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투자자의 자격

기사승인 2020-11-20 0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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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투자자의 자격

[쿠키뉴스] 지영의 기자 = 한 환매중단 펀드 피해자는 “나는 사모펀드가 뭔지도 제대로 몰랐다. 고위험상품이란 이야기, 한 번도 설명 들은 기억이 없다. 아버님 아버님 하면서 듣기 좋은 말로 사람을 홀려 놓고. 알아서 잘해주는 줄 알았더니 아들 같아서 믿었던 놈이 이제 보니 원수가 따로 없다”고 성토했다.

환매중단 펀드를 판매한 증권사 PB는 “고객들은 투자자 약관 등 서류를 길게 읽는 것을 싫어한다. 투자자 유의사항이 빽빽하게 적힌 문서를 들고 서명을 받으려 하면, 귀찮은 과정이 길고 복잡하면 안 하겠다고 하는 고객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설명하지 않을 수 없어 문서를 들고 매달리면 대충 읽고 서명하시는 경우가 많다. 고객을 가족같이 생각한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다 아버지 어머니 연세인 분들이고 오래 보아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사모펀드 사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들이다. 기자 입장에서는 양쪽 말을 무조건 믿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과장을 걷어내고 나면 투자자와 PB의 하소연 속에는 겹치는 부분이 있다. 판매자는 투자자에게 고위험상품 관련 정보와 위험을 제대로 전달하는 데 실패했고, 투자자는 내용 이해를 못 한 상태에서 ‘좋은 상품’이라는 말만 듣고 돈을 맡겼다.

 결국 투자자가 잘 모르는 상태에서 투자한 경우가 허다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사모펀드와 금융투자 지식이 비교적 많은 투자자도 있었으나, 소수에 그쳤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다수의 투자자는 사모펀드는 물론이고 금융투자에 대한 이해도가 극히 낮았다. 수익률 등 상품 선전 문구 몇 개만 인지한 상태로 기대감만 크게 가지고 투자에 뛰어든 이들이 많다.  

사모펀드는 만기까지 넣어두면 약속한 수익을 무조건 돌려주는 은행 적금이 아니다. 고수익을 낼 가능성이 높은 만큼 리스크도 크다. 이 고위험상품에 ‘잘 모르고’ 투자했다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된다. 이런 자세라면 사기에 연루되지 않은 투자 상품에서도 언젠가는 반드시 손실이 날 수밖에 없다. 내가 잘 모르고, 이해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투자하지 않는 것이 맞다.

세상에 잃어도 되는 투자금은 없고, 고객을 기만하는 사기나 불완전판매도 없지 않다. 그래서 더더욱 투자자가 공부하고, 비교하면서 확실히 알고 투자해야 한다. 은퇴자금, 자녀 결혼자금 등 잃으면 인생에 타격이 큰 중요한 자금일수록 그렇다. 백만 원짜리 스마트폰 하나를 사면서도 여러 기기를 비교해보고, 원하는 조건을 분명히 따져본다. 금액이 더 큰 금융상품은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

금융사고는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판매사와 감시자, 투자자가 각자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만 사고와 대규모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당국이 아무리 감시망을 강화하고, 잘못한 판매사와 운용사를 처벌하고, 최소 가입 금액을 올려도 투자자가 주의 깊게 알아보려는 자세가 없으면 무의미하다. 투자자도 자기책임 원칙을 이해하고 책임의식을 높여야 한다. 자신 스스로가 금융투자자의 자격을 갖춘 상태인지 돌아봐야 한다. 

ysyu1015@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