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관계, 인지상정보다는 '쿼드 프로 쿼'가 중요하다 [쿠키칼럼]

한미 관계 '기브 엔 테이크'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기사승인 2022-10-17 11: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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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석
1980년생.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청소년기와 20대를 보내고 미국으로 유학을 와 뜻하지 않았던 이민자가 되었다. 신학, 경영학, 비영리경영학 등을 전공하고 30대에 우연히 접하게 된 미연방의회를 향한 한국계 미국 시민들의 시민활동에 이끌려 지금은 워싱턴 DC에 자리한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의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미연방의회를 드나들며 축적한 경험과 지식으로 소수계인 한인사회의 권익을 옹호하고, 모국인 한국과 자국인 미국의 관계증진에 바탕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지금도 워싱턴 DC '캐피톨 힐'을 누비고 다닌다.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한미관계, 미국의 사회, 정치, 외교를 말하고자 한다.

한미관계, 인지상정보다는 '쿼드 프로 쿼'가 중요하다 [쿠키칼럼]
송원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사무총장

[쿠키칼럼] 

지난 두 달간 워싱턴 DC에서 한국 관련한 가장 '뜨거운 감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2022년 8월 16일에 서명한 IRA(Inflation Reduction Act)라고 하는 사안이라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자 시절 내세웠던 경제, 의료, 기후변화 대응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다.

미국 대통령이 당선된 후 민심을 처음 확인할 수 있는 중간 평가 격의 의미를 지닌 사안이기도다. 11월 중간선거 (35명의 미연방 상원의원, 435명의 미연방 하원의원, 36명의 주지사 등을 선출한다)를 앞두고 IRA는 집권 여당인 민주당과 바이든 행정부가 반드시 유권자들에게 성과로 보여줬어야 했던 실적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미국 내 여론과 유권자들을 위한 법안임에도 뜻하지 않게 한국산 전기차가 희생양이 되었다.

각층에서 나오는 이번 사태에 대한 분석과 비난 그리고 앞으로의 대책을 살펴보면 옳고 그름을 명확히 하기가 쉽지 않다. 예견을 못 한 정부를 질책하는 목소리가 옳지만, 아무도 알 수 없이 급박하게 이뤄졌다는 설명도 사실이다.

정의를 말한던 큰형 같은 미국 기대 말아야

한국의 대미의회 로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맞다. 일각에서는 여러 사건을 몰아 외교 참사 및 무능의 결과로 지적하지만 그렇게 자국을 비하할 만한 일도 아니다. 언급되는 잘못과 지적을 지금 다 수정한다고 해도 내년, 내후년에 이러한 일이 또 벌이지 지 않는다는 것은 장담할 수 없다.

그만큼 미국의 국내정치, 민심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미·중 갈등을 필두로 한 국제질서 재편의 상황에서 여유롭게 동맹과 상호주의, 정의를 말하던 큰형 큰누나 같은 미국을 이제는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2년마다 치러지는 연방선거의 직격탄을 맞는 미연방의회는 동맹의 이슈보다 눈앞의 선거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또한, 연방의회는 지난 10년을 사무실만큼 드나든 나에게도 이제 열 중에 겨우 하나를 아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쉽지 않은 곳이다.

단기간의 노력으로 그곳 깊숙한 곳에서 펼쳐지는 일을 모두 파악하고 사전에 대응한다는 것은 사실 기적과도 같은 일이고 불가능 한 일이다. 연방의회에서 30년을 일한 수석보좌관도 은퇴 후 3개월만 지나도 의회의 중요한 정보에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 미연방의회이다.

지난 두 달 동안 이 사건이 일어난 워싱턴 DC에서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

이 사안은 단기적인 대응과 관계부처 또는 관계자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가 전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지상정의 문화와 전통적인 한미 두 나라의 관계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이만큼 했는데 왜 몰라주냐?".인지상정 화법 한국인

“가장 큰 문제는 왜 미리 몰랐느냐, 대응을 잘못했다”가 아니라,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이 이 사안에 대해 이렇게 반응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잘못에 대한 질타, 자국의 외교능력에 대한 비하보다는 전통적으로 우리가 미국과 어떻게 비즈니스를 해 왔고 외교를 해왔는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접근을 해 보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내가 이만큼 하면 저쪽에서 이 정도는 알아주겠지' 하는 인지상정의 문화, '내가 이만큼 투자를 하는데 설마 나에게 불이익을 주겠어'라는 감정과 인정 기인한 접근방식과 기대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이 큰 나라이고 동맹이기 때문에 명분으로 만으로도 한국의 말을 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도 버려야 할 것이다. 비단 IRA 사태뿐만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후자의 경우도 빈번한 것이 사실이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 대가도 항상 제시해야 한다. 다시 말해 선결제도 말고 외상도 기대하지 말라는 말이다.

라틴어에 'quid pro quo'라는 말이 있다 '~에 대한 보상으로 주는 것' 즉 영어로 표현하자면 'give and take'와 유사한 표현일 것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한국과 비교해 물적으로나 양적으로 비교도 되지 않는 큰 나라였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으로 이익을 받는 게 당연하였고, 미국도 요구하는 게 당연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 명확한 계산서를 따지지 않아 왔었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미국과의 사이에서도 이해의 충돌(Conflicts of interests)이 생겨나고 있다. 어떤 경우에서는 이제 한국이 미국의 경쟁상대가 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나의 이익이 더 이상 우리의 이익 될 수 없는 경우들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제는 인정, 명분을 따지는 것보다 국가의 실리를 우선시하는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반드시 동맹과의 관계에서 체면을 손상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은 다른 국가의 예를 들어서 볼 수 있다.

일본과 이스라엘의 미국 상대 실리 자세 배워야

워싱턴 외교가에 반드시 등장하는 두 개의 나라가 이스라엘과 일본이다. 이스라엘은 자국 계 미국 시민을 통해 중동의 안보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미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체면의 문화로서는 따라올 국가가 없다는 일본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본인들이 준만큼 필요한 것을 꼭 받아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 때 시행된 무역확장법 232조항으로 부터 아직 벗어나지 못했지만 일본은 관세를 철폐하기로 합의한 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물론 두 국가와 한국을 단순 비교하기에는 지정학적으로도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복잡한 것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를 감안하고도 워싱턴에서 지켜보는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인정주의'를 너무 기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미국의 문화가 그렇다. 나서서 본인의 권리를 말하고 이익을 챙기는 자에게는 허락하는 혜택을 최대한으로 제공해 주지만 얌전히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자들을 알아서 챙겨주지는 않는다.

'알아서 챙겨 주겠지' 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미국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한다. '쟤는 저만큼 받아갔는데 왜 난 이만큼이야' 라고 물으면 ‘넌 더 달라고 안 했잖아’ 라고 되묻는 게 이곳의 문화이다.

무조건적인 반미, 친미보다 동등한 비즈니스 관계로 놓고 한국이 원하는 것을 미국에게 명확히 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네 편을 들면, 내가 너한테 잘하면 넌 나한테 뭘 해 줄 거야'라는 당당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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