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딴짓’으로 ‘진정한 나’ 찾는 청년들 [요즘 시선]

기사승인 2023-06-25 12: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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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딴짓’으로 ‘진정한 나’ 찾는 청년들 [요즘 시선]
지난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종합운동장에서 러닝크루 DDBB(뛰뛰빵빵) 회원들이 트랙을 달리고 있다.   사진=김예솔

최근 몇 년 사이에 퇴근 후 ‘딴짓’을 하는 2030세대가 늘고 있다. 고정 수입을 얻는 본업 외의 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이다. 한 사람이 다양한 캐릭터를 가지고 본업 이외의 여러 활동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유행하기도 한다. ‘부(副)캐’, ‘N잡(여러 개의 직업)’, ‘딴짓’, ‘사이드 프로젝트’ 등이다.

퇴근 후에 부업을 하는 청년이 있는가 하면, 경제적 이윤이 목적이 아닌 단순한 취미 활동으로 여가 시간을 보내는 청년도 있다. 퇴근 후 회사를 나온 청년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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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에서 영상 PD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배지윤씨. 본인 제공.

나만의 속도로 성장하는 즐거움


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지난 18일 오후 지하철. 모두가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할 때 운동복을 입고 경복궁으로 향하는 이가 있다. 신문사에서 영상 PD 인턴으로 일하는 배지윤(24·여)씨다. 배씨는 지난해부터 러닝 크루 DDBB(뛰뛰빵빵)에 가입해 일주일에 두 번 광화문, 한강, 남산 등지에서 러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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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윤와 러닝크루 DDBB(뛰뛰빵빵) 회원들이 출발 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김예솔

업무에 지친 배씨를 트랙으로 이끄는 힘은 러닝이 주는 ‘성취감’에 있다. 그는 “러닝을 할 때는 내가 열심히 뛴 만큼 실력이 느는 걸 체감한다. 취업 준비를 하거나 영상 편집을 할 때는 노력과 결과가 비례하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았다. 자기소개서를 아무리 열심히 써도 불합격할 수 있고, 영상을 아무리 열심히 편집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보지 않으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본업에서 성과가 좋지 않을 때 러닝을 하면 대리만족이 된다”는 배씨는 사회초년생으로서 느끼는 성취감에 대한 갈증을 취미인 달리기를 통해 해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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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윤씨와 그가 속한 러닝크루 DDBB(뛰뛰빵빵) 회원들이 트랙을 달리고 있다.   사진=김예솔

배씨는 퇴근 후 러닝을 하는 이유로 “비교 대상이 오직 나 자신”이라는 점을 꼽기도 했다. “퇴근 후 달릴 때만큼은 남이 아닌, 어제의 나와 비교하게 된다.”고 했다. 며칠 후에 참가할 마라톤 대회에서 10km 코스를 52분 안에 주파하는 게 목표라는 그는 3년 안에 풀코스(42.195km)를 뛰는 것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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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에서 콘텐츠 기획자로 일하고 있는 강기흔씨의 모습. 본인 제공.

‘회사가 규정하는 나’와 ‘내가 만들어 가는 나’

한 방송국에서 2년째 콘텐츠 기획자로 일하는 강기흔(27)씨는 1.3만명의 SNS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루언서이다. 대학 시절 조별 과제를 위해 만들었던 인스타그램 계정이 우연한 계기로 규모가 커지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인플루언서 활동에 뛰어 들었다. 강씨는 “셀카나 내 취향이 담긴 물건, 장소 사진들을 SNS에 꾸준히 기록하다 보니 자연스레 팔로워가 많아졌다. 그 이후로 기업으로부터 제품 협찬이나 광고 요청이 들어왔고, 현재는 SNS에 사적인 사진과 홍보용 사진을 함께 올리며 인플루언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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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경기 고양시의 한 카페에서 강기흔씨가 인스타그램에 게시할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김예솔

강씨의 또 다른 일과는 퇴근 후에 시작된다. 지난 20일 회사에서 나와 곧장 삼각대를 들고 근처 카페로 향한 그는 부지런히 SNS에 올릴 사진을 찍었다. 그는 “SNS를 열심히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미다. 다양한 콘텐츠를 SNS에 올리면서 나의 모습과 캐릭터를 주도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SNS 속 자신의 모습이 또 다른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 강씨는 “인플루언서 활동을 한 이후로 새로운 장소에 가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성격도 좀 더 외향적으로 변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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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흔씨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다.   사진=김예솔

“인플루언서 활동을 하다 보니 유행의 최전선에서 트렌드를 파악하게 될 때가 많다. 결과적으로는 일종의 부업인 SNS 활동이 본업인 콘텐츠 기획에도 큰 도움이 된다.” 부캐로 일석삼조의 효과를 얻고 있다는 강씨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인스타그램, 유튜브와 더불어, 틱톡이나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플랫폼에서의 활동까지도 넘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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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는 인다희씨 모습. 본인 제공

내가 원하는 진짜 ‘내 일’을 찾아서


경기 고양시의 한 레스토랑에서 근무하고 있는 인다희(26·여)씨는 퇴근 후에는 목공방에서 가구 제작을 배운다. 아버지와 함께 사무실에 놓을 데크를 직접 만들다 목공의 매력에 빠졌다는 그는 몇 해 전부터 본격적으로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인씨는 “우연히 나무 데크를 직접 짤 일이 있었다. 나무 향을 맡으면서 무언가를 한다는 게 굉장히 흥미롭고 좋다고 느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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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경기 고양시의 한 목공방에서 인다희씨가 가구를 만들고 있다.   사진=김예솔

인씨는 자신의 이름을 건 목공방 카페를 차리기 위해 퇴근 후 목공을 배우고 있다. “거창하고 확고한 꿈을 꾸면서 시작한 일이 아니다. 단순하게 그냥 좋아서, 하고 싶어서 배우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는 그는 직장을 다니면서 무언가를 새로 배운다는 게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고도 말했다. “쉬는 날까지도 하루 종일 서서 이것저것 만들다 보면 힘에 부칠 때도 많다. 마음이 반반이다. 학원에서 얼른 나무를 만지고 싶다는 생각 반,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 반.” 인씨는 가끔 ‘내가 과연 이걸로 밥 벌어 먹고살 수 있을까’ 고민도 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볼 생각이라며 씩씩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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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고양시의 한 목공방에서 인다희씨가 가구를 만들고 있다.   사진=김예솔

자격증 시험을 앞둔 그는 “이번에 자격증을 따게 되면 목공방에 취직해 제대로 일을 배워보고 싶다”며 언젠가 커피와 목공을 함께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가지게 될 날을 꿈꾸고 있다.

기고=김예솔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사진을 찍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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