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인문학기행] 이탈리아, 서른여섯 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9-04-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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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대성당은 바티칸시국의 서쪽에 있는 자니쿨룸(Janiculum) 언덕의 하드리아누스 영묘(Hadrian 's Mausoleum) 부근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다. 타원형의 베드로 광장을 지나 대성당의 정면에 이르면 계단 아래 왼쪽에는 베드로 성인, 오른쪽에는 바오로 성인의 모습을 새긴 5.55m 높이의 조각상이 서있다.

마데르노가 설계한 대성당의 정면은 폭 114.69m, 높이 45.55m의 규모인데 석회암으로 지었다. 코린트양식의 기둥을 세우고 중앙에는 박공을 얹었다. 그 위로는 높은 다락을 올렸고 13개의 조각상으로 장식했다. 예수와 세례 요한을 중심으로 열한 명의 제자들의 조각상이 늘어서 있다. 

12제자 가운데 베드로는 계단 아래에 배치돼있다. 1m높이의 처마 밑 장식 띠에는 “IN HONOREM PRINCIPIS APOST PAVLVS V BVRGHESIVS ROMANVS PONT MAX AN MDCXII PONT VII”라고 적혀있다. “사도들의 왕의 영광을 기려, 로마인 바오로 5세 보르게세(Paul V Borghese) 교황이 재위 7년째인 1612년”이라는 의미이다.

정면 오른쪽에 있는 입구에 들어서면 이탈리아의 교회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나르텍스(Narthex)가 있다. 교회의 정면 입구에서 본당으로 연결되는 기다란 복도이다. 둥근 천장은 화려한 벽토와 금테로 장식돼있다. 나르텍스의 양끝에는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이 서있는 공간이 있다.

북쪽 끝의 공간에는 1670년 베르니니(Bernini)가 제작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상이, 남쪽 끝에는 18세기에 코르나치니(Cornacchini)가 제작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샤를마뉴(Charlemagne) 대제의 기마상이 있다. 나르텍스에서 본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모두 5개다. 북쪽 끝에 있는 입구에는 피렌체의 페르디난도 마리넬리(Ferdinando Marinelli)가 주조한 비코 콘소르티(Vico Consorti)의 성스러운 문(The Holy Door)이 달려있는데 평시에는 닫혀 있고, 희년에만 열린다.

본당에 들어서면 내부의 광대함에 절로 위축되는 느낌이 든다. 높은 원통형 천정을 받치는 기둥들이 늘어서 있고, 대리석으로 된 내부는 부조와 조각 그리고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돼있다. 미국의 철학자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베드로 대성당을 ‘아름다운 장식의 땅’이라고 묘사했다. 돔으로 이어지는 중앙회랑(nave)은 여러 개의 예배당과 제단으로 둘러싸여 있다. 세례당, 성모의 예배당, 합창단, 축일 제단, 그레고리 성인의 제단이 있는 클레멘타인 예배당, 베드로 성인의 의자가 있는 애프스 등등이다.

베드로 대성당에는 여러 교황들과 주목할 만한 사람들의 묘소가 조성되어 있는데, 대부분 예술성이 뛰어나다. 특히 미켈란젤로 (Michelangelo)가 조각한 ‘피에타 (Pietà)’,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가 교황 우르반 8세의 명에 따라 디자인한 금란(baldacchino), 베드로 성인의 보좌(throne) 등은 꼭 봐야 한다.

높이 28.74m의 금란은 베르니니가 베드로 대성당에 처음 남겨놓은 작품이다. 베르니니는 옛 베드로 대성당의 제단을 장식한 솔로몬의 기둥에서 얻은 영감을 금란의 기둥에 적용했다.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가져온 기둥이라고 전해지는 솔로몬의 기둥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증한 것이었다. 

4개의 기둥 아랫부분은 나선형으로 홈을 새겨 넣었고, 중간부터 위쪽으로는 수많은 꿀벌과 날개달린 어린 사내아이들이 모여 있는 올리브와 월계수 가지가 감고 있다. 기둥의 아래쪽에는 교황 우르반 8세 가문의 문장과 바르베리니 가문의 상징인 꿀벌과 문장이 새겨져 있다.

베드로 성인의 보좌(Throne)라고도 하는 베드로 성인의 의자는 이탈리아의 로마 안에 고립된 교황의 주권을 상징하는 유물이다. 초기 기독교의 영도자였고 로마의 초대 교황이었던 베드로 성인이 사용했다는 나무의자를 서기 875년 신성로마제국의 찰스2세 황제가 교황 요한 8세에게 선물한 것이다. 성당을 의미하는 카세드라(Cathedra)는 라틴어로 ‘의자’, 혹은 ‘보좌’를 의미하므로 주교의 교회임을 나타낸다.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베드로 성인의 의자는 1647년에서 1653년 사이에 베르니니가 금동으로 주조한 것으로 2012년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베드로와 그를 계승자들이 그리스도의 양떼가 믿음과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돌보라는 특별한 사명을 나타내는 상징”이 바로 이 의자라고 설명했다.

그 밖에도 돔을 받치는 4개의 기둥에 만든 틈새에는 실물보다 큰 조각상을 세웠다. 이들은 대성당의 중요한 성유물과 연관돼있다. 성십자가(The True Cross)와 성스러운 못(The Holy Nails)을 쥐고 있는 헬레나 성녀(Saint Helena)는 안드레아 볼기(Andrea Bolgi)가 제작한 것이다.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 창을 들고 있는 롱기누스 성인(Saint Longinus)은 1639년에 베르니니가 제작한 것이다. X형 십자가라고도 하는 안드레아 십자가를 쥐고 있는 안드레아 성인은 프랑소와 듀케스노이(Francois Duquesnoy)가 제작한 것이다. 예수의 얼굴이 그려진 베일을 쓰고 있는 베로니카 성녀(Saint Veronica)는 프란체스코 모치(Francesco Mochi)의 작품이다. 

돔의 북동쪽 기둥을 바라보는 벽에는 베드로 성인의 청동상이 앉아 있다. 이는 13세기 후반의 이탈리아 조각가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 제작한 것으로 믿어진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5세기 무렵의 유물이라고 주장한다. 수 세기에 이르도록 많은 순례자들이 약간 앞으로 뻗은 베드로 성인의 오른발에 키스해온 탓에 마모가 돼있다.

북쪽 통로의 첫 번째 예배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미켈란젤로가 같은 주제로 제작한 첫 번째 작품으로 서명이 있는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 카라라 대리석을 조각한 이 작품은 프랑스 가톨릭의 로마대표 장 드 빌레르(Jean de Bilhères) 추기경이 자신의 장례식에서 기념물로 사용하기 위해 의뢰한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그때까지의 피에타와는 다른 해석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마리아는 ‘순결한 여성이 젊음을 더 오래 유지한다’는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평안한 얼굴은 죽음을 표현하기 보다는 포기에 대한 종교적 통찰력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리스도의 봉납(奉納)을 통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교감이 이뤄진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여러 제대 가운데 변용 제대(Altar of Transfiguration)와 거짓의 제대(Altar of Lie)가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변용의 제대는 1774년에 스테파토 포찌(Stefano Pozzi)가 라파엘로의 ‘변용(Transfiguratione), 1516-1520’을 모자이크로 재현한 것이다. 

변용은 예수가 변모한 모습으로 나타난 사건에 대한 신약의 기록에서 온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는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라고 했다.

거짓의 제대는 크리스토포 론칼리(Cristoforo Roncalli)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처벌(The Punishment of the Couple Ananias and Saphira), 1604’를 1768년에 아다미(P. Adami)가 모자이크로 재현한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함께 은혜를 받은 자였는데, 땅을 팔아 베드로의 초대교회에 바치면서 그 값을 속인 것 때문에 벌을 받았던 것이다.

많지 않은 시간을 잘 활용하였다고는 하지만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좋은 예술품의 진수를 제대로 감상하기에는 아쉬움이 컸다. 약속한 3시20분 베드로광장 분수대로에서 모여 공항으로 출발했다. 오후 4시에 공항에 도착했지만, 출국수속을 하는데 의외로 시간이 많이 들었다. 수속을 하려는 비EU국가 사람들이 길게 늘어섰는데 창구를 늘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출국수속을 하느라 오랫동안 서 있었더니 진이 빠져서 면세점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졌다. 바로 탑승구로 이동하여 탑승을 대기하다. 오후 7시 비행기가 정시에 탑승구를 물러나 이륙했다. 인천까지는 11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이륙 후 기내식이 나오고 바로 소등한다. 한나절에 걸친 로마 구경이 꽤 힘들었던 모양으로 바로 잠들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인천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가 나온다. 오후 2시 반이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한 것은 저녁 5시 10분. 돌이켜 생각해보면 좋은 여행이었다. 문대현 인솔자의 세심한 마음 씀씀이가 힘을 발휘한 덕일 것이다. 여행기에서 따로 적지는 않았지만 아내의 도움이 컸고, 이번 여행에 처음 동행한 큰 아이도 큰 힘이 됐다. 

프랭클린플래너를 창시한 하이럼 스미스는 ‘배우자와 여행을 하는 것이 좋아서 간다’라고 했는데, 필자 역시 아내와 함께 가는 여행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특히 여행을 통해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것도 참 좋다. 36회차에 이르는 이탈리아 여행기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린다.

피렌체를 여행하면서 읽은 E.M. 포스터의 ‘전망 좋은 방’에서 비브목사는 “우리 작은 인생에 그리스는 너무도 거대합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건 이탈리아 정도가 최대일 겁니다. 이탈리아가 영웅의 땅이라면, 그리스는 신의 땅이거나 악마의 땅이에요”라고 말한다. 이탈리아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그리스 여행을 꿈꾸게 됐다. 하지만 독일을 먼저 가게 됐다. 다음 회부터는 지난해 여름휴가차 다녀온 독일 여행기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양기화의 인문학기행] 이탈리아, 서른여섯 번째 이야기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9 현재, 동 기관 평가책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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