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번 조사에서 막대형 목제 유물에서 상하 방향으로 새긴 ‘상부상항(上卩上巷)’명이 확인돼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상부와 상항은 백제의 수도를 편제한 오부(五部)·오항(五巷) 중의 하나로, 지난 2005년 북문지 발굴조사에서도 온전치는 않아도 ‘上卩○○’, ‘○卩上巷’명 기와편이 출토된 바 있다.
상부상항 명이 적힌 유적은 부여, 익산 등 백제의 고도에서 주로 출토되는 것으로, 정읍 고사부리성에서도 확인돼 백제 중방성으로 위상을 드러냈다.
현재까지 오부명이 새겨진 유물은 대부분 기와이고, 오부명과 오항명이 함께 기술된 것은 부여 궁남지에서 출토된 ‘서부후항(西卩後巷)’ 명 목간(木簡)이 유일하다.
이번 고사부리성에서 나온 ‘상부상항’명 유물은 나무에 새겨진 목제 유물로 최초이자, 온전한 형태로 확인된 첫 사례다.
고사부리성은 백제 오방성(五方城) 중 하나인 중방(中方)성으로, 조선시대 영조 41년(1765년)까지 읍성으로 이용됐던 곳이다.
성황산의 두 봉우리를 감싸는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둘레 1050m, 장축 길이 418m, 단축 길이는 200m 내외다.
이번 발굴조사는 남성벽 내측 평탄지를 대상으로 진행, 두 봉우리 사이의 계곡부에 해당한다.
조사 결과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조선시대의 다양한 유구와 공간 이용의 변화상이 확인됐다. 조사구역이 두 봉우리 사이 계곡부에 위치해 유수 퇴적층과 저수시설과 우물, 배수 시설(목제 배수로), 지반 보강 시설 등이 다수 확인됐다.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백제시대 층에 조성된 직사각형 모양의 구덩이(길이 640㎝, 잔존 너비 192㎝)는 내부가 오랜 기간 침수돼 얇은 점토층과 실트층이 반복적으로 쌓여있었다. 바닥에는 삿자리를 깔고, 양 가장자리에 구덩이의 길이 방향으로 한쪽에 결구를 위한 구멍을 뚫은 막대형 목재(길이 144∼148㎝, 두께 3.3∼3.6㎝)를 한 쌍씩 나란히 붙여 설치한 것이 확인됐다.
시는 이번 발굴조사를 계기로 오부와 오항의 관계, 고사부리성에서 출토된 ‘상부상항’의 의미를 파악하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출토된 목제 유물들은 현재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원형 유지를 위한 보존처리 중이며, 문화재위원 등 전문가의 유물 선별 과정을 통해 국립박물관 등에 소장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