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거래소에서 은행으로 흘러온 4조…수상한 점은? [알기쉬운 경제]

기사승인 2022-07-31 12: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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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거래소에서 은행으로 흘러온 4조…수상한 점은? [알기쉬운 경제]
최근 4조원대 규모의 수상한 외환거래가 포착됐습니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출발한 수조 원의 자금이 여러 기업을 거쳐 해외법인으로 빠져나간 건데요. 국내에서 외국으로 돈을 보내는 ‘외환거래’에 어떤 수상한 점이 있던 걸까요?

금융감독원의 발표에 따르면 외환거래 규모는 33억7000만달러입니다. 한화로 약 4조1000억원에 달합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의 신고를 받고 확인한 것으로, 이들 은행이 처음 보고했던 2조5000억원보다 큰 금액입니다. 금감원이 현재 국내은행 전체의 외화 송금 내용을 들여다보고 있는 만큼 추후 검사 결과에 따라 이상 거래는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신한은행에서는 지난해 2월부터 올해 7월까지 11개 지점을 통해 1238회에 걸쳐 2조5000억원이 해외로 빠져나갔습니다. 송금 요청 업체는 각각 15곳입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5월부터 올해 6월까지 5개 지점에서 931회에 걸쳐 1조6000억원을 해외 송금했습니다. 송금 요청 업체는 10곳입니다. 이 중 3곳은 두 은행 모두를 창구로 활용했죠.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은행으로 흘러온 4조…수상한 점은? [알기쉬운 경제]
금융감독원 제공

복수의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나온 자금은 ①다수의 개인 또는 법인으로 이체된 후 ②송금을 담당한 무역법인에 입금됐고 ③이후 수입대금 지급 명목으로 은행을 거쳐 홍콩·일본·미국 등에 분포한 해외법인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일부 자금은 일반 상거래 자금과 가상화폐 거래 자금이 섞인 채로 해외로 보내졌습니다.

수상한 기업에서 나타난 반복적 거래

수상한 점은 △반복적인 거래 횟수 △기업들의 관계 두 가지입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의 이상 외환거래에 연루된 기업은 중복된 곳을 빼면 22곳입니다. 이들 22개 기업은 신한은행에서 17개월간 1238회, 우리은행에서는 13개월간 931회에 달하는 외환 송금을 처리했습니다. 통상적인 업무라고 보기에는 비정상적으로 많은 횟수죠.

두 번째로 수상한 점은 돈을 주고받은 기업의 정체와 관계입니다. 외환 송금에 연루된 기업은 귀금속 업체, 화장품, 여행 관련 회사, 각종 도소매 업체인데요. 대부분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기업입니다. 일부 기업은 매출이나 자본금도 매우 적었죠. 조그마한 신생기업이 수조원에 달하는 한국 돈을 외국으로 보내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또한 해당 업체들의 대표가 같거나 혈연관계 등 특수관계인으로 엮인 사례가 확인됐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법인의 임원을 겸임하는 사례도 발견됐죠. 자금이 법인 계좌에서 다른 법인의 대표 계좌로 송금되거나 같은 계좌에서 다른 2개 법인으로 송금되는 등 서로 연관된 거래들도 있습니다. 

일부 거래는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해 들어온 자금과 실제 무역 거래를 통해 들어온 자금이 섞여서 해외로 나갔습니다.

홍콩·일본으로 흘러간 자금…환치기 가능성 있어

수상한 점들을 미뤄봤을 때 금감원은 코인 투기 세력이 한국과 해외 가상화폐 거래에서 발생한 시세 차익을 송금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가상화폐 거래가 활발하고 수요가 많은 국가에 속해 해외보다 가상화폐 시세가 더 높게 책정되는 ‘김치 프리미엄’이 있기 때문이죠.

‘환치기’ 가능성도 있습니다. 환치기는 한 국가의 계좌에 입금한 후 다른 국가에서 해당 국가의 환율에 따라 입금한 금액을 현지 화폐로 찾는 불법 외환거래 수법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4조원 규모의 돈은 누가 받은 걸까요? 해외로 빠져나간 돈의 행방은 오리무중입니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로부터 유입된 자금의 출처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떤 국가로 흘러 들어갔는지는 공식적으로 확인됐습니다. 송금받은 해외 법인의 귀속 국가를 살펴보면 홍콩이 25억 달러로 가장 많았고, 이어 일본(4억 달러), 미국(2억 달러), 중국(1억6000만 달러) 순입니다.

국내 자금의 흐름은 파악할 수 있지만 가상화폐 투자 과정과 해외로 송금된 자금의 출처는 금융감독원에서 파악할 권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금융감독원은 가상화폐 환치기가 되려면 해외 업체와의 공모 여부가 밝혀져야 하는데 현재로서 그 부분을 알긴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이미 1년여 년 전에 5대 은행에 해외송금과 관련한 문제를 여러 차례 경고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하나은행의 이상 외환 거래 검사에서 가상화폐 거래소와 연결된 ‘김치 프리미엄’ 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적발했고 시중 은행에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죠.

이번 사건으로 은행권과 가상화폐 업계가 긴장하고 있습니다. 은행이 코인 투기 세력의 자금세탁·시세차익을 실현하는 통로로 이용된 것이 밝혀지면서, 외환업무 취급 및 자금세탁방지업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책임론이 대두됐기 때문입니다. 금감원은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은행에 대해 사실관계 등을 기초로 관련 법규 및 절차에 따라 엄중 조치할 방침입니다.

대부분의 시중 은행은 7조원 규모의 이상 외환 거래와 관련한 자체 점검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이미 일부는 문제성 자금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금감원이 조만간 모든 은행권을 대상으로 검사를 확대할 전망입니다.

손희정 기자 sonhj1220@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