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인문학기행] 독일, 열한 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9-05-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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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를 무려 여덟 차례나 찾았던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1797년 8월 26일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여기 이 다리는 세상에 다시없을 아름다운 다리입니다. 당신은 아치를 통하여 라인 강으로 흘러가는 네카르 강과 멀리 잔가지 너머 밝은 하늘색을 띄는 산맥을 볼 수 있습니다. 오른쪽으로는 포도밭으로 이어지는 붉은 바위에 희망이 숨어있습니다.”

옛 다리에 관한 시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프리드리히 횔더린(Friedrich Hölderlin)이 1800년에 발표한 ‘하이델베르크 송가(Ode Heidelberg)’다. 시인은 두 번째 절에서 옛 다리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Wie der Vogel des Walds über die Gipfel fliegt, / Schwingt sich über den Strom, wo er vorbei dir glänzt, / Leicht und kräftig die Brüke, / Die vor Wagen und Menschen tönt.(숲의 새가 봉우리를 날아다니면서, / 흐르는 물줄기를 휘저어 반짝이게 한다. / 가볍고 강한 다리, / 마차와 사람들 앞에서 울리는 소리)”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옛 다리는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의 스타인가세(Steingasse)와 강 건너 하이리겐베르크(Heiligenberg) 기슭의 노이엔하임(Neuenheim) 지구의 노이엔하이머 란트슈트라세(Neuenheimer Landstraße)를 연결한다. 평균 너비 7m의 옛 다리 길이는 200m다. 다리는 중간 부분이 높아져있고, 기둥 사이 아치도 강변 쪽보다 높다. 이는 강물을 따라 흘러내리는 유빙이 강 중심으로 흐르는 경향을 반영한 것이다.

여덟 개의 기둥 중 두 번째와 일곱 번째 기둥 위로 난간을 넓혀 각 카를 테오도르 선제후와 미네르바 여신의 동상을 세웠다. 남쪽에 있는 카를 테오도르 선제후의 동상은 1788년에, 미네르바의 동상은 1790년에 각각 세웠다. 부조로 장식된 받침대 위에 겉옷으로 덮은 갑옷을 입고 가발까지 쓴 카를 선제후는 당당한 자세로 성문을 지켜보고 있다. 받침대에 새겨진 4명의 인물은 바이에른주를 흐르는 4개의 강신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혹자는 라인 강, 다뉴브 강, 네카르 강 그리고 모젤(Mosel) 강이라고 하지만, 남성과 여성이 각각 2명씩으로 돼있는 것을 보면, 모젤 강만이 여성형이므로 네카르 강 대신 이사르(Isar) 강을 나타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하이델베르크대학의 수호신으로 간주되는 미네르바여신은 헬멧과 랜스, 방패 그리고 올빼미 등으로 장식됐는데, 받침대에는 정의(Iustitia), 경건(Pietas), 농업(Ceres) 그리고 상업(Mercurius)을 나타내는 인물을 우화적으로 표현했다.

옛 다리의 남쪽 끝에는 1709년부터 1711년 사이에 세운 28m높이의 바로크양식 쌍둥이 탑이 있다. 탑에 붙어 있는 고딕양식의 문은 15세기 후반의 것으로 성벽의 일부였으며, 성문에서는 외국인 통행자로부터 통행료를 징수했다. 통행료는 1877년 테오도르 호이스 대교가 개통되면서 1878년 폐지됐다.

탑 서쪽의 난간 위에는 원숭이 상이 있다. 옛 다리에 있던 거울을 든 원숭이 석상의 존재는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마을에 도착한 사람들이 옛 다리의 쌍둥이 탑의 위용에 두려움과 존경을 심어주는 장치였다고 한다. 원숭이는 마인츠를 등지고 앉아있었는데, 이는 마인츠의 주교들이 팔라틴에 대해 아무런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했다. 

하지만 원숭이 석탑은 교량탑과 함께 9년 전쟁에서 파괴됐다. 지금 있는 머리가 비어있는 원숭이 동상은 1977년에 게르노트 룸프(Gernot Rumpf)가 디자인 한 것으로 1979년에 제작돼 설치된 것이다. 오른손에 든 거울이 낮아서 원숭이는 뒤를 감시할 수 없지만, 악마의 눈을 피할 수 있는 뿔을 가지고 있다. 원숭이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데, 거울을 만진 사람은 부자가 되고, 뿔을 만지면 하이델베르크를 다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원숭이 옆에 있는 생쥐를 만지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설도 있다.

원숭이의 아래에는 마틴 자일러(Martin Zeiler)가 1632년에 쓴 시가 있다. “Was thustu mich hie angaff en? / Hastu nicht gesehen den alten Affen zu Heydelberg? / Sich dich hin und her, / Da findestu wol meines gleichen mehr.” ‘(너는)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 Hastu는 하이델베르크의 오래된 원숭이를 보지 못했다네. / 너 자신과 여기 / 너는 거기에서 나와 닮은 것을 더 찾아낼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여덟 번째 다리에 네포묵의 성 요한 동상이 있어 네포묵 다리라고 불렀다 했는데, 아홉 번째 다리에는 네포묵의 동상이 없다. 카를 테오도르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네포묵의 성 요한은 고백성사의 수호성인, 타인의 비방을 받은 사람의 수호성인, 홍수피해자의 수호성인, 다리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된다. 

체코 프라하의 카를교를 찾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네포묵의 요한 성인은 고해성사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최초의 순교자다. 보헤미아 왕국의 작은 마을 포묵(지금은 네포묵이다)에서 태어난 그는 사제서품을 받고, 1393년에 프라하 대교구장 얀 젠슈타인(Janes Jenštejn) 대주교의 총대리로 임명됐다. 그는 보헤미아 왕비의 고해신부였는데, 왕비가 부정하다고 의심한 국왕 바츨라프 4세로부터 왕비의 정부를 밝히라는 요구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온갖 고문 끝에 카를교에서 블타바 강에 던져져 숨졌다.

여덟 번째 옛 다리의 여덟 번째 다리 기둥 위에 서 있었다던 네포묵의 성 요한 동상은 이제는 다리에서 옮겨져 옛 다리의 북쪽 노이엔하이머 란트스트라세(Neuenheimer Landstraße)의 강변에 서 있다. 노이엔하이머 쪽으로 옛 다리를 건너가면 오른쪽으로 10m 정도 떨어진 곳이다. 동상은 두 명의 천사가 받드는 천구 위에 서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원본은 옛 다리에 서있던 카를 테오도르 동상, 미네르바 동상 등과 함께 하이델베르크의 쿠르프팰지쉐스(Kurpfälzisches) 박물관에 보관돼있고, 현장에 있는 것은 모조품이다.

네카르 강 북쪽의 강변을 따라가는 노이엔하이머 란트스트라세(Neuenheimer Landstraße)의 서쪽으로 가다보면 테오도르 호이스 대교 부근 사거리에서 만나는 베르그스트라세(Bergstraße)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다시 첫 번째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이 시작된다. 

17~18세기 무렵에는 포도밭을 가로지르는 단순한 길이었던 린센뵐러베그(Linsenbühlerweg, ‘엿보는 정부(情夫)의 길’이라는 뜻)가 후기 낭만주의시기 들어 철학자의 길이라 불리게 됐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와 철학자들이 이 길을 따라 네카르 강의 매력적인 풍경을 즐기면서 진지하게 이야기하거나 사유하면서부터이다. 

혹자는 칸트(Kant), 헤겔(Hegel), 하이데거(Heidegger), 야스퍼스(Jaspers) 등 독일의 철학자들이 이 길을 걸었다고도 하지만, 야스퍼스만이 1913년부터 1938년까지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를 지냈고, 헤겔은 1816년부터 2년간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를 지냈을 뿐이다. 칸트는 평생 동안 태어난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로부터 100마일보다 멀리 여행한 적이 없었다. 철학자의 길이라는 이름은 아마도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철학도들이 만들어낸 이름이 아닐까 싶다.

베르그스트라세에서 시작하는 철학자의 길은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물리학 연구소를 지나 성산(聖山), 하이리겐베르그(Heiligenberg)의 북쪽 경사를 깎아 길을 내고 거칠게 포장을 했다. 깎아낸 언덕은 작은 바위로 축대를 쌓아 흙이 쏟아져 내리지 않게 했다. 이 길은 옛 다리 인근에 있는 횔더린 공원 부근에서 뱀길(Schlangenweg)을 만나게 된다. 옛 다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뱀길은 경사가 급하고 구불구불한데서 유래한 것 같다. 

우리는 옛 다리를 건너 뱀길을 따라 철학자의 길 쪽으로 올라갔다. 뱀길은 바닥에 네모난 돌을 촘촘히 박아 넣었고, 양쪽으로는 높다란 돌담이 쳐있어 볼만한 경관이 없었다. 계단을 오르며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기 좋았겠다. 하지만 경사가 급하고 바닥도 평탄하지만은 않아서 넋을 완전히 놓았다가는 고꾸라지기 십상이겠다. 무언가 생각하면서 무심히 걸으려면 상당한 내공이 필요할 것 같다. 길은 상당한 경사를 거슬러 오르기 때문인지 자주 방향을 틀어 굽이굽이 감아 들고 있다. 그래서 뱀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나 보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담장 안의 집으로 들어가는 작은 쪽문이 숨어있다. 뒤쫓던 사람을 따돌리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마술을 펼치기 좋은 분위기다. 뱀길 중간에는 전망대를 만들어 맞은편 언덕 위에 있는 하이델베르크성과 네카르 강을 조망할 수도 있다. 길가에는 계단식으로 과수원이 있었는데 마침 일꾼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가쁜 숨을 내쉬어가면서 뱀길에 놓인 계단을 모두 밟아 올라갔더니 정작 철학자의 길에 올라서는 곳에는 빗장이 질러있었다.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철학자의 길을 찾다보니 이웃나라 일본의 교토에도 철학의 길(哲学の道, 테츠가쿠노미치)이 있다고 한다. 교토대학 철학과의 니시다토로로(西田几多郎) 교수가 매일 걸으며 명상을 하는 길이라고 하는데, 구마노냐쿠오지(熊野若王子) 신사에서 긴각구지(銀閣寺)에 이르는 2km의 고즈넉한 산책로로 1972년에 공식 명칭을 얻게 됐단다. 교토 이외에도 캐나다 토론토의 도심교정에도 있고, 샌프란시스코의 존 맥라렌 공원(John McLaren Park)에 있는 3마일 길이의 산책로가 철학자의 길이라고 불린다. 

서울의 양재천에도 칸트의 산책길이 생겼다. 양재시민의 숲 부근 양재천 수변무대 위쪽 공간에 있다. 12m가 짧다면 짧을 수도 있지만 그저 인증샷이나 찍는 장소가 아니라 이름의 무게만큼 사색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책임위원

[양기화의 인문학기행] 독일, 열한 번째 이야기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9 현재, 동 기관 평가책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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