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더 꼬였다…의료계 단일안커녕 내분

기사승인 2024-04-09 20:5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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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갈등 더 꼬였다…의료계 단일안커녕 내분
서울 시내의 한 대형병원. 사진=곽경근 대기자

총선 이후 예정됐던 의료계의 합동 기자회견이 불발됐다. 의료계가 대표성 있는 대화 창구를 마련해 의정 갈등의 돌파구를 찾을 거란 기대가 나왔지만, 내부 의견 조율에 실패하며 자중지란에 빠진 모양새다. 

의협, 차기 회장-비대위원장 주도권 실랑이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은 9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의협 회장 선거를 마치면서 대내외적으로 비대위를 흔들려는 시도가 있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협 내부에 내홍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임현택 차기 회장 측인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지난 8일 의협 대의원회와 비대위원장에게 “임현택 당선인이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임 당선인의 임기는 다음달 1일 시작하는데, 그 전부터 의대 증원 관련 현안 대응의 전권을 쥐고 있는 의협 비대위를 이끌겠단 뜻이다. 

인수위는 공문을 통해 “비대위 운영 과정에서 당선인 뜻과 배치되는 의사결정과 대외 의견 표명이 여러 차례 이뤄졌고 이로 인해 극심한 내외의 혼선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의정갈등 더 꼬였다…의료계 단일안커녕 내분
지난달 27일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오른쪽)과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이 대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택우 비대위원장은 임 당선인의 사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운영규정의 내용상 비대위의 해산 또한 전적으로 대의원회의 권한”이라며 “이러한 규정을 벗어난 주장을 하는 것은 현 정부가 밀어붙이는 정책과 같이 절차를 무시한 무리한 주장과 다를 바 없다”고 날을 세웠다. 

임 당선인이 지금도 비대위원을 맡고 있는 만큼, 의견 반영이 충분히 가능하다고도 했다. 김 위원장은 “당선인은 현재 비대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어 비대위 회의 석상에서 발언을 한다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다”며 “보도자료를 통해 의사를 밝히고 있는 점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짚었다.

최근 이뤄진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과 윤석열 대통령의 면담에 대해서도 의협 비대위와 임 당선인의 평가가 엇갈린다. 의협 비대위는 “유의미하다”고 공식 입장을 내놓은 반면, 임 당선인은 “밖의 거대한 적보다 내부의 적 몇 명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전공의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분출되는 모습이다. 전공의 내부에서는 대통령 독대를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면담 내용을 공식적으로 공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 위원장 탄핵에 동의해달라는 성명서가 돌기도 했다.

‘한목소리’ 낸다던 의료계…합동 기자회견 불발

합동 기자회견 준비 과정에서 전공의 대표와 불협화음까지 노출되면서 좀처럼 단일대오를 이루기 어려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회의를 갖고 정부가 요청한 ‘창구 일원화’에 화답하는 의미로 총선 이후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전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기자회견 예고 하루 만에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이 페이스북을 통해 “합동 브리핑 진행은 합의한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성근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9일 브리핑에서 “박 위원장도 (합동 기자회견을 결정하는 비대위)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지만, 결의하거나 의결한 사안은 아니다”라면서 “아마도 대전협 내부 논의 과정에서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나왔을 수도 있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그런 의견을 남겼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합동 기자회견은 무기한으로 미뤄졌다. 김 위원장은 “이번주 예정된 합동 기자회견의 성사 여부는 지금으로선 불투명하다”며 “가능하면 빨리 (의료계가 함께) 의견을 말씀드리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실행 여부는 조금 더 기다려달라”고 밝혔다. 

의정갈등 더 꼬였다…의료계 단일안커녕 내분
지난 1일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한 환자가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 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의료계가 사분오열하며 의정 대화도 다시 안갯속으로 접어드는 형국이다. 정부가 의대 증원 규모 조정 가능성을 시사하며 대화에 의욕을 보이고 있지만, 의료계는 내분으로 인해 협상 테이블에 앉을 대표자를 지목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의정 갈등이 길어지는 사이 환자들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등 9개 환자단체가 모인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9일 “전공의 및 교수 집단사직으로 인한 초유의 의료공백 사태 장기화는 중증·희귀난치성질환 환자들에게 엄청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며 “우리가 바라는 것은 환자들이 더 심각한 피해를 보기 전에 이 사태가 하루빨리 종결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연합회는 이날 의료진의 조속한 복귀를 위해 국회가 중재에 나서달라는 요구를 담아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올렸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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