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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사과 요구하는 韓, 베트남전 피해에는 눈 감나

강제동원 사과 요구하는 韓, 베트남전 피해에는 눈 감나

이소연 기자입력 : 2019.11.06 06:13:00 | 수정 : 2019.11.06 16:47:22

#지난 1966년 12월6일 꽝웅아이성 빈선현 빈호아사에 한국군이 마을로 온다는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당시 성인 남성들은 모두 몸을 피했고 마을에는 노인과 여성, 아이들만 남았습니다. 마을에 도착한 한국군은 주민들을 집에서 끌어내 논밭으로 모았습니다. 여성들이 살려달라고 빌었으나 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우물에 사람을 던져 넣고 총을 쏘거나 수류탄을 던져 죽였습니다. 어머니는 온몸을 감싸 나와 남동생(3개월)을 보호했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며 생사를 물었습니다. 나는 살아남았지만 남동생과 두 여동생(4세, 2세)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나는 내 가족을 비롯해 한국군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베트남 민간인들에 대해 한국 정부가 사과하기를 바랍니다. 

베트남전 희생자 유가족과 피해자가 한국 정부에 진상조사와 사실인정, 공식사과 등을 요구하며 제출한 청원서 내용 중 일부다. 국방부는 보유한 자료에 민간인 학살 내용이 확인되지 않아 진상규명이 어렵다고 답했다. 이에 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는 특별법을 제정해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전 민간인 피해를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사건 특별법 제정’ 세미나가 열렸다. 베트남전 민간인 피해사건에 대한 그동안의 진상규명 노력과 특별법 제정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베트남시기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TF팀장을 맡고 있는 김남주 변호사는 이날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과 법률 주요 내용에 대해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특별법의 주요 목표는 진상조사 중 기초조사를 수행하는 것이다.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전 민간인 피해는 지난 20년간 공론화되어 왔으나 공식적으로 조사된 바 없다. 

특별법의 골자는 국무총리 산하의 위원회를 통해 진상조사를 실시, 종합보고서를 통해 피해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피해자의 범위는 베트남전 당시 대한민국 군대의 작전으로 인해 살해, 사체훼손, 행방불명, 상해, 구금, 가혹행위 등을 당한 민간인과 그 사람의 배우자 등으로 규정된다. 위원회는 국내외 자료 조사와 현장조사, 기록분석 관리 등을 통해 진상규명을 진행한다. 조사대상자 및 참고인에 대해 진술서 제출과 출석요구 및 진술청취, 자료 제출 등을 요구할 수 있다. 피해를 인정 여부를 결정한 후 정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권고해야 한다. 진상조사를 요청한 신청인과 참전군인 등 조사대상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도 부과됐다. 베트남 현장 조사를 할 경우, 베트남 정부의 승낙을 얻어 주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도 명시됐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한국군 주둔지 5개성(우리나라의 ‘도’에 해당)에서 80여건의 학살이 이루어졌고 9000여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 한베평화재단은 베트남 정치국의 ‘전쟁범죄보고서’, 위령비 비문, 피해자 증언 등을 통해 4435명의 희생자가 있었다고 집계했다. 이중 명확히 이름이 확인된 희생자는 2578명에 달한다.

다만 특별법 제정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국방부와 대한민국 월남전(베트남전) 참전자회는 민간인 학살과 성폭력 등이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국방부는 보유 중인 한국군 전투사료 등에서 주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내용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월남전 참전자회 관계자는 “당시 한국군은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양민을 보호한다’는 기치 아래 일했다”며 “민간인 학살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다만 “월남전은 아군·적군을 구별할 수 없는 특수한 전장 환경을 갖고 있었다”며 “낮에는 선량한 농민처럼 보였던 사람이 밤에는 한국군 막사를 기습했다. 마을을 공격하기 전, 베트콩과 양민을 분리시키기 위한 방송을 했음에도 마을에 머무른 사람을 적으로 간주했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에서 제안한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오는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단체 측의 반발이 심할 특별법은 발의하는 것이 ‘부담’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이날 세미나를 주최한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부담으로 인해 특별법 제정 논의가 확산되지 못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추후 어떤 정치적 부담이 있더라도 입법이 필요하다면 당당히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라도 베트남에 대한 피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세미나에서 특별법 제정에 대해 발표한 김 변호사는 “일본 강제동원 문제에 있어 피해자들이 개별소송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이 얼마나 힘든지 보아왔다”며 “대한민국 정부도 비인권적인 태도를 보여줄 것인가. 선제적으로 나서서 특별법을 제정해 피해자의 아픔을 치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일본에 항상 과거사를 사과하라고 하지만 우리 스스로 성찰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조금이라도 문제의식이 확산돼 특별법이 입법되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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