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지고, LCK 뜨고

프로야구, 20~ 30대서 관심도 꾸준히 하락
동적이고 속도감 있는 콘텐츠 즐기는 MZ 세대 입맛 충족 실패
e스포츠, 유튜브-스트리밍 플랫폼 업고 고속 성장

기사승인 2021-04-28 06: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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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지고, LCK 뜨고
제한적 관중 입장이 가능한 가운데, 16일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경기가 열린 서울 잠실야구장을 찾은 야구팬이 외야 관중석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미디어 환경이 변하면서 스포츠를 향한 팬들의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 국민 스포츠인 프로야구가 MZ(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 세대에게 외면 받는 반면, e스포츠는 ‘대세’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자체 설문 결과에 따르면 KBO리그에 ‘관심 있다’고 밝힌 응답은 34%로 지난해 41%에서 7% 하락했다. 2013년 이래 가장 낮다. ‘별로 관심 없다’, ‘전혀 관심 없다’는 응답은 전체의 56%에 달했다. 눈길을 끄는 건 10~20대의 응답이다. 이들의 KBO리그 관심도는 2013년 44%였지만 최근 몇 년에 걸쳐 꾸준히 하락해 올해 설문에서는 26%로 반토막이 났다. 한국갤럽은 “20대의 프로야구 관심도 하락은 새로운 야구팬 유입의 적신호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2010년대 초반까지 절정에 이르렀던 프로야구의 인기는 해를 거듭할수록 떨어지고 있다.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KBO리그 정규시즌 평균 시청률은 5개 중계 방송사 합산 0.782%였다. 2019년(0.821%)보다 하락한 수치다. 

올해 역시 부침이 계속되고 있다. 인기 팀 간의 맞대결도 평균 시청률이 2%를 넘지 않는다. 그간수차례의 잡음에도 굳건했던 프로야구의 인기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관심도 저하의 원인 중 하나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으로 인한 무관중 경기가 꼽히지만, 일각에서는 이것만으로는 그간의 하락세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팬과 관계자들은 프로야구가 바뀐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짧고 속도감 있는 디지털 환경과 콘텐츠에 익숙한 MZ 세대에게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콘텐츠라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야구단 관계자는 “최근 몇 년과 비교하면 야구의 인기가 떨어진 것이 체감된다”며 “야구를 대체할 수 있는 게 너무나도 많은 상황이다. 스포츠가 아닌 다른 문화 생태계가 전반적으로 질이 올라가면서, 스포츠를 즐기지 않아도 얼마든지 하루를 재밌게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슈퍼리그를 창단하려던 페레즈 레알마드리드 회장이 ‘축구 시간이 너무 길다’고 말한 것에 동감한다. 야구는 9회까지 경기를 하면 3시간이 넘는다. 여기에 연장을 가면 4시간이 넘는다. 이걸 집중하고 끝까지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진짜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몰라도, 야구를 접하려는 사람에겐 너무 진입 장벽이 높게 느껴진다. 향후 주 소비자가 될 어린이, 청소년들을 잡지 못하는 게 냉혹한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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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꾼들은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모자이크 움짤을 제작하는 등의 방식으로 KBO의 '움짤 단속'에 반발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관계자는 최근 팬들의 불만을 자아낸 ‘움짤 단속’을 언급하면서 프로야구 콘텐츠의 폐쇄성 또한 팬들의 이탈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움짤은 경기 영상의 짧은 장면을 편집해 올린 그림 파일을 말한다. 별다른 동영상 플랫폼 없이도 재미있는 장면을 공유할 수 있어 접근성이 좋다. 움짤이나 이를 재가공한 콘텐츠를 커뮤니티 등을 통해 소비하는 야구팬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최근 KBO 저작권 보호팀(통신3사·포털사이트 컨소시엄)이 저작권 침해라며 강경 대응을 예고하면서 움짤은 자취를 감췄다. 지난 21일 저작권 보호팀은 한 누리꾼이 올린 게시글에 “귀하가 인스타그램에서 게시한 영상은 KBO 저작권을 침해하는 영상”이라며 “지금까지 경고성의 삭제 권고 조치만 이뤄졌지만 5월부터 법무법인을 통해 고소·고발을 진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조치에 팬들은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일부 팬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글을 올리기도 했다. 한 청원인은 “움짤과 유튜브 제재는 프로야구에서 젊은 층 이탈을 가속화할 뿐만 아니라, 야구가 인터넷에서 이슈화되거나 대화거리가 되는 빈도를 급격하게 줄인다”며 “경기 내용을 공유하고 대화 할 수 없다면 야구의 저변 확대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조치가 완화되지 않는다면, 프로야구는 현재 메이저리그가 처한 현실처럼 과거 전성기를 추억하며 늙어가는 스포츠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관계자는 “구단도 중계권을 사용할 수 없다. 구단 유튜브나 SNS에 모두 우리가 촬영한 장면들만 사용할 수밖에 없다. 중계 영상을 활용한다면 구단의 SNS 게시물이 더 발전할 수 있지만 그러질 못한다. 한계가 있다”며 “다른 종목들을 보면 대다수 2차 재가공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서 도움을 받는 게 많을 거다. 야구는 그러질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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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희정 디자이너


야구를 비롯한 기성 스포츠가 변화의 바람 속에서 흔들린 반면, e스포츠는 바뀐 미디어 환경에 수혜를 입었다. 유튜브를 통해 영상을 쉽게 접할 수 있어 접근성이 높은데다가 짧은 경기 시간, 역동적이고 화려한 볼거리 등이 넘쳐 게임에 익숙한 MZ 세대에게 선호도가 높다.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e스포츠 종목인 ‘리그 오브 레전드(LoL) e스포츠’의 국내 리그인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가 대표적이다. 라이엇 게임즈에 따르면 LCK는 2013년 이후 꾸준히 관객, 시청자 수에서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지난해 서머 시즌 LCK 평균 국내 동시 시청자 수는 약 16만6000명이었다. 일 최고 동시 시청자 수는 30만 명, 일평균 순 시청자수는 403만여 명을 기록했다. 

인기 게임인 LoL을 즐기는 이용자가 시청자의 상당수지만 개인방송인이나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제작한 LoL 콘텐츠를 접하고 LCK에 빠진 시청자도 적지 않다. 

라이엇게임즈의 요청으로 마크로빌 엠브레인이 조사한 지난 2월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LoL e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모두 선택하는 항목에는 ‘친구 또는 지인의 추천(74.7%)’이 가장 많은 응답을 받았다. ‘유튜브에서 추천한 관련 영상(36.3%)’, ‘LoL 실력 향상(28.3%)’이 뒤를 이었다. 특히 LoL 플레이 경험이 없는 응답자군은 유튜브의 영향(49.2%)을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

시청자 유입도 다양한 계층에서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LoL e스포츠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시점이 최근 3년 이내라고 응답한 비율은 32.7%이었고,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여성(46.0%)과 10대(53.5%), 40대(44.0%)의 유입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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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LoL 월드챔피언십(롤드컵)'을 관람하러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찾은 구름 관중. 라이엇 게임즈

팬들은 프로야구 등 기성 스포츠의 부침, e스포츠의 반등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몇 년 사이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이 식었다는 정 모(29)씨는 “안 보게 된 이유가 딱히 없다. 유튜브 영상도 10분이 넘어가면 안 보는 세상이다. 누가 3시간 동안 야구를 보겠느냐”고 말했다.

정 씨는 2019년부터 LCK 애청자가 됐다. 더는 LoL을 플레이하진 않지만 LCK는 꼬박 챙겨본다. 그는 “역동적이고 빨라서 좋다. 국제대회도 자주 열려서 보는 맛이 있다”고 전했다. 

이밖에도 LCK 여성 팬 황 모(30)씨는 “나도 한때는 야구를 보러 서울까지 올라가고 했었는데 이상하게 요즘은 안 챙겨보게 된다. 프로야구가 한 때는 유행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그 시기가 지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LoL을 하다 보니 LCK는 계속 보게 된다. 인기 게임이니까 영상 같은 것도 프로야구보단 유튜브에서 많이 볼 수 있지 않나. 나도 이런데, 야구를 잘 모르는 어린 친구들한텐 e스포츠가 훨씬 더 친근감이 들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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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와 스폰서십을 맺은 T1 게임단. T1 제공


변화의 바람은 재계의 움직임에서도 읽을 수 있다.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인 BMW와 스포츠 의류 브랜드인 나이키는 LCK의 인기 구단인 T1과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했다. LG전자는 젠지e스포츠와 파트너십을, 기아자동차는 담원 게이밍과 네이밍 스폰서를 체결했다. 농심은 지난해 팀 나이나믹스를 정식 인수하며 리그에 뛰어들었다. 이밖에도 롯데 등 유통업계와 우리은행 등 금융업계 또한 리그와 구단의 스폰서로 나서고 있다. 미래 고객인 MZ세대를 공략해 국내외에 자사의 브랜드를 알리기 위함이다.

한 e스포츠 관계자는 “LCK 등 e스포츠가 인기를 얻고 있다곤 하지만 단기간에 프로야구의 아성을 넘볼 순 없을 것”이라면서도 “MZ세대의 애정을 받고 있는 만큼, 지금과 같은 추세대로라면 10년 안엔 프로야구에 버금가는 스포츠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mdc0504@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