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에 희생되는 간호사…“법적 보호망 필요”

복지부·간협, ‘간호사 역량 혁신방안’ 토론회 개최
업무 규정 모호한 ‘전문간호사’…“업무범위 명확히 해야”
전공의 빈자리 지키는 ‘전담간호사’…“관리체계 마련 시급”
정부,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 마련 속도

기사승인 2024-04-18 17: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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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공백에 희생되는 간호사…“법적 보호망 필요”
보건복지부와 대한간호협회는 18일 서울 중구 LW컨벤션에서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간호사 역량 혁신방안’을 주제로 ‘제7차 의료개혁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신대현 기자

정부가 전공의 집단 이탈에 따른 진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간호사의 활용을 확대하는 가운데 법적 보호망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역할을 강화하는 데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양질의 필수의료 간호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전문간호사·전담간호사 제도를 활성화하고 법적 보호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와 대한간호협회는 18일 서울 중구 LW컨벤션에서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간호사 역량 혁신방안’을 주제로 ‘제7차 의료개혁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전문간호사와 전담간호사 제도 활성화를 위해 관련 법률을 정비하고, 표준 교육과정을 마련해 적정한 평가·보상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짚었다.

김정렬 고려대 간호대 교수는 필수의료 확충에 필요한 양질의 간호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전문간호사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간호사란 의료법 제78조에 따라 보건·마취·정신·가정·감염관리·산업·응급·노인·중환자·호스피스·종양·임상·아동 등 13개 분야에 대해 복지부 장관이 인정하는 전문 자격을 가진 간호 직종이다. 지난 2003년 처음 법제화된 전문간호사 제도는 2005년 첫 자격시험이 시행된 이래로 올해 20년째를 맞았다. 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문간호사 자격 취득자는 1만7135명이다.

김 교수는 “전문간호사가 공통적으로 수행하는 업무에 대한 규정이 모호해 구체적 업무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며 “분야별 전문간호사 특성을 고려한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임상현장에서 전문간호사가 수행하는 업무를 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간호사 역량 강화를 위한 체계적인 보수교육과 성과평가체계가 갖춰져야 한다고도 했다. 김 교수는 “그동안 전문간호사의 업무가 의료기관별, 진료과별로 각기 다르며 업무 행위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아 효과 평가가 어려웠다”며 “전문간호사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교육 과정을 마련하고, 제도적 뒷받침과 함께 필수 배치 기준 및 적정 수가가 도입된다면 전문간호사들이 의료현장에 잘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0개 분야 전담간호사 교육을 실시하는 미국과 19개 분야 인정간호사 교육 제도를 운영하는 일본처럼 한국도 전담간호사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본격적인 전문교육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전담간호사란 지난 2월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발생한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정부가 의사 업무 일부를 간호사에게 위임하면서 이들에게 붙인 가칭이다. ‘PA 간호사’나 ‘진료지원 인력’으로도 불리는 전담간호사는 3월 말 기준 총 8982명이다.

복지부는 전담간호사를 2715명 증원해 1만1000여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 2월27일부터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전담간호사들이 일부 의사 업무를 대신할 수 있도록 했다. 간협과 협력해 전담간호사 교육도 시작됐다. 교육 대상은 새로 배치될 예정인 전담간호사, 경력 1년 미만 전담간호사 그리고 이들의 교육을 맡는 간호사 등이다.

이지아 경희대 간호과학대 교수는 “그동안 특수 분야 간호를 전담하는 간호사가 각 병원에서 자생적으로 양성되고 있었으나 교육 과정과 업무 범위, 역할, 명칭 등이 불분명하고 혼재돼 사용되고 있었다”며 “간호사 경력 개발을 위해 직무역량 중심의 전담간호사 분야별 교육 훈련이 시급하다”고 짚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1995년부터 인정간호사 제도를 운영하며 19개 분야별로 800시간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은 10개 분야에 전문 지식과 숙련된 기술을 갖춘 전담간호사 공인제도를 시행하며, 분야별로 일정한 실무·임상 경력과 교육을 충족한 간호사가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전담간호사로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교수는 “정부와 간협이 함께 진행하는 전담간호사 교육을 통해 임상경력 1년 이상인 간호사를 대상으로 수술·외과·내과 분야, 경력 2년 이상인 경우엔 응급·중증 분야에 대한 교육을 먼저 실시할 계획”이라며 “이번 의료공백 상황에서 간호사의 업무 수행 기준이 마련된 만큼 시범사업이 종료된 후에도 전담간호사의 역할을 정립해 이들이 법적으로 보호·관리 받을 수 있도록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현장 간호사들의 바람도 이어졌다. 홍정희 삼성서울병원 간호부원장은 “토론회에 오기 전 병원 환자들에게 전문간호사에 대한 평가를 물어봤다. 환자들은 전문간호사가 ‘교수도 못해주는 세밀한 케어까지 해준다’ ‘나를 너무 잘 알아서 항상 든든하다’ ‘중증질환을 앓고 있어도 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돼준다’ 등의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며 “정부는 전문간호사 교육 과정 및 보상체계 개편, 수가 신설, 배치 기준 수립 등 전문간호사 확대를 위한 전략을 계속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는 전담간호사를 조속히 법제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전담간호사는 지금의 비상진료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간호사가 임상현장에서 전문 의료인으로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도록 지난해 4월에 마련한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을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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