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증상만으로는 진단 어려운 '파브리병'

분과 경계 넘어 진단·치료하는 다학제적 접근 우선돼야

기사승인 2019-03-29 0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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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은 ‘세계 파브리병 인식의 달(Fabry Disease Awareness Month)’이다. 미국 파브리병 재단과 파브리병 환자 지원 단체인 FSIG(Fabry Support&Information Group)가 질환의 낮은 인지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들을 위해 매 4월 마다 세계 각지의 파브리병 환자 단체와 함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리소좀 축적질환(LSD, Lysosomal Storage Disorders) 중 하나인 ‘파브리병’은 알파-갈락토시다아제 A(alpha-galactosidase A)’ 효소의 결핍으로 세포 내 당지질(GB-3)이 축적돼 신체 조직과 장기에 진행성 손상을 일으키는 유전병이다. 국내에 약 100명 정도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11만7000명당 한 명 꼴인 유병률을 고려했을 때 아직 진단받지 못한 환자 수가 더 많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개별 증상만으로는 진단 어려운 '파브리병'
◉진행성 질환 파브리병, 여러 분과 협력 통해 조기 진단 및 치료 중요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 희귀난치성질환센터 등에 따르면 파브리병의 진단이 어려운 이유는 전신에 걸쳐 비특이적 다계통 증상을 보이는 특성 때문이다. 세포 내 소기관인 리소좀에 쌓인 당지질은 신체를 돌아다니며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파브리병의 증상은 신경계, 눈, 심장, 피부 등 전신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따라서 증상이 처음 발현된 때부터 진단을 받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는데 남성의 경우 평균 13.7년, 여성의 경우 16.3년이 걸린다는 조사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또 피부 발진, 복부 통증, 각막 혼탁 등의 증상은 파브리병이 아닌 다른 질환으로 오인되기 쉬워 조기 진단을 어렵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진행성 질환인 파브리병은 점진적으로 세포와 장기들이 손상되며 나이가 들수록 증상이 심각해지기 때문에 빠른 진단과 적기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초기에는 타는 듯한 통증과 피부 병변 등으로 비교적 가볍게 시작하지만 성년기에는 신장, 심장 및 뇌혈관(뇌졸중) 등의 증상으로 발전될 수 있다. 이러한 증상 악화는 생명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의 평균 수명은 평균 인구 수명과 비교해 남성 환자 경우 25년, 여성 환자의 경우 15년 단축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파브리병의 조기 진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러 분과 간의 긴밀한 협진을 통해 진단 및 치료를 진행하는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이범희 교수는 “환자들 중에는 파브리병으로 나타나는 증상들을 단순한 신경통이나 신장질환 등으로 인식하고 파브리병임을 의심하지 못한 채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며 “조기진단과 치료가 중요한 진행성 질환인 만큼 여러 분과 간 협진을 통해 빠르게 진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지속적인 효소 공급 필요한 파브리병, 생존기간 연장 및 삶의 질 제고에도 긍정적 영향
현재 파브리병 치료법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효소대체요법(ERT)이다. 효소대체요법은 생화학적으로 부족한 효소를 주기적으로 공급해 세포 내 축적된 당지질(GB-3)을 감소시키는 방법으로 조기에 치료를 시작하면 통증이 감소하거나 콩팥기능이 안정화돼 말기신부전증 등의 장기합병증의 진행을 예방할 수 있다.

파브리병 환자의 경우 2주에 한 번씩 내원해 정맥주사 형태로 효소대체요법 치료를 받게 되는데, 이를 장기간 지속해야 하기 때문에 치료제의 장기적 효과 입증 여부, 면역원성 및 안전성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 파브리병 환자에 사용 가능한 대표적인 효소대체요법 치료제는 아갈시다제알파가 있다. 기존 치료제가 동물 세포주(차이니즈햄스터)에서 생산되는 방식인 것과 달리 인간세포주에서 생산된 사람 단백질 아갈시다제알파는 체내에서 자연 생성되는 효소와 동일한 아미노산 서열을 가지기 때문에 장기간 치료 시에도 항체 형성 등 면역원성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난다. 또 투여로 인한 주입 관련 특이반응이 상대적으로 낮아 안전하게 투여 가능하다. 

임상 결과에 따르면, 아갈시다제알파는 성별이나 좌심실비대지수(LVMI)에 상관없이 심장 구조를 개선 또는 안정화하는 효과가 장기간 안정적으로 나타났다. 또 카플란-마이어 생존분석법(Kaplan-Meier estimate of survival)으로 평가한 결과, 아갈시다제알파주로 치료할 경우 남성은 77.7세, 여성은 76.8세까지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결과를 얻으며 장기간 치료 효과를 입증했다. 

이범희 교수는 “효소 대체요법은 질환의 진행을 억제해 환자들의 생명을 연장해줄 뿐 아니라 삶의 질 역시 일반인과 유사한 수준으로 올려줄 수 있는 효과적인 치료법”이라며 “극심한 통증과 움직임의 제약 등 정상적인 생활을 방해하는 증상들을 억제하기 때문에 실제 환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전했다. 

조민규 기자 kio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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