질까지 들어가서 문제야.”
“아니, 잘할 수 있다고. 나도. 엄마가 하는 거 봤어!” "엄마처럼 해보자" 농촌 아이들의 활기찬 요리 퍼포먼스 물러서지 않는 막내의 고집에 언니들은 손을 들었는지 막내가 계란을 풀기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여진이는 계란을 깨다 껍질까지 같이 들어가고 말았다. 침착한 언니는 괜찮다며 껍질을 건져내는 것 같다.
그 다음은 어묵 썰기. 칼을 사용해야 하는 정교한 작업에 조심스러운지 어묵은 언니가 썰겠다고 한다. 잘못하면 손이 다치니까 조심해야 한다고 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