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없어도’ 의료공백에 저력 보여준 중소병원…“긴장 속 역량 집중”

기사승인 2024-04-30 14: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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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없어도’ 의료공백에 저력 보여준 중소병원…“긴장 속 역량 집중”
대학병원 교수들이 개별적 사직에 나서고, 주 1회 진료와 수술을 중단하겠다며 ‘셧다운’을 공식화한 가운데 의료현장에서 ‘보루’ 역할을 해온 지역 중소병원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지된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전공의 집단 이탈로 촉발된 의료공백 사태가 두 달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지역 중소병원들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역 종합병원에서 진료와 수술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며 당장 큰 혼란은 없다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 버티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0일 병원계에 따르면 전공의 이탈로 인해 상급종합병원이 진료·수술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과 달리 2차 병원인 지역 종합병원들은 대부분 정상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낙관적인 상황은 아니다. 대학병원 교수들이 개별적 사직에 나서고, 주 1회 진료와 수술을 중단하겠다며 ‘셧다운’을 공식화한 상황에서 의료현장 ‘보루’ 역할을 해온 지역 중소병원도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지된다.

양문술 부평세림병원장은 의료공백 사태로 인한 전국 중소병원의 역량이 아직 우려할 정도는 아니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 지역 종합병원도 장담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종합병원은 의원과 상급종합병원 사이 의료기관으로, 전국에 360여개가 있다. 100~300병상 종합병원은 7개 이상 진료과목, 300병상을 초과하는 종합병원은 9개 이상 진료과목을 갖추면 된다. 종합병원 대다수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없이 전문의 체제로 운영하며 응급실과 수술실, 중환자실, 투석실 등을 갖추고 있다.

양 병원장은 “수도권 중소병원의 환자가 늘긴 했지만 아직 소화할 수 있는 정도다. 비응급 환자는 전문병원급에서도 많이 보고 있고, 중소병원이 심·뇌혈관질환과 척추·관절질환에 대해 충분히 대학병원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면서도 “사태가 장기화돼서 교수들의 사직이 현실화되면 큰 공백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암환자들이다. 중소병원에서 볼 수 있는 암환자는 한정돼 있다. 방사선 치료시설을 갖춘 종합병원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의료공백으로 인한 암환자 피해는 점차 불어나고 있다. 식도암·폐암·췌장암 등 6가지 중증질환 환자단체들이 모인 한국중증질환연합회에 따르면,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수술이 연기되거나 항암 치료, 입원이 취소된 사례들이 쌓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식도암 진단을 받고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던 A씨(70)는 전공의 이탈 사태가 벌어진 2월20일 병원으로부터 퇴원을 종용 받아 요양병원으로 전원된 다음날 사망했다.

양 병원장은 “방사선 치료를 많이 해야 하는 암종이 있는데 치료시설을 갖춘 중소병원이 많지 않다. 가능한 병원은 수도권에서도 1~2개에 그친다”며 “당장 치료가 급한 암환자들은 다른 상급종합병원으로 배분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서울 관악구 소재 종합병원인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은 외래 환자와 응급실 환자가 증가하며 병상가동률이 높아지고 있다. 양지병원 관계자는 “늘어나는 환자를 제대로 진료하기 위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의료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 용인시 소재 강남병원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강남병원은 내과, 산부인과, 신경외과, 응급의학과, 정형외과 등 20개 진료과목과 함께 밤 12시까지 소아청소년 환자를 보는 달빛어린이병원을 운영 중이다. 정영진 병원장은 “앞으로가 문제”라며 중소병원 운영 상황이 공백 봉합 여부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병원장은 “어려움에 처한 지방 중소병원이 많은데, 이 병원들은 언제든 지역 환자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며 “의료전달체계의 획기적 개선을 통해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틀기 위한 물꼬를 튼다면 위기를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양 병원장은 이번 기회에 중소병원의 역할과 기능이 국민에게 인식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는 “간단한 외과 수술부터 응급질환 처치까지 웬만한 치료는 중소병원에서 많이 이뤄진다. 중소병원에 대한 환자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며 “전달체계가 확실히 자리 잡으면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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