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상해도 싸니까…돈에 눌린 장거리 통학생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3-04-24 06:05:02
- + 인쇄
몸 상해도 싸니까…돈에 눌린 장거리 통학생 [쿠키청년기자단]
김한재씨가 통학을 위해 상록수역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출근 시간에는 승객이 많아 김씨가 앉을 자리가 없다.   사진=변준언 쿠키청년기자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한 대학생들이 자취를 포기하고 장거리 통학하고 있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생활비 부담 탓이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 자취할 때보다 생활비 부담이 적다. 기숙사는 자체적으로 학생 식당과 세탁실 등을 갖추고 있고, 냉난방도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숙사는 일부 학생만 수용할 수 있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22년 서울 시내 주요 대학(경희대, 고려대, 서강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 기숙사 수용률 평균값은 13.2%에 그쳤다.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에게는 자취라는 차선책이 있다. 하지만 꾸준한 물가 상승으로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달 23일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가 발표한 등록금 및 생활비 인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2076명 중 53명이 생활비 부담으로 인해 ‘자취를 그만두고 본가에서 통학하는 등 거주 변화를 겪었다’고 답했다.

[쿠키청년기자단] 장거리 통학생 삶. 영상=변준언 쿠키청년기자

할 수 있는 건 그저 달리는 것뿐


지난달 14일 오전 7시, 경기 안산시 한 버스 정류장 앞. 김한재(27)씨가 상기된 얼굴로 거친 숨을 내쉬었다. “52번 버스 타려고 뛰어왔는데 놓쳤어요.” 김씨는 성균관대 대학원생이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학교까지 편도 2시간, 왕복 4시간을 통학하고 있다. 이 정류장은 김씨 통학길의 출발점이다. 시작부터 순탄히 않은 하루. 김씨에게는 이미 익숙한 일상이다.

과거 학부 과정 때는 1년간 기숙사에 들어가기도 했다. 출신 지역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인 향토학사에서 생활했다. 그러나 지난 2020년 코로나19로 향토학사 운영이 중단됐다. 그때부터 같은 학교 대학원에 진학한 지금까지 3년째 집과 학교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몸 상해도 싸니까…돈에 눌린 장거리 통학생 [쿠키청년기자단]
김한재씨의 통학 과정. 지하철 4호선을 계속 이용함에도 중간에 사당역에서 열차를 갈아타는 부분이 눈에 띈다. 총 이동 시간은 환승 및 대기시간을 고려한 값이다.   그래픽=변준언 쿠키청년기자

10분을 기다리니 다음 버스가 왔다. 흔들리는 버스 안, 김씨 눈빛도 불안한 듯 흔들렸다. 도로에 차가 많아 하차 시간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평상시면 역까지 10분 걸리는데, 오늘은 20분 걸리겠네요.” 김씨가 말했다. 걱정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우려대로 20분 만에 버스에서 내린 김씨는 또 달렸다. 열차가 지하철역으로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무사히 지하철에 탔다. 내릴 역은 28개 정거장을 지나야 나오는 혜화역이다. 지하철 이동으로만 43.3km, 1시간8분 걸린다.

지하철을 탄 지 40분 만에 김씨가 내렸다. 혜화역이 아닌 사당역이었다. 사당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앉아서 갈 요량이었다. 버스에서부터 한 시간 이상을 서서 이동했다. 청년인 김씨에게도 고된 일이다. 하지만 그조차 복불복이다. 김씨처럼 앉아가기 위해 열차를 갈아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날은 운이 좋아 앉을 수 있었다.

몸 상해도 싸니까…돈에 눌린 장거리 통학생 [쿠키청년기자단]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인근에서 대학생들이 학교 셔틀버스 타고 등교하기 위해 줄 서고 있다. 사진=변준언 쿠키청년기자

김씨가 앉아가려 애쓰는 이유가 있다. 전공 서적과 노트북이 든 김씨의 가방 무게는 10kg에 달했다. “가방을 장시간 메다 보니 어깨서 매일 ‘우두둑’ 소리가 나요. 여기서 더 무리하면 몸이 상해서 통학을 못 할까 싶어 최대한 편하게 갈 방법을 생각해요.” 김씨가 설명했다.

혜화역에 내린 김씨는 또 달렸다. 학교로 가는 셔틀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버스 배차간격은 약 5분 정도로 자주 운행하지만,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 혜화역 앞에서 50m 넘게 줄 서기도 한다. “조금 늦어도 괜찮겠죠.”라고 말하는 김씨 표정에서 착잡함이 느껴졌다. 연구실에 도착했다. 시곗바늘이 9시1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몸 상해도 싸니까…돈에 눌린 장거리 통학생 [쿠키청년기자단]
강지연씨의 등교 과정. 총 이동 시간은 환승 및 대기시간을 고려한 값이다.   그래픽=변준언 쿠키청년기자

돈 아끼려면 이렇게라도…왕복 4시간35분, 눈물의 통학길


중앙대학교 3학년 강지연(22·여·가명)씨는 지난해까지 기숙사 생활을 했다. 기숙사 사용을 더는 못하게 된 올해부터는 충남 천안 본가에서 서울 동작구에 있는 학교로 통학하고 있다. 차량으로 이동한다고 해도 90km가 넘는 거리다. 등교 시 지하철로 2시간30분, 하교 시 고속버스로 2시간5분이 걸린다. 하루 4시간35분을 길거리서 보낸다.

강씨는 이번 달 교통비로 약 35만원을 지출했다. 지하철에 12만원, 고속버스에 23만원가량을 썼다. 강씨의 교통비는 절대 적지 않은 돈이지만, 자취 비용에 비하면 저렴하다. 보증금을 차치하더라도 방값만 월에 최소 60만원이 든다. 생활비와 공과금 등 별도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기숙사 비용은 월 30만원. 언제나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몸 상해도 싸니까…돈에 눌린 장거리 통학생 [쿠키청년기자단]
지하철이 출근과 통학하는 시민들로 가득 차 있다.   사진=변준언 쿠키청년기자 

지난한 통학을 그만두는 방법은 이번 학기 학점을 잘 받는 것뿐이다. 지난 학기 기숙사 합격선은 4.5 만점에 4.12였다. 그러나 장거리 통학하면서 성적 잘 받기는 어렵다. 하루 종일 이동하느라 시간이 부족하다.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크다. 강씨는 “하굣길 고속버스 안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꾸벅꾸벅 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강씨가 집에 도착하면 밤 10시가 넘는다.

결국 강씨가 공부할 시간은 등교 시간뿐이다. 강씨의 등교 필수품은 이어폰이다. 소음을 차단해 조금이라도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버스, 지하철에서 학과 공부뿐 아니라 과제도 급하게 처리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두 시간 정도. 다음 학기 기숙사에 붙으려면 강씨에겐 1분 1초가 소중하다

변준언 쿠키청년기자 byunjuneonphoto@naver.com
몸 상해도 싸니까…돈에 눌린 장거리 통학생 [쿠키청년기자단]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