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완화, 서민 정책인가 [기자수첩] 

기사승인 2021-12-16 0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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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완화, 서민 정책인가 [기자수첩] 
금융당국이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가계부채를 관리하기 위해 부채 구조조정(대출 규제)에 나서고 있지만 대선이라는 변수를 만나면서 좌초될 위기에 놓여있다. 

최근 여야 대선후보들이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어서다. 이미 두 후보는 서민과 실거주자를 위해 대출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심지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대선 공약 중 하나가 ‘기본대출’이다. 이 정책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최대 1000만원을 장기간(10∼20년) 저금리(약 2.8%)로 대출해 주는 제도다. 

윤석열 후보도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는 지난 10월 대출 총량 규제와 관련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금과 같은 정부 당국의 갑작스럽고 무리한 규제는 부작용만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두 후보의 금융업에 대한 인식은 피상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서민과 실거주자를 위해 대출을 일정부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출을 완화하는 것이 서민들을 위한 정책인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유동성 강화를 위해 대출 규제를 크게 풀었으나 사실상 수혜자는 고소득·고신용자였다. 보험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고신용자 대출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20%를 오른 반면, 저신용자 대출 증가율은 오히려 10% 하락했다.

더군다나 시장에 유동성이 확대되면서 빚투 비중도 커졌다. 올해 2분기 기준으로 가계부채는 1805조9000억원에 달한다. 현재 국내 GDP를 웃도는 수준이다. 이 가운데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청년세대 부채(2분기 기준)는 485조7900억원으로 전체 26.9%를 차지했다. 

또한 부채 주도의 성장정책으로 주택시장도 급격하게 상승했다.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7월 전국 주택가격이 전년 말 대비 5.98%, 1년 전과 비교하면 8.81% 올랐다. 이는 지난 2008년 같은 기간에 6.18%, 8.59% 오른 것 이후로 13년 만의 최대 상승 폭이다.

실제 대출 완화는 주택시장의 과열을 야기한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도 저금리에 따른 대출 규제 완화, 신용등급이 낮은 주담대(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가 영향을 미쳤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생계가 막막한 자영업자, 중소상인들에 대한 규제 완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단순한 대출 규제 완화 정책은 부작용을 야기한다. 한때 정부가 서민과 실거주자를 위해 전세대출을 대폭 완화했지만 수혜를 입은 이들은 투기세력(갭투자)들이었다. 

대출 규제로 인한 사회적 반발, 혹은 역효과도 간과할 순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직면한 경제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내부적인 경제근간이 취약할 경우 외부 충격은 보다 커질 수 있어서다. 미국발 미국 금리 인상과 테이퍼링의 본격화가 실행될 경우 발생할 다각적인 리스크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 

선의에 의한 정책이 항상 올바른 것은 아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라는 격언이 있다.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어록이다. 정책은 늘 일관성을 가져야 하고 장기적인 플랜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치 논리가 경제를 지배할 경우 발생할 부작용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유수환 기자 shwan9@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