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DJ’ 태연의 예고된 실수…흥행만 고려한 제작진이 원인

기사승인 2009-01-19 1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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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DJ’ 태연의 예고된 실수…흥행만 고려한 제작진이 원인

[쿠키 연예] 그룹 소녀시대 태연의 ‘간호사 비하’ 발언이 후폭풍을 낳고 있다.


태연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강인, 태연의 친한 친구’에서 “주사를 맞으려고 병원에 갔는데 간호사가 식사 시간이라면서 주사를 놓아주지 않았다”며 “환자가 시간 맞춰서 점심시간 피해서 아파야 하나”라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현행 의료법 상 의사 없이 간호사가 단독으로 진료를 할 수 없는 것을 몰랐던 게 화근이었다.

태연의 발언이 전해진 지난 주, 인터넷은 온통 난리가 났다.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마다 태연의 발언을 담은 오디오 파일이 실시간으로 올라왔고, 남성 네티즌들의 비율이 높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선 주말 내내 태연 관련 글로 게시판이 도배됐다.

대다수 네티즌들은 ‘기본 상식이 부족하다’, ‘연예인 티를 낸다’며 태연을 맹비판했다. 일부는 라디오 하차를 거론하기도 했다. 태연의 발언에 대해 “어느 병원인지 얘기하라”며 “간호사가 본인이 해야 할 목적이나 마인드를 상실했던 것 같다. 평생 점심식사나 하라”고 막말을 한 슈퍼주니어의 강인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기민한 소속사, 소식 없는 방송사=태연과 강인의 소속사 SM 엔터테인먼트(이하 SM)는 사건이 알려진 16일 오후 “태연과 강인이 뉘우치고 있다”는 사과를 전했다. 자사 소속 연예인들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될 때마다 기민한 반응을 보인 SM은 이번에도 빠른 대처로 파문을 조기에 진화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MBC ‘강인, 태연의 친한 친구’ 제작진은 SM과 달리 아직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문제가 된 태연의 발언이 소녀시대 활동 중에 일어난 일이 아니고, 지상파 방송을 진행하던 중에 나온 것을 감안하면 분명 이해가 가지 않는 처사다.

태연과 강인은 파문 직후부터 18일까지 녹음방송으로 라디오를 진행, 생방송을 통한 직접 사과가 이뤄지지 않았다. 당연히 공식 홈페이지 내 청취자 게시판은 태연의 사과를 요구하는 게시물로 집중포화를 맞았다. 제작진이 SM의 대응과 별도로 사과를 했어야 한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녹음한 수다’를 방송하는 라디오=사실 이번 태연의 발언은 애초 나오지 않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청취자들이 태연의 발언을 듣고 휴대폰 문자를 통해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태연이 “아픈 제가 잘못입니다”란 비아냥 식의 코멘트를 한 게 여론 악화를 부채질했다. 강인도 비슷하게 냉소적인 발언을 했다.

이 같은 태연과 강인의 실수는 갈수록 TV 예능 프로그램화 되어 가는 지상파 라디오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개인의 일상적인 수다를 공공연히 방송에서 언급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은 것도 문제지만, 청취자와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급격히 줄어든 게 더욱 큰 문제다. 라디오 DJ의 일방통행을 지적하는 청취자의 의견에 귀를 귀울였다면 태연과 강인의 실수는 간단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일부 라디오 DJ가 당연히 실수를 할 수 밖에 없게 만든 제작진의 책임이다. MBC ‘강인, 태연의 친한 친구’의 전작은 ‘이승연의 FM 데이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성 청취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던 ‘FM 데이트’는 이승연, 고소영, 박소현, 이의정, 김현주 등 여성 탤런트 출신 DJ를 거쳐 막을 내렸다.

MBC는 10대를 타깃으로 신설한 ‘클릭 1020’의 성과가 없자, 그룹 H.O.T 출신의 문희준을 DJ로 내세웠다. ‘문희준의 더블 임팩트’는 그룹 원타임 출신의 송백경으로 이어지고, 역시 그룹 젝스키스 출신의 은지원이 ‘친한 친구’를 맡게 된다. ‘친한 친구’는 은지원이 하차한 뒤, 김상혁과 타블로, 강인이 조정린과 함께 진행했다. 10대 청취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그룹 출신의 DJ를 선호하는 경향은 ‘더블 임팩트’ 시절부터 ‘친한 친구’까지 이어진다.

동시간대 라이벌 프로그램인 KBS ‘볼륨을 높여요’가 이본에 이어 최강희와 메이비를 기용한 것과 달리 MBC의 ‘친한 친구’는 DJ의 연령을 낮추며 예능 프로그램화 되기 시작한다. 라디오 고유의 맛을 잃어버리고 ‘방송의 사담화’ 경향이 짙어졌다는 비판에 시달리게 된 것도 이 때부터다.

태연과 강인의 ‘친한 친구’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DJ로 나서 10대 청취자들을 결집시켰지만 라디오 고유의 특성을 상실했다는 질타를 받고 있다. DJ가 아이돌 그룹에 소속된 것으로 인해 잦은 녹음방송이 이뤄지고,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놓고 맞장구를 치는 것이 방송의 주요 포맷으로 변질된 것이다.

그나마 조정린과 함께 진행하며 적응기간을 거친 강인은 조금 나았다. 역대 최연소 DJ인 태연은 “흑인 치곤 이쁘지 않나요?”라는 말에 담겨있는 ‘인종주의’를 간과한 채 무심코 내뱉는 바람에 직격탄을 맞았다. 소녀시대의 리더로 출중한 보컬 실력으로 인해 ‘가장 완벽한 아이돌’이란 평가를 듣고 있던 태연의 이미지가 한 순간에 탈색되는 순간이었다. 제작진의 기본적인 DJ 트레이닝이 부족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DJ는 인기의 수단이 아니다=예전부터 라디오 DJ는 가수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수많은 가수들은 청취자와 호흡을 맞추면서 음악을 전달하는 것에 자신의 목소리를 실었다. 그룹 넥스트의 신해철, 1인 프로젝트 그룹 토이의 유희열, 가수 이소라는 DJ를 통해 한 단계 도약한 대표적인 뮤지션이다.

DJ의 연령대는 2000년대 초반부터 낮아지기 시작했다. TV와 인터넷에 귀를 뺏긴 지상파 라디오는 10대 청취자들을 모을 수 있는 DJ를 경쟁적으로 모시기 시작했다. 오후 8시부터 12시까지 아이돌 그룹 출신의 멤버가 DJ로 자주 등장했고, 방송사는 안전한 청취율을 올렸다.

DJ는 방송에 자주 출연하지 않고도 쉽게 인기를 증폭시켜 부가수익을 짭짤하게 챙겼다. 자유롭게 갖은 수다를 떨 수 있고, 녹음방송도 쉽게 허용됐다. TV와 마찬가지로 라디오도 스타와 만나 본질의 특성을 잃어버리고 헤매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