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인문학기행] 이탈리아, 스물여덟 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9-03-02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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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온(라틴어: Pantheon)은 그리스어 ‘판테이온(Πάνθειον)’에서 유래한 말로,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이므로 범신전(汎神殿) 혹은 만신전(萬神殿)으로 옮긴다. 로마사람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이전까지는 지상의 모든 것들을 신으로 모셨다. 뉴턴은 기독교의 타락에서 여러 종교가 분화됐다고 해석한데 반해 데이비드 흄은 인간의 이성이 깨어나 하나 이상의 신을 인정할 필요가 없다고 인식하기 전까지는 여러 신을 믿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기독교가 전해지기 전에는 로마제국에서처럼 다양한 신을 믿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흄의 생각이 옳지 않나 싶다.

폴리네시아 사람들은 지금도 ‘돌이나 나무, 꽃 같은 모든 물질적인 것들에 초자연적인 성질이 있다고 믿었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하나하나에는 안에서부터 빛을 뿜어내는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이 점에 대하여 철학자 마크 네포는 ‘이는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에 닿는 순간을 설명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삼라만상이 전하는 자연의 진리를 받아들임으로 우리는 살아있게 된다’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다른 신을 용납하지 않은 폐쇄적인 입장의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공인 이후에 제국 내에 존재하던 로마의 전통 신전들을 대부분 파괴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신전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신전의 돔건축이 독보적이어서였다. 피렌체 대성당의 거대한 돔은 바로 판테온의 돔을 모방한 것이었다. 

기원전 31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사이에 로마의 패권을 두고 겨룬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를 거두고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된 뒤, 그를 뒷받침한 아그리파는 신전을 건립했다. 이 건축물은 서기 80년의 로마 대화재로 불타버렸다. 지금 있는 신전은 서기 125년경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명에 따라 다시 세운 것이다. 

그는 모든 신들에게 바쳐질 신전으로 판테온을 건립했는데, 이는 로마의 신들은 물론 다른 신들을 섬기는 백성을 위한 일종의 종교의 통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다만 아그리파가 신전을 세웠던 것을 존중해 당시 신전에 새겨있던 “M [arcus] Agrippa L [ucii] f [ilius] co [n] s [ul] tertium fecit(루키우스의 아들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세 번째 집정관 임기에 지었다)”라는 명문을 다시 새겼다.

609년, 비잔틴제국의 포카스(Phocas) 황제는 판테온을 교황 보니파스 4세에게 줬다. 보니파스 4세는 판테온을 개조하여 성모와 모든 순교자들에게 헌정했다.  그리해 오늘날에는 순교자들의 성모 마리아 성당(Chiesa Santa Maria dei Martiri)이 됐다. 

“콘스탄티누폴리스의 포카스황제의 명에 따라 교황 보니파스는 판테온이라 불리던 오래된 신전에서 이교도들의 더러움을 제거한 뒤 거룩한 동정녀 마리아와 모든 순교자들을 위한 교회로 만들었다. 지난날 신이 아닌 악마들을 예배하던 장소는 앞으로 성자들을 기념하는 장소가 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판테온은 성당으로 사용하게 된 덕분에 중세 초기에 벌어진 고대 로마건축물의 약탈과 파괴를 면할 수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판테온에는 저명한 사람의 관을 모셨는데, 화가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da Urbino)와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 작곡가 아르칸젤로 코렐리(Arcangelo Corelli), 건축가  건축가 발다사레 페루치(Baldassare Peruzzi) 등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이탈리아왕국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Vittorio Emanuele II) 왕, 움베르토 1세(Umberto I) 왕과 마르게리타(Margherita) 왕비의 무덤이 있다.

판테온은 돔형식의 원형 건물로 현관에는 코린트양식으로 주두를 장식한 세 줄의 화강암 기둥이 서 있다. 이 기둥들은 이집트 동쪽에 있는 클라우디아누스 산맥(Mons Claudianus)에서 캐낸 것이다. 각각 지름 1.5m 길이 11.9m인 기둥은 채석장에서 나무 썰매에 실려 나일강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봄 홍수기간에 항구로 떠내려 와 배에 실렸다. 지중해를 건너 로마의 오스티아 항구까지 온 기둥은 바지선에 실려 티베르강을 거슬러 로마까지 끌어올려져 아우구스투수 영묘 부근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판테온까지 700m는 롤러를 타고 옮겨졌을 것이다.

맨 앞에는 여덟 개의 기둥이 그 뒤로는 각각 네 개의 기둥이 두 줄로 이어진다. 그 위로 박공벽이 있다. 판테온 현관 뒤의 벽에는 쥴리우스 카이사르 (Julius Caesar), 아우구스투스 카에사르 (Augus Caesar), 아그리파(Agrippa), 그리고 유피테르,유노,미네르바 등 카피톨린 트라이어드 (Capitoline Triad)를 비롯한 다른 신들을 모신 틈새가 있다. 주랑 현관 뒤로 원형 홀이 연결된다. 원형 홀 위에는 소란 반자들로 장식된 콘크리트 돔을 얹었다. 돔 가운데는 하늘을 향해 열려 있다. 둥근 모양의 구멍은 30로마피트(1로마 피트는 296mm)이니 9m 크기이다. 마침 날씨가 청명하여 구멍을 통해 쏟아져 들어온 햇빛이 돔의 천장에 또 다른 해를 만들어냈다.

“벼랑 끝에서 가까운 오두막의 오래된 문구멍을 뚫고 들어오는 바람처럼 우주가 힘차게 내 안으로 몰려들어왔다. 나는 언제나 내 안의 그 자리에 귀를 기울였다. 모든 것의 내면 끄트머리, 그곳으로 가서 귀를 기울여온 것이다.” 영혼의 치료사 마크 네포는 벼랑 끝에 서 있는 오두막의 오래된 문구멍으로 들어오는 바람에서 우주를 느꼈다는데, 필자는 로마 판테온의 천정에 뚫어놓은 구멍에서 우주를 느낄 수 있었다. 

반구형의 판테온은 소석회 반죽과 포촐라나(pulvis puteolanum)와 화산에서 가져온 가벼운 부석(浮石), 주먹 크기의 돌들을 섞어 만든 콘크리트건물이다. 당시에는 철근을 넣은 건축술이 없었지만, 말총을 섞어 넣었다고 한다. 건물을 돔형태로 만든 것은 둥근 궁륭으로 보이는 하늘을 상징한 것이다. 돔의 지름과 바닥에서 천정의 구멍까지의 높이는 43.3m로 같다. 돔 천정의 구멍은 조명과 통풍의 기능이 있었다. 쏟아져 들어오는 빗물은 바닥에 만든 배수체계를 통해 내보낸다. 

판테온 돔의 무게는 4535톤이다. 천정의 9m에 달하는 구멍 주위의 홍예돌에 걸린 추력은 기초 부분에 해당하는 두께 6.4m의 원통형 벽 안에 흩어져 있는 8개의 원통형 둥근 천장들로 분산돼 기둥들까지 전해진다. 벽의 두께는 기초 부분에서는 6.4m이나 조금씩 얇아져서 천정의 구멍 주변에서는 1.2m이다. 돔의 안쪽은 각각 28개의 움푹 파인 패널을 5줄로 배치하고 있다. 패널에는 별이나 꽃과 같은 것으로 장식돼 장식효과와 함께 무게를 줄이는 기능이 있었다. 

현재의 판테온 내부는 기독교 교회와 관련된 예술작품으로 장식돼있다. 제대와 후진은 교황 클레멘스9세의 의뢰로 알레산드로 스페키(Alessandro Specchi)가 설계한 것이다. 후진에는 7세기 비잔틴의 성모 성화의 복제품이 안치돼있다. 입구의 좌우로는 각각 3개의 벽감이 있다. 오른쪽 첫 번째 벽감에는 작자 미상의 그림인 ‘거들의 성모와 바리의 성 니콜라오(1686)’가 있다. 두 번째 벽감에는 15세기 토스카나파(派) 화가들의 프레스코화 ‘성모의 대관식’이 있다. 세 번째 벽감에는 일 로렌초네(Il Lorenzone)의 조각 ‘성녀 안나와 축복받은 성모’가 있다. 

왼쪽 첫 번째 벽감에는 안드레아 카마세이(Andrea Camassei )가 그린 ‘성모 승천(1638)’이 있다. 두 번째 벽감에는 빈첸초 펠리치(Vincenzo Felici)의 조각 ‘성녀 아녜스’가, 세 번째 벽감은 위대한 예술가인 라파엘로의 묘지다.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하사한 석관에는 피에트로 벰보(Pietro Bembo)가 새긴 “ILLE HIC EST RAPHAEL TIMUIT QUO SOSPITE VINCI / RERUM MAGNA PARENS ET MORIENTE MORI”라는 문장이 있다. “여기 라파엘이 잠들어 있다. 모든 것들의 어머니(대자연)는 그가 살아있을 때는 자신을 능가할까봐 두려워하고 그가 죽어갈 때는 자신도 죽게 될까봐 두려워했다”라는 의미이다.

북쪽으로 난 판테온의 현관 앞은 로톤다 광장(Piazza della Rotonda)이다. 남북으로 약 60 미터, 동서 40 미터 크기의 직사각형이며, 가운데 분수대와 오벨리스크가 있다. 7세기 무렵 판테온을 교회로 바꾸면서 사람들이 산타 마리아 로톤다 (Santa Maria Rotonda)교회라고 한데서 따왔다. 19세기 무렵에는 앵무새, 나이팅게일, 올빼미와 같은 새들을 파는 새 시장으로 유명했다. 광장 가운데 있는 분수는 1575년 그레고리오 13세 교황의 명에 따라 지아코모 델라 포르타(Giacomo Della Porta)가 설계하고, 레오나르도 소르마니(Leonardo Sormani)가 대리석에 조각한 것이다. 

1711년 교황 크레멘트 11세의 명에 따라 필리포 바리기오니(Filippo Barigioni)가 대좌에 돌고래 4마리를 새기는 등 새로운 형태로 만들고 그 위에 있던 꽃병 대신 람세스2세 시대에 만든 맥테오(Macuteo) 오벨리스크를 세웠다. 받침대를 포함해서 14.25m이며, 오벨리스크 자체만으로는 6.34m 높이인 맥테오 오벨리스크는 원래 이집트의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에 있는 라(Ra) 신전에 있던 한 쌍의 오벨리스크 가운데 하나다. 더 짧은 마테이아노(Matteiano) 오벨리스크는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Santa Maria sopra Minerva) 근처에 있는 이시스 신전에 있다. 맥테오 오벨리스크는 1373년 산 마쿠토(San Macuto) 부근에서 발견되어 마쿠타 광장에 세웠던 것을 다시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양기화의 인문학기행] 이탈리아, 스물여덟 번째 이야기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9 현재, 동 기관 평가책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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