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의 사진 하나 생각하나] “미래는 오늘의 연속 ... 오늘이라는 과일을 따먹어라”

최문갑 / 기사승인 : 2021-09-14 18:2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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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표 (우리마을대학 제2대학 학장)

박한표 학장
오늘은 카르페 디엠(carpe diem) 이야기를 한다. 이 라틴 말을 직역하면 ‘현재를 잡아라, 현재에 충실하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현재를 즐겨라’로 오해하고 있다. 그 오해는 남아 있는 것을 모두 털어서 현재를 쾌락하라는 말로 이어진다. 그러면 이러한 삶의 방식은 중독자를 만든다. 

카르페 디엠은 로마 시인인 호라티우스가 다음과 같이 한 말에서 나온다. 

Dum loquimur
Fugerit invida aetas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
남 눈치를 보고 부러워하고 흉내내다 보면 세월이 저 만큼 도망갑니다.
가르페 디엠!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신경을 덜 쓰십시오!) 

나는 이렇게 번역한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남들을 부러워하다 보낸 세월이 저만큼 흘러가네, 이 순간을 낚아 채십시오.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 일을 걱정하거나 믿지 마십시오." 

세월이 아까운 이유는 자신을 응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타인을 응시하고 타인의 인정을 목말라 하며, 타인이 원하는 것이 어느 순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스스로 최면(催眠)을 걸었기 때문이다. 최면이란 암시(暗示)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작된 수면(睡眠)에 가까운 상태를 말한다. 그 몽롱한 상태를 라틴어로 'invidia', 즉 '부러움', '선망'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하루는 네가 아닌 다른 것이 되라고 유혹하는 선망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그런 삶을 학교에서 배우고, 미디어를 통해 매 순간 접한다. 

현대인들의 삶을 지탱하는 문법이 부러움이다. 부러움이 지나치면 시기와 질투가 되어, 자신이 아닌 남을 헐뜯는다. 호라티우스는 그런 세월을 보내는 야속한 세월을 '아에타스(aestas)'라고 명명한다. 아에타스는 자신을 위한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해, 그냥 흘러가는 시간을 지칭한다. 

그리고 '카르페 디엠'에서 '다엠'은 하루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하루는 하늘이 주신 기회이다. 그 기회를 낚아채야 한다. '카르페'는 카르페레(carpere)라는 동사의 단수명령형이다. '카르페레'는 '과실을 따다', '곡식을 추수하다'라는 말이다. 농부들이 사용하던 말이라고 했다. 농부에게 가을은 자신이 봄에 심은 씨앗이 만들어 낸 기적을 거두는 때이다. 농부가 잘 익은 과일을 나뭇가지에서 떼어내기 위해서는 과일의 당분과 싱싱함이 최고인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즉 수확의 시점을 정확하게 잡아야 한다. 그 시간이 지나면, 과일은 땅에 떨어지고 만다. 


다른 각도로 말하면, 잘 익은 곡식을 얻기 위해서는 봄에 씨앗을 심고, 여름에 거름을 주고, 병충해를 막기 위해 조치를 잘 취해야 한다. 봄에 씨앗을 심고, 오랜 기간, 그 과일이나 곡식을 돌본 사람만이 '카르페레'할 수 있다. '카르페레'를 고대 그리스어의 어원을 적용하면, 과일과 곡식은 봄부터 쓸 데 없는 것들을 걸러내는 오랜 작업을 통해 얻어지는 신의 선물이다. 

정리하면, '카르페 디엠'을 번역하면, '오늘이라는 과일을 따먹어라', 혹은 '오늘이라는 곡식을 추수하라' 정도가 될 것이다. 또한 오랫동안 쓸 데 없는 가지를 쳐왔는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가지치기는 빼기이다. 더하기가 아닌 빼기의 문법이 여기에 적용되어야 한다. 내가 오늘이라는 과실을 따려고 몰입할 때, 나를 혼미하게 만드는 방해꾼이 있는데, 그것들을 제거하는 일이다. 호라티우스는 이 방해꾼을 미래에 일어날 일들, postero라고 말한다. 미래는 오지 않은 것이다. 미래는 오늘의 연장이다. 미래에 마음을 두는 일은 어리석다. 미래는 오늘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가슴 뛰는 일을 하지 말고, 잘 하는 일을 해야 해요. 왜냐 하면 가슴 뛰는 일을 쫓다가 가슴이 안 뛰기 시작할 수 있거든요." (김영하 작가). 그러면서 지금-이 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부초와 같이 된다. 

모든 것의 처음은 사소하고 미약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거기서부터 쌓이고 쌓인다. 쌓여서 육중한 무게와 너른 넓이를 만든다. 쌓이면 누구도 꺾을 수 없다. 다발과 묶음과 무더기는 어떤 힘도 견뎌낸다. 마치 서로 의지한 갈대 묶음을 힘센 사람도 쉽게 부러뜨릴 수 없는 것처럼. 

지금-여기가 맨 끝이라고 여기는 때가 맨 처음이다. 끝은 맨 앞이다. 끝에서 생겨난다. 실뿌리에서 생겨나 잔가지와 우듬지가 된다. 새순에서 생겨나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아, 이제 이곳이 끝이구나’ 라고 자신을 아주 허물어 버리지 않는다면 거기 그때가 맨 앞이 된다. 그리고 매 순간 놀랍고, 기적과도 같은 진전이 이뤄진다. 

지금-여기서 모든 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갑자기 일이 많아져, 일상이 흔들리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카르페 디엠’을 소환해야 한다. 카르페 디엠은 ‘과거와 미래를 현재화’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