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 돈 내라는 말도 이해하지만” 근심 느는 실버택배원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3-03-06 0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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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 돈 내라는 말도 이해하지만” 근심 느는 실버택배원 [쿠키청년기자단]
택배회사 대표 배기근씨가 손님의 전화를 받고 있다.   사진=류효림 쿠키청년기자


“뚜루루 뚜루루”

전화벨 소리가 작은 사무실 안에 울려 퍼졌다. 앉아 있던 노인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전화를 받은 택배회사 배기근(74) 대표의 입술에 이들의 눈빛이 꽂혔다. 지난달 19일 오전 9시, 서울 중구의 한 실버 택배 회사 하루가 그렇게 시작됐다.

“다음” 배 대표의 부름에 백남기(85)씨는 고개를 빼고 자신을 부르는 것인지 살폈다. 이곳 택배원들은 모두 정년이 지난 65세 이상의 노인이다. 출근 순서대로 일을 배정받기 때문에 대부분 일찍 도착해서 일을 기다린다. 오전 9시에 출근했지만 백씨의 순서는 아직 오지 않았다.

“나도 어제 한 시간 넘게 기다렸어.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일이 없어” 옆에 앉아있던 다른 실버 택배원이 백씨에게 말했다. 앉아서 손님의 전화를 기다리는 상황이 그들에게는 익숙했다. 백씨 이름이 불린 건 10시쯤이었다.

“노인들 돈 내라는 말도 이해하지만” 근심 느는 실버택배원 [쿠키청년기자단]
백남기씨가 손님에게 전화를 걸어 배송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류효림 쿠키청년기자

대표가 건넨 주문표를 받아 들고 천천히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백씨는 익숙한 듯 손님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 목적지와 업무를 확인했다. 서울 강서구 발산동 한 결혼식장에 축하기를 설치하고, 끝나면 다시 가져오는 일이었다. 백씨가 한 손에 기를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백씨의 걸음걸이가 느리고 불편했다. 다리를 절뚝이며 걷던 백씨가 굵은 기침을 내뱉고 숨을 몰아쉬었다.

지난해 봄, 백씨는 갑자기 쓰러져 머리를 여섯 바늘 꿰맸다. 집에서 쓰러져있던 그를 아들이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병원으로 옮겨졌고, 빠른 처치 덕분에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병원에서는 백씨의 심장이 약하고 혈압이 있다고 했다. 그날 새벽 5시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백씨는 3시간 후 출근했다. “(아프다고) 누워있으면 뭐 해요. 낫지도 않는데” 백씨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픈 몸으로 배달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나이 들어서 불러주는 곳도 없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면 돈이 드는데 이건 그냥 몸만 움직이면 되니까…. 지하철 택배 아니면 일할 곳도 없어요” 실버 택배원들은 65세 이상 고령자로 지하철 운임을 전액 할인받는다. 백씨도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그나마 이 일을 할 수 있었다.

“노인들 돈 내라는 말도 이해하지만” 근심 느는 실버택배원 [쿠키청년기자단]
또 다른 실버 택배원 최상석(68·가명)씨가 택배를 가지고 지하철을 타고 있다.   사진=류효림 쿠키청년기자

오전 11시, 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4가역에서 백씨가 출발했다. 물건을 잊고 내릴까 봐 그는 항상 걱정했다. 깃발을 다리 사이에 꼭 끼고 앉았다. “앉아서 가면서 이 생각 저 생각 다 해요. 어떨 땐 팔십 평생 내가 뭐 했나 생각도 하고요” 어딘가로 바쁘게 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백씨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그렇게 20개 역을 이동했고 오전 11시55분 지하철 5호선 발산역(배송지)에 도착했다.

오후 12시10분, 축하기를 설치한 백씨가 식장 로비 구석에 앉았다. 그렇게 한 시간 조금 넘게 기다렸다. 결혼식이 끝나자 백씨가 깃발을 회수해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니 오후 2시30분이었다.

“노인들 돈 내라는 말도 이해하지만” 근심 느는 실버택배원 [쿠키청년기자단]
택배 사무실에 붙은 업무 절차.   사진=류효림 쿠키청년기자

배송 하나를 완료하기까지 총 3시간30분이 걸렸다. 그리고 2만2000원을 벌었다. 모든 배송비는 백씨와 회사가 7:3으로 배분한다. 3시간30분을 일하고 그가 번 돈은 1만5400원이었다. 시간당 4400원 정도를 번 셈이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은 9620원이다. 4400원은 최저임금에 반도 되지 않지만, 이마저도 지하철 무임 혜택이 있기에 가능한 벌이다. 무임승차 혜택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2500원(1250*2), 택시를 이용할 경우 편도로만 2만700원이 든다. “지금도 하루 꼬박 일해서 1~2만 원 정도 벌어요. 무임승차 혜택이 없어지면 번 돈의 30%를 교통비로 쓰게 되고, 그럼 우린 이 일 못 해요” 백씨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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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입구에 위치한 식탁. 1000원을 내면 실버 택배원들이 이곳에서 라면을 먹을 수 있다.   사진=류효림 쿠키청년기자

점심시간을 한참 넘긴 시간이었다. “‘오늘은 돈 생각 말고 먹자’ 하다가도, 서너 시간 고생해서 번 돈인데 밥 한 끼 먹는 데 쓰기 아까우니까요” 식사는 안 하느냐는 물음에 백씨가 답했다.

식재료 등 밥상 물가가 치솟으며 외식비도 크게 올랐다. 서울 시내의 평균 밥값은 지난해보다 약 9~12% 올랐다. 칼국수 8615원, 비빔밥 1만원, 냉면도 1만원을 넘겼고 삼계탕 한 그릇은 1만6000원까지 치솟았다. 한 끼를 제대로 먹으려면 3시간30분간 일해 번 돈 반절 이상을 써야 했다.

사무실 입구 옆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식탁. 1000원을 내면 라면을 먹을 수 있다. 백씨와 함께 실버 택배 일을 하는 최상석(68·가명)씨가 라면으로 한 끼를 때우려고 자리에 앉았다. 다른 실버 택배원 김남순(70·여·가명)씨는 집에서 김밥을 싸 왔다. 배송을 마치고 지하철역 근처에서 김밥을 먹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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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회사 대표 배씨가 업무를 종이에 정리하고 있다.   사진=류효림 쿠키청년기자

백씨가 두 번째 일을 받은 시간은 오후 5시였다. 첫 번째 배달을 다녀온 지 2시간30분이 지났다. 경기 침체의 여파로 손님이 줄어들어 배달을 나가는 일도 쉽지 않아졌다.

어떤 거리에 어떤 물건을 배송하는지는 모두 운에 달렸다. 운이 좋은 날은 가까운 곳에 가벼운 물건을 배송한다. 그렇지 않은 날엔 먼 곳이, 심지어 지하철에 내려서 15분가량 걸어가야 하는 곳이 걸리기도 했다. 성치 않은 몸으로 15분을 내리 걷기도 힘든데 게다가 무거운 물건까지 들고 가려면 힘에 부쳐 버스를 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현재 노인 무임승차 제도는 65세 이상 고령자의 지하철 운임을 전액 할인하고 있지만 버스는 해당하지 않는다. 교통비 1250원을 내고 배송한다면 벌이가 3분의 2로 줄어든다. 버스를 탈 경우 손님에게 추가 배송비를 요청한다. 그러나 손님이 이를 거절할 경우 실버 택배원들이 버스비를 부담해야 한다. ‘운임까지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면 지하철 택배를 이용할 손님이 있을까’ 백씨는 걱정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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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씨가 아픈 다리로 계단을 오르고 있다.  사진=류효림 쿠키청년기자

이날 백씨의 두 번째 일은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택배를 받아 강남구 쇼핑몰 내에 있는 한 회사에 배송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번에도 다리를 절뚝이며 사무실을 나섰다. 아현동까지 가는 지하철은 승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출퇴근 시간에 자리가 없는 건 비일비재해요” 백씨가 익숙한 듯 지하철 통로 한편에 섰다. 30분을 서서 이동했다. 백씨는 지하철 2호선 아현역에서 내려 한 빌딩 앞에 도착했다.

택배 수거를 위해 가야 하는 회사는 5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계단이 많아 오르던 백씨가 중간중간 걸음을 멈췄다. 무릎이 매번 말썽이었다. 힘겹게 계단 손잡이를 잡고 올라가는 백씨의 손에 멍이 들어있었다. 지하철에서 바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가방에 부딪혀 생겼다고 했다.

“여기가 맞는데….” 백씨가 문 앞에 서서 한참을 서성였다. 기자가 옆 사무실이라고 일러주자 눈이 침침해 이럴 때가 있다며 머쓱하게 웃었다. 똑똑. 회사 문을 두드렸다. 배송할 물품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했다. 백씨는 이런 일이 종종 있다며 말없이 기다렸다. 10여분을 기다려 받은 배송물은 꽤 무거웠다. “이 정도는 거뜬히 든다”고 했지만 지하철역까지 가는 내내 백씨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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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씨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류효림 쿠키청년기자

가까스로 지하철에 올라탔다. 창가를 보니 노을이 지고 있었다. 배달을 마치기도 전에 하루가 다 지나갔다. 백씨는 아무리 늦어도 들어온 주문은 마친다며 오늘처럼 늦게까지 일하는 날이 많다고 했다. 한강을 지나는 지하철 창을 보며 백씨가 아픈 무릎을 매만졌다. 반나절 내내 돌아다녀 지친 모습이었다.

오후 7시7분, 백씨가 배송을 마쳤다. 두 번째 배송을 완료하기까지 총 2시간7분이 걸렸고, 1만2000원을 받았다. 회사와 돈을 배분하고 백씨에게 떨어진 금액은 8400원이었다. 시간당 4200원이다. 무임승차 혜택 없이 대중교통으로 이동했다면 2900원(1450원*2)이 추가로 빠졌을 것이다.

백씨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10시간을 일했다. 총수익은 2만3100원이다. 백씨는 2만원 남짓이라도 벌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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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지고 멍 든 백씨의 손.   사진=류효림 쿠키청년기자

백씨가 실버 택배원이 된 지 13년이 넘었다. 과거에는 인형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정년 퇴임을 하고 나서 이 일을 시작했다. 기초연금 26만1000원으로는 생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백씨는 현재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부인도 기초연금 26만1000원 수령해 부부가 받는 금액은 총 52만2000원이다. 그렇지만 이 돈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기초연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건 불가능하죠. 제가 택배 일로 한 달에 40만원 정도 버니까 합쳐서 90만원 정도예요. 그걸로 사는 거죠. 이 일은 내가 걸을 수 있을 때까지 해야 해요” 백씨가 말했다.

현재처럼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지 못한다면 지하철 택배일도 유지하기 어렵다. 대략 하루에 버는 돈 2만3100원 중 6450원(출퇴근 1250원*2 + 첫 번째 배달 1250원*2 + 두 번째 배달 1450원)을 교통비로 지출해야 한다. 번 돈의 30%, 한 달에 10만원을 교통비로 쓰게 되는 것이다. 열 시간을 나가 일하면서도 밥 한끼 먹는 돈을 고민하는 백씨에게 10만원은 무게는 너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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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기 위해 이동하는 백씨 뒷모습.   사진=류효림 쿠키청년기자

교통공사의 경제적 요인만을 위해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을 상향하거나 폐지하기엔 고려해야 할 제반 사항이 많다.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 운임 내라는 것도 이해는 해요. 그런데 무임 혜택이 없으면 우리는 다 실직자가 되니까….” 백씨가 한숨을 쉬었다.

백씨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집에는 아픈 부인이 기다리고 있다. 부인은 어지럼증이 심해 거동이 불편하다. 약도 들지 않아 병원을 가지 않은 지 꽤 됐다. “그 사람이 제일 고생이지” 백씨가 집으로 가는 걸음을 재촉했다.

류효림 쿠키청년기자 andoctob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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