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 똑똑히 뜨고 봐야 할 ‘서울의 봄’ [쿡리뷰]

기사승인 2023-11-22 11: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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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 똑똑히 뜨고 봐야 할 ‘서울의 봄’ [쿡리뷰]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1979년 12월 12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시간은 긴박하게 흘러갔다. 한남동에서 울린 총성을 시작으로 권력을 탐내는 이들의 야욕이 서울을 잠식했다. 이들이 수도를 장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9시간. 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은 숨 가쁘게 돌아간 9시간을 살핀다.

10·26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계엄사령관을 맡은 육군참모총장 정상호(이성민)는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의 권력욕을 감지한다. 대통령이라도 된 듯 기세가 등등해서다. 이에 정상호는 강직한 이태신(정우성)을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임명한다. 이태신은 고지식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정치에는 신경 끈 ‘진짜 군인’으로 평가받는다. 그가 내내 고사하던 수도경비사령관을 수락하자 전두광은 그를 포섭하려다 곧 견제한다. 

‘서울의 봄’은 상상을 덧대 반란군이 서울을 장악하기 위해 벌인 짓들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군인들의 노력을 조명한다. 당시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던 건 비선실세 조직 하나회였다. 하나회의 정점에 선 전두광은 전 대통령 시해사건을 조사하던 합수부와 중정을 장악하고 눈엣가시였던 참모총장을 몰아내기로 결심한다. “혁명의 밤은 짧지만 그 영광은 길다”는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모두를 선동한다. 하나회 인사들은 반신반의하고 갈등하다 전두환이 몰아가는 야욕의 열차에 올라타기로 한다. 이태신은 헌병감 김준엽(김성균), 특전사령관 공수혁(정만식) 등과 함께 이들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애쓴다. 이미 모두가 아는 역사지만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이 더해진다. 대규모 대치 장면이나 총격전을 보다 보면 현장에 존재하는 듯한 긴박감까지 솟구친다. 2시간에 달하는 상영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두 눈 똑똑히 뜨고 봐야 할 ‘서울의 봄’ [쿡리뷰]
‘서울의 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두 눈 똑똑히 뜨고 봐야 할 ‘서울의 봄’ [쿡리뷰]
‘서울의 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보는 것만으로도 관객을 그날 그 순간으로 데려간다. 당시 시대상을 충실히 재현한 건 물론 급박하게 돌아가던 상황들을 생생히 보여준다. 명분이나 실리 다툼, 정의와 악의라는 개념을 앞세우지 않고 반란군과 진압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춘다. 지나치게 설명하려 하지 않는 게 ‘서울의 봄’의 강점이다. 이태신을 중심에 놓고 사건을 다루니 그날 그 사건을 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지난한 현실에 놓인 관객은 저마다 가치판단을 거쳐 그날을 바라보게 된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면 그날의 진실에 자연히 궁금증이 생긴다. 실제 역사와 영화적인 해석을 거쳐 창작한 부분을 겉돌지 않게 아우른 연출력이 일품이다. 

연출을 비롯해 배우들이 어느 때보다도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주요 등장인물만 70명에 다다를 정도로 대규모 인원이 등장하지만 번잡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극에 중심이 단단히 잡힌 데다, 지도와 도식·자막 등 편집을 적절히 활용한 덕이다. 여기에 베테랑 배우들의 걸출한 연기가 더해지니 몰입감은 절로 따라온다. 전두광을 연기한 황정민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대중에게 익숙한 기존 모습을 뛰어넘는 신세계를 열어젖혔다. 강직한 이태신을 완성한 정우성 역시 인상적이다. 단정한 평소 이미지와 꼿꼿한 이태신이 만나자 시너지 효과가 더해진다. 관객에게 이 영화의 무게중심이 이태신임을 납득시키고, 동시에 그에게 자연스럽게 이입할 수 있도록 한다. 1980년대 당시 학생 운동에 앞장선 것으로 유명한 안내상이 반란군 수뇌부를 연기하는 모습 역시 흥미롭게 다가온다. 모든 배우가 제 몫을 하다 보니 거슬리는 부분이 전혀 없다. 노태건을 연기한 박해준과 국방부 장관 노재현 역 김의성을 비롯해 특별출연으로 함께한 정해인과 이준혁, 정만식도 활약한다.

역사를 아는 사람은 ‘서울의 봄’이 다가간 1979년 12월12일에 더욱더 몰입할 수 있다. 역사를 잘 몰라도 ‘서울의 봄’이 이끄는 대로 그날의 9시간을 들여다보는 맛이 쏠쏠하다. 작품이 가진 속도감과 긴장감을 끌고 가는 연출, 보는 이들의 감정을 쥐고 흔드는 솜씨 역시 뛰어나다. 영화는 아픈 역사지만 그럴수록 두 눈 뜨고 똑똑히 봐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끄트머리에서는 역사를 직시하며 어떤 여지도 남기지 않는다. 씁쓸해도 외면할 수 없는 근현대를 비추며 현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모든 판단은 오롯이 관객 몫이다. 22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41분.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