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기자의 건강톡톡] 확실한 감염예방조치 없이 에볼라 감염지역 파견 결정한 정부

기사승인 2014-10-22 11: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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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기자의 건강톡톡] 확실한 감염예방조치 없이 에볼라 감염지역 파견 결정한 정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월 16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막한 제10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전체회의에서 에볼라바이러스 감염 치료를 돕기 위해 우리나라의 보건인력을 현지에 파견할 뜻을 밝혔습니다.

이에 정부는 10월 20일에 관계부처 협의회 개최 결과를 발표, 내달 초 현지에 선발대를 파견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의사들이 정부의 현지 파견 결정에 우려의 입장을 속속 내놓고 있습니다. 22일 의사단체 중 하나인 전국의사총연합(이하 전의총)이 ‘정부는 서아프리카 의료진 파견 강행을 즉각 철회하라’는 제목의 서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전의총 관계자는 에볼라바이러스 감염병은 치사율이 60~90%나 되는 치명적인 병이고 아직 확실한 치료제가 없으며, 미국에서조차 아직 확실한 감염예방조치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정부 관계자는 “만약 파견 인력이 감염된다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치료 방법이 있다”며 “현지에서 치료를 지켜볼 수 있고 필요시에는 (의료시설을 갖춘) 선진국 내에서 치료할 수도 있다”, “보건인력이 현지에서 활동을 할 경우 에볼라 최대 잠복기인 21일 안에 발열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입국하기 전에 제 3의 국가에서 21일을 관찰하거나 만약 국내에 들어온다면 격리를 통해 잠복기가 지난 이후 활동을 한다든지 가장 합리적이고 의학적으로 타당한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등의 무책임한 발언을 하고 있다고 작심하고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에볼라바이러스는 환자 접촉에 의해 전염되는 질병이어서 의료진의 전염율이 일반인에 비해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매우 높은 치사율로 인해 지금까지 현지 의료인력 중 약 300여 명이 안타깝게 사망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정부는 파견 인력이 감염된다면 현지에서 치료하거나 선진국 내 또는 국내에서 격리 치료를 한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 전의총 관계자는 어느 선진국에서도 선뜻 에볼라 감염자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며, 감염통제가 되지 않아서 비상사태까지 선포된 현지에서 치료가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데도 국내 의료진을 아무런 대책 없이 사지로 모는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는 과연 제정신인지 묻고 싶다고 하는군요.

또 치료를 위한 현지의 시설이 미비하고 선진국에서 발병 환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국내로 이송해 격리치료를 할 수 밖에 없는데, 2009년에 신종플루 유행 시 오로지 의료인에게만 의무를 덧씌우고 졸속행정으로 오히려 신종플루유행을 조장했던 보건복지부가 신종플루보다 훨씬 더 위험한 에볼라바이러스 감염병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세울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는 것입니다.


신종플루 유행 당시 보건복지부는 소위 거점병원을 선정해 치료를 도맡도록 했고 신종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는 임상증상 발현 후 48시간 이내에 투약해야 효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확진검사 이후에만 사용토록 지침을 내리는 바람에 검사결과가 나오기까지 1주 정도 치료가 지연되어 오히려 감염전파를 조장하고, 거점병원에 몰린 환자들로 인해 입원 및 통원치료를 받던 환자 및 의료진에게 감염이 전파돼 오히려 환자들이 거점병원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빚어지기도 했답니다.

이런 엉터리 감염대책에 대해 당시 보건복지부는 사과 한 마디 없었고, 단지 의료인의 헌신만으로 신종플루를 극복한 전례를 볼 때, 보건복지부가 치사율이 신종플루의 다섯 배가 넘는 치명적인 에볼라바이러스 감염예방 대책을 제대로 수립할 능력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또한 신체접촉에 의해 전염되기 때문에 특히 의료진 전염율이 높은 특성이 있는 바, 의료접근성이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잠복기 상태로 의료진이 입국한 이후 진료를 본다면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사람이 전염이 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는 것이죠. 즉, 의료진이 감염이 되었지만 이를 모른 채 (잠복기) 진료를 하는 동안 또 다른 환자들에게 전염이 된다는 것이며 전국에 깔려있는 수많은 의료기관과 손쉬운 접근성이 역설적으로 에볼라바이러스 전파의 주된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건강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문제에 대해 전문가와의 아무런 상의도 없이 대통령 혼자만의 생각으로 덜컥 말을 내뱉고 나서 그 뒷감당은 오직 의사에게 맡기고 국민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마지막에 전의총은 대통령과 정부당국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했습니다.

하나. 파견할 의료진은 자원자에 한하도록 하라.

하나. 자원자가 없는 경우 파견계획을 철회하라.

하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적극 참고하여 에볼라바이러스의 국내 상륙 위험을 차단하고 다른 선진국과 공조하여 예방법을 속히 마련토록 하라.

하나. 보건복지부의 전염병 예방시스템을 전문가의 자문 하에 확실하게 구축하여 신종플루 유행 때와 같은 졸속행정이 다시금 반복되지 않도록 하라.

이영수 기자 juny@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