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후폭풍…동맹휴학 이면엔 사교육 열풍

기사승인 2024-02-17 0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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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 후폭풍…동맹휴학 이면엔 사교육 열풍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앞으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대한민국 교육 현장이 의대로 들썩이고 있다. 정부가 던진 의대 정원 확대로 낮아진 의대 입시 문턱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늘면서 사교육업체의 의대 입시설명회 현장은 수백명의 인파가 몰리며 열풍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후끈한 학원가 분위기와 달리 정작 의대생들은 정부 계획에 반발하며 동시 휴학계를 제출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교육계에 따르면 종로학원이 지난 7일 실시한 입시설명회에는 3000명 이상이 접수했다. 앞서 지난 6일 정부가 기존 3058명인 의대 입학 정원을 2025학년도부터 2000명 증원한 5058명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한 이후 학원가의 풍경이다. 

대학생과 직장인은 물론, 초·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까지도 의대 입시를 주목하고 있다. 중1 자녀를 둔 박모씨는 “의대가 증원된다고 해서 컨설팅과 설명회를 듣고 싶었는데 예약 자체가 쉽지 않더라”라며 “대한민국 학생과 학부모 상당수의 관심이 의대에만 쏠린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의대를 준비 중이라는 한 수험생도 “의대에 가고 싶었는데 성적이 좀 부족해서 포기했었다. 의대 증원 소식에 의대를 목표로 재수를 시작하려 한다”고 말했다. 교대에 재학 중인 이모씨는 수능을 다시 볼지 고민 중이다. 이씨의 대학 친구 몇몇은 벌써 의대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경찰, 공무원, 연구원 등 다양한 직종의 직장인들이 “의대 도전하겠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의대 증원 후폭풍…동맹휴학 이면엔 사교육 열풍
대한의사협회 산하 서울시의사회 회원들이 1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 반대 궐기대회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

정작 의대 상황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의대 증원 발표 이후 의료계의 반발이 커지면서 의대생들까지 집단행동을 개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전국 40개 의대 가운데 35개 의대 대표 학생들은 오는 20일 함께 휴학계를 내기로 했다. 이들은 의대생들에게 보낸 공지문에서 ‘휴학계 제출 일자를 20일로 통일해 40대 의과대학이 모두 함께 행동하는 것’에 대해 참석자 35명이 만장일치로 찬성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방침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기로 한 의사들의 선언에 따른 것이다. 서울 대형병원 ‘빅5’(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전공의 전원은 오는 19일까지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를 기해 근무를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원광대병원, 조선대 병원 등에서도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전날 한림대 의과대학 비상시국대응위원회는 한림대 의과대학 의료정책대응TF 공식 SNS를 통해 15일 본과 4학년 학생들이 동맹휴학을 결의하고 휴학원을 제출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집단행동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의대생들은 “의대 증원으로 인한 의학교육의 부실화는 실력 없는 의사와 의과학자를 양성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제대로 가르칠 교수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대로만 학생이 몰리면 의대 교육환경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이러한 주장의 배경이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에 따르면 의대에서 8개 기본 과목을 맡는 기초의학 교원은 2018년 1424명(평균 35.6명)에서 2022년 1277명(평균 31.9명)으로 5년 새 147명(평균 3.7명) 줄었다. 학생이 많은 학년이면 강의실에서 자리를 잡기 힘들고, 해부용 시신이 부족해 해부학 실습이 차질을 빚기도 한다.

교육부는 의과대학 학생들의 단체행동 가능성에 대비해 전국 40대 의과대학에 공문을 보내고 각 대학이 관련 법령·학칙 등을 준수하는 등 엄정하게 학사관리를 해 달라고 요청한 상황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동맹휴학 이후 학사 관리에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학생들에게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학 측에 지침을 명확하게 안내하겠다”고 밝혔다.

의대 증원 후폭풍…동맹휴학 이면엔 사교육 열풍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의사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의대 증원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히 의료계, 교육계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많은 면을 함축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고물가·고금리, 불평등한 사회, 안정적이지 않은 일자리, 만족스럽지 못한 월급은 의대 증원 소식과 함께 고소득·안정적 일자리 선호 현상을 자극했다. 필수의료 저수가, 근무여건 악화 등 의사들의 외침이 반복되는 동안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진료 대란은 달라지지 않았고, 시민들의 불안과 불만은 커져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일방통행식 발표가 나오자 필수의료 핵심인 대형병원 전공의들은 병원을 떠나고, 의대생은 펜을 놓을 가능성이 커졌다. 학원가엔 학생이 쏠리다 못해 연령까지 낮아져 유치원 의대반까지 생겼다. 2000명 의대 증원 발표가 불러온 나비효과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해관계를 두고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이 전적으로 ‘옳거나’ ‘그르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며 의대 증원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설 교수는 “의과대학은 거의 독점적이기 때문에 만약 의대생이 전부 휴학을 한다고 가정하면 1년 뒤 군의관, 공중보건 증원 등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다시 난관에 부딪힌다”며 “증원을 올해 준비해 2025학년도 입시에 바로 반영하는 건 다소 성급할 수 있다. 의사와 의대생의 주장도 경청하고 이들의 의견을 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의대 열풍과 관련해 “기대소득이 높고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에 커트라인이 높은 것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라면서도 의대 열풍이 비정상적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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