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알함브라’서 죽고 또 죽은 박훈 “처음엔 특별 출연인 줄 알았어요”

‘알함브라’서 죽고 또 죽은 박훈 “처음엔 특별 출연인 줄 알았어요”

기사승인 2019-01-23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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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또 죽었다. 한 작품에서 죽는 연기를 이렇게 많이 한 배우가 있을까.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AR 게임 기반의 가상 세계를 중심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죽어도 죽은 게 아닌 NPC(Non-Player Character) 역할을 맡은 건 배우 박훈이다. 과거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던 박훈은 2015년 KBS2 ‘태양의 후예’의 특전사 역할로 드라마에 첫 발을 디딘 후 다양한 드라마로 시청자들을 만나왔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선 ‘좀비’가 됐다. 주인공 유진우(현빈)와 라이벌 관계인 차형석(박훈)은 AR 게임에서 대결하다가 패배한다. 패배는 현실에서도 죽음으로 이어지고 차형석은 게임 속 NPC가 되어 드라마 내내 유진우를 괴롭힌다. 반복해서 현빈을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는 박훈의 섬뜩한 연기에 많은 시청자들이 공포에 떨었다.


최근 서울 봉은사로 알코브호텔서울에서 만난 박훈은 자신도 이런 역할인 줄 잘 몰랐다며 웃었다. 초반부에 죽는 역할이란 얘길 듣고 특별 출연이라 착각하기도 했다. 그 역시 게임 용어와 설정에 익숙지 않아 후배의 감수를 받았다고 한다.

“사실 촬영장에 편한 마음으로 갔어요. 2~3회에 죽는다는 정보를 듣고 처음엔 특별 출연인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대박 나시길 바랍니다’ 하는 느낌으로 유쾌하게 현장에 갔죠. 만약 제가 이후에도 계속 나오는 줄 알았다면 겸손한 자세로 갔을 거예요. 나중에 4회 대본을 읽어보고 뭔가 잘못되고 있구나 싶었어요. 제가 왜 살아나지 생각했죠. 가장 큰 충격은 집에 계신 어머니가 받으셨어요. 제가 1년을 촬영하러 다녔는데 어떻게 3회 만에 죽을 수 있냐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드라마에 대한 설명을 다섯 번 정도 해드렸어요. 그래도 어머니에겐 익숙지 않으신지 지금도 계속 재방송되는 줄 아세요.”

박훈은 매회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헤어스타일에 똑같은 표정으로 등장한다. 대사 없이 매번 현빈을 향해 다가가 검을 휘두를 뿐이다. 이를 두고 한 네티즌은 “연기하기 쉽겠다”고 했다. 배우 입장에선 그렇지 않았다. 여태까지 국내 드라마나 영화에서 한 번도 이렇게 큰 역할을 차지한 NPC 캐릭터는 없었다. 박훈은 “처음엔 우스워질까봐 걱정했다”고 했다.

[쿠키인터뷰] ‘알함브라’서 죽고 또 죽은 박훈 “처음엔 특별 출연인 줄 알았어요”

“배우로서 완벽하게 건조한 표정을 똑같아 유지할 것이냐, 계속 승화하고 발전시킬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컸어요. 결국 선택한 건 말하지 않아도 전부 다른 의미처럼 느껴지는 연기였어요. 드라마를 보시면 아주 미세하지만 제 표정이 전부 다르게 나와요. 처음엔 무섭다고 했던 시청자 분들이 지겹다, 짠하다는 반응을 거쳐서 이젠 슬프다, 불쌍하다까지 이어지더라고요. 그 과정을 차형석도 살아있는 사람과 똑같이 감정 변화 과정을 겪는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 연기가 시청자 여러분들에게 잘 전달된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배우 박훈은 자신을 ‘반 연예인’ 다 됐다고 표현했다. 방송에 얼굴을 내민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자신의 이름이나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오는 걸 보면 신기하다. 다른 배우들에 비해 늦은 데뷔라고 할 수 있지만 박훈은 오히려 빠르다고 했다. 

“세상의 속도로는 제가 늦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살아온 삶의 속도로 보면 정말 빠른 것 같아요. 전 27세에 연기를 시작했지만 조바심을 내진 않았어요. 아르바이트도 경험하고 개인적으로 스스로를 담금질할 시간도 있었죠. 10년 동안 연극을 하면서도 다른 배우들이 잘 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왜 안 될까’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저는 제가 해야 하는 역할과 작품을 계속 해왔을 뿐이에요. 오히려 아직 더 해야 하지 않나 싶죠. 요즘 제게 많은 관심을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래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제 것을 하려고 합니다. 때가 되면 누군가 기회를 주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해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박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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