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권자들은 무엇을 원했나 [쿠키칼럼]

11월 중간선거에서 몰락한 건 트럼프만 아니야
공화 민주 모두 극단적인 후보보다 중도파 당선
2024년 대통령선거 앞두고 양당 선거전략 요동

기사승인 2022-11-30 10: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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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권자들은 무엇을 원했나 [쿠키칼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그린 그림 ⓒ코넬대학교

[쿠키칼럼 - 송원석]

정치나 미국 뉴스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11월 한 달 동안 미국 중간선거 뉴스를 접했을 것이다. ‘남의 나라 선거에 왜 이리 호들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 긴장이 높아지고, 미국도 자국 우선주의 노선을 밟아가면서 미국의 경제 상황이나 정책이 실시간으로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미국의 정계가 어떻게 재편이 되는지가 중요한 관심사가 됐다.

미국 선거 제도는?

미국은 매년 11월, 월요일이 있는 첫째 화요일에 본 선거(General Election)라고 불리는 선거가 있다. 그해에 임기가 끝나는 선출직이 있으면 대통령, 연방 상/하원, 주지사, 주 정부 등 지방 자치단체선거를 동시에 치른다. 한국으로 따지면 대선, 총선, 그리고 지방선거가 같이 실시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미국의 입법기관인 연방의회 상하원 의원을 선출하는 연방 선거는 2년마다 있다. 연방 선거는 임기가 2년인 435명의 미연방 하원의원들 전부와 6년이 임기인 미 상원의원의 1/3 의석, 그리고 4년마다 실시하는 대통령이 선거가 있는 해에는 대통령 선거까지 같이 치러 진다.

중간선거(Midterm election)는 4년마다 있는 미국 대통령 선거의 딱 중간 시기에 열리는 연방 선거라 그렇게 부른다. 지난 11월 8일에 있었던 2022년 미국의 중간선거는 435명의 연방 하원의원과 35명의 연방 상원의원, 36명의 주지사를 뽑는 선거였는데 대부분의 주에서 주의회 등 지방선거도 같이 열렸다.

중간선거는 2년 전 대통령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과 집권 여당을 중간 평가하는 성격의 선거이기 때문에 대체로 대통령이 속한 당이 불리하다. 2차대전 이후 집권당이 하원에서는 평균 26석을, 상원에서는 4석을 잃었다. 미국 역사상 상원이나 하원에서 집권 여당이 중간선거에서 다수당을 유지한 경우가 7번뿐인데 그 중 단 두 번만이 상하원 모두 다수당을 유지했을 정도다. 이 번 중간선거는 특히나 물가 상승, 유류비 증가,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으로 촉발된 여러 가지 상황들을 고려할 때 존 바이든 대통령과 그가 속한 민주당이 불리할 것으로 예상됐다.

뜻밖의 2022 중간선거 결과

이 번 중간선거는 집권당인 민주당이 꽤 잘 싸웠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래도 하원은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었고 상원은 민주당이 다수당을 유지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미국은 각주마다 개표 방식과 일정이 각 각이다. 그래서 아직 결과를 알 수 없는 연방 상하원 의석이 존재한다.)

현재까지의 선거 결과를 보면, 하원은 선거 후 여드레가 지난 11월 16일이 돼서야 공화당이 다수당으로 확정될 만큼 박빙이었다. 다수당과 소수당의 의석 차이는 불과 10석 이내다. 상원은 민주 50, 공화 49의 상황에서 12월 6일 조지아주의 상원의원 결선 투표를 앞두고 있다.

50대 50으로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이 되느냐, 51대 49로 다수당이 되느냐에 따라 사정 달라질 수 있겠지만 민주당은 선전한 반면 공화당의 붉은 물결(red wave)은 없었다. 워싱턴DC에선 현지에서는 마치 민주당이 선거에서 승리한 것 같은 분위기이다.

어떤 당이 다수당이 되느냐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넓은 시각에서 미국 유권자들의 선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출된 인물들의 성향과 실패한 인물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2022년 중간선거의 민심과 앞으로 2년 미국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할지, 또 2년 뒤 대선은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 조심스럽게 예측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김빠진 트럼프, ‘네버 어게인’?

2016년 대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트럼피즘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이후 민주당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필두로 하원에 오카시오 코르테즈, 일한 오마르 같은 진보 성향의 의원들이 힘을 키웠다. 공화당은 트럼프의 진두지휘 아래 극보수 세력이 당을 장악하고 주류가 되었다.

2020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에게 패배한 트럼프는 복귀를 꿈꾸고 있다. 이번 중간선거를 통해 본인의 세력을 공화당 안에서 굳히고 확장해 나가려고 했다. 더 나아가 공화당의 레드 웨이브를 타고 2024년 대선 출마사표를 던질 계획까지 했다.

지난 11월 15일 저녁 트럼프의 대선 출마 선언은 어딘가 많이 김이 빠진 모양새였다. 트럼프가 지지했던 후보자들이 주요 격전지에서 대부분 패하면서 공화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라던 선거가 민주당의 선전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오히려 ‘트럼프나 극보수 성향 트럼피즘의 한계를 보여주지 않았나?’하는 의문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와 그 지지 세력은 참담한 결과의 책임을 공화당 지도부가 무능한 탓이라고 하지만, 워싱턴 정치권에선 트럼프와 트럼피즘의 실패라고 보는 시선이 절대적이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가 출마 선언까지 했으니 공화당의 분열을 예상하기도 한다. 당연히 민주당은 호재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의 출마 선언 후 지난 2주 동안 공화당에선 하원의장 출신의 폴 라이언 같은 유력 인사부터 시작해 ‘네버 어게인 트럼퍼(never-again-Trumper)’ 즉 트럼프 세력이 다시 등용시킬 수 없다는 반 트럼프 세력이 늘어나는 추세다.

다시 주목 받는 중도층의 파워

백인 서민의 분노에 기반한 트럼피즘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많은 수의 유권자들을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이다. 하지만 이번 중간 선거의 결과는 트럼피즘이 장기간 미국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진 않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플로리다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이며 주지사 선거 재선에 성공한 론 드산티스의 사례만 보아도 그렇다. 그는 공화당 차기 대권 주자로 강력하게 떠오르고 있지만 정치적인 색깔은 트럼피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의 대안으로 꼽는 드산티스조차도 극단적인 정치색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2024년 대선에서 승리하기는 쉽지 않다고 보는 시선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번 선거는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중간선거였다. 격전지가 무수히 많았다, 적은 득표율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 그 결과 대부분 격전지에서 양극단에 있는 후보들보다는 중도 성향의 후보자가 승리했다.

격전지였던 네바다 연방 상원의원 선거를 보자. 당선자 확정이 가장 늦었을만큼 선거전이 치열했다. 민주당의 캐서린 코르테즈 마스토 의원은 선거 전 재선에 실패할 가능성이 가장 큰 현직 의원이라고 꼽혔다. 상대 공화당 후보는 트럼프의 2020년 대선 조작설에 동조하고, 낙태금지법에 찬성했다. 결과는 캐서린의 승리.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네바다 유권자들조차 현직 의원 심판보다 극보수성향의 상원의원을 선출을 막으려는 심리가 더 컸다고 해석할 수 있다.

펜실베니아 주지사 선거에도 민주당 조시 샤피로 후보가 극보수성향의 공화당 더그 메스트라노 후보를 14.4%P 차이로 승리하였다. 1946년 이래 이 곳에서 현직이 아닌 후보자가 가장 큰 차이로 상대를 이긴 주지사 선거를 기록했다.

11월 23일 결선 투표로 승자가 정해진 알라스카 상하원 의원 자리도 좋은 예가 될수 있을 것이다. 공화당 상원에서 가장 중도적인 의원으로 꼽히는 리사 머코우스키 의원이 트럼프의 지지를 받은 같은 공화당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다. 1973년 이래50년간 공화당 차지였던 하원의원 한 자리는 민주당 손에 들어갔다.

민주당이 패배한 곳도 비슷하다. 오레곤 주에서는 베테랑 현직 하원의원을 경선에서 이긴 진보성향의 민주당 후보가 온건성향의 공화당 후보에게 졌다.

요동치는 2024년 대선 전략

낮은 지지율로 고군분투하는 바이든 대통령이 거둔 뜻밖의 승리는 2년 뒤 대선 전략에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2020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경륜의 바이든을 내세워 트럼프의 왕좌를 뺐어 왔듯이, 공화당도 트럼프 같은 급단적인 보수 성향 후보보다 온건한 인물을 내세워야 대통령 자리를 다시 가져올 수 있으리라는 예측을 조심스럽게 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민주당에선 중간선거 전 레드 웨이브가 예상됐을 때부터 트럼프의 화려한 귀환에 맞서려면 새로운 스타들이 아니라 현직 바이든 대통령 밖에 대안이 없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중도 성향의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 유권자를 통합할 수 있고 공화당의 유동층 표까지도 가져올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트럼프가 당선됐던 2016년 대선 이후 미국 정치는 민주 공화 양당이 협치와 상생의 길을 외면한 채 양 끝으로 치닫는 모습이었다. 국익과 시민의 이익이 최우선이라는 미국 정치의 오랜 원칙이 워싱턴에서 사라졌다며 미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한탄이 나왔다.

이번 예상 외의 중간 선거 결과는 민주 공화가 같이 나라를 위해 이마를 맞대던 이전의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과 그래야 한다는 유권자들의 의지를 보여줬다. 양쪽 끝에서 치킨게임을 벌이며 반대파를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으로 규정하는 유권자의 목소리를 뚫고, 서로 존중하고 협동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진 정치인이 미국을 통합해서 움직이기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힘이 발휘된 선거가 였다고 해석해 본다.


미국 유권자들은 무엇을 원했나 [쿠키칼럼]

송원석
1980년생.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청소년기와 20대를 보내고 미국으로 유학을 와 뜻하지 않았던 이민자가 되었다. 신학, 경영학, 비영리경영학 등을 전공하고 30대에 우연히 접하게 된 미연방의회를 향한 한국계 미국 시민들의 시민활동에 이끌려 지금은 워싱턴 DC에 자리한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의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미연방의회를 드나들며 축적한 경험과 지식으로 소수계인 한인사회의 권익을 옹호하고, 모국인 한국과 자국인 미국의 관계증진에 바탕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지금도 워싱턴 DC '캐피톨 힐'을 누비고 다닌다.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한미관계, 미국의 사회, 정치, 외교를 말하고자 한다.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