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소년을 어떻게 파괴하는가, ‘화란’ [쿡리뷰]

기사승인 2023-10-11 06: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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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소년을 어떻게 파괴하는가, ‘화란’ [쿡리뷰]
영화 ‘화란’ 스틸.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11일 개봉한 영화 ‘화란’(감독 김창훈)은 핏물처럼 끈적하고 비릿하다. 무정한 사회가 연약한 소년을 쥐고 흔든다. 소년은 수렁에서 탈출하려 애쓰지만, 놓는 수마다 죄다 악수(惡手)다. 그가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누구도 보호하지 않는 소년에게 좋은 수라는 게 있을 리 없다. 영화가 상영되는 2시간 내내 늪지대에서 몸부림치는 기분이 든다. 호불호야 나뉘겠지만 인상만큼은 강렬하다.

고등학생 연규(홍사빈)에겐 돈이 절실하다. 동생 하얀(김형서)의 편을 들다 불량배들과 싸웠다가 합의금으로 300만원을 내야 하는 처지다. 연규와 하얀은 한집에 살지만 피가 섞이진 않았다. 연규의 어머니와 하얀의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둘은 남매가 됐다. 아버지는 툭하면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하면 매를 든다. 연규는 돈 나올 구멍을 찾고 찾다 치건(송중기)이 이끄는 동네 폭력 조직에 발을 들인다. 치건은 연규를 돕는 것 같기도 망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새 불행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어두운 과거를 가진 두 남자가 폭력 조직 안에서 뒤엉키는 이야기는 느와르 영화에서 이미 흔하다. ‘화란’은 어둡고 질척한 분위기로 장르적 색깔을 지키면서도, 연규를 통해 낯설고 복잡한 질문을 던진다. 폭력적인 세계는 한 소년을 어디까지 내몰 수 있는가. ‘화란’으로 데뷔한 김창훈 감독은 앞선 언론배급시사회에서 “폭력적인 환경은 한 소년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그런 환경에서 자란 소년의 선택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 두 가지 질문을 따라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영화 제목인 ‘화란’은 네덜란드를 한자로 표현한 말이다. 극중 연규는 절망에서 탈출해 “누구나 비슷하게 사는” 화란으로 가고자 한다. ‘희망 없는’(Hopeless)이란 뜻의 영어 제목과 달리, 영화 마지막 장면은 희미하게나마 볕이 드는 느낌을 준다. 송중기가 출연료를 받지 않고 출연해 일찌감치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자신의 출연료 때문에 제작비가 늘면 흥행을 위해 영화 정서와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 추가될까 걱정해서 노 개런티를 결정했다고 한다. 작품은 제76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재능 있는 신인 감독의 영화를 소개하는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대받았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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