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의료복합타운’ 추진에 금연단체 반발…국제조약 위반? 

서울아산병원 컨소시엄에 KT&G 참여

기사승인 2021-06-23 05: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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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의료복합타운’ 추진에 금연단체 반발…국제조약 위반? 
청라의료복합타운 위치도. 인천시 제공


건보공단과 담배 소송 중…‘흡연 피해’ 사회적 책임 우선돼야 

FCTC선 담배업계의 사회공헌활동 금지 권고, “사업 유지 전략” 


[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인천경제자유구역 청라국제도시에 들어설 예정인 청라의료복합타운 공모사업에 ‘담배회사’가 참여하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금연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는 “비윤리적이고 국제협약에 위반되는 행위”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청라의료복합타운은 청라동 1의 601 일대 26만1635㎡에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과 의료바이오 관련 산‧학‧연시설, 의료관광 편익시설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사업자 선정을 위한 공모에는 ‘서울아산병원·케이티앤지(KT&G)·하나은행컨소시엄(서울아산병원)’을 비롯해 ▲인하대국제병원컨소시엄(인하대병원) ▲한국투자증권컨소시엄(순천향대부속부천병원) ▲메리츠화재컨소시엄(차병원) ▲한성재단컨소시엄(세명기독병원) 등 5곳의 컨소시엄이 사업 제안서를 제출한 상태다.

담배제조기업인 KT&G는 서울아산병원 컨소시엄에서 하나은행과 함께 재무적투자자로 참여한다. 

그러나 금연 전문가들은 의료산업 투자에 KT&G가 참여하는 것이 국제협약에 위반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세계보건기구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5조3항에서는 담배업계의 사회공헌활동(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에 대해서 비규범화(de-normalisation)하고, 담배업계 사회공헌활동을 지지하거나 파트너십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센터장은 “KT&G 부동산사업본부가 이 업무를 담당한다고 해서 부동산 투자를 위해 참여하는 것인지 사회공헌활동의 일부인지 알 수 없지만 담배회사가 가지고 있는 돈은 모두 사람의 생명을 위협해 벌어들인 것”이라며 “어떻게 광역시도 사업, 특히 보건의료와 관련된 사업에 담배회사가 참여하고, 대한민국 최고 보건의료분야 연구자들이 모인 병원이 담배회사와 손을 잡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질타했다. 

이 센터장은 “우리나라는 2005년에 FCTC에 비준했다. 비준했다는 것은 이 국제협약을 국내법처럼 지키겠다는 약속을 국제사회와 했다는 것이다. 이 법은 2021년 6월 현재 전 세계 182개국이 비준한 국제협약 중 세계 최대 규모로, 그만큼 담배문제가 전 세계 국가들의 주요 관심사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담배회사의 내부문건에 따르면 담배회사의 사회공헌활동은 담배규제정책 및 담배회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어느 정도 가리기 위한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담배업계의 사회공헌활동은 담배사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수행하는 전략인 것”이라며 “인천시, 인천경제청 등 관련 공공단체들이 국제협약을 위반하고 담배업계와 손을 잡는 것, 여기에 서울아산병원이 담배회사와 협력한다는 것 역시 앞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국제사회에도 큰 망신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의료복합타운 사업에 KT&G의 참여가 불법은 아니지만 ‘윤리적’으로 부적절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KT&G가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흡연 피해 관련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을 진행 중인 만큼 보건의료 분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선례를 남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유진 대한금연학회장(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은 “과거 다국적 담배회사에서 연구비를 받아 윤리 논란을 빚었던 서울대병원이 연구를 취소한 히스토리가 있다.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담배회사의 돈을 받아 연구를 하는 것에 윤리적 문제가 있다는 공감대가 있다는 것”이라며 “지금 상황도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는 ‘담배’라는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가 의료복합타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언론에 적극 홍보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 회장은 “담배회사와 건보공단이 소송도 벌이고 있는 마당에 담배회사가 보건의료 쪽에 투자하고, 병원이 컨설팅을 하는 게 추후 보건의료 사업, 정책 등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반대하는 입장”이라며 “또 FCTC에서도 상업적 이익 등을 위해 담배회사의 투자를 받거나 하는 것을 허용하면 안 된다는 조항도 있기 때문에 가입국인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지켜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계속하다 보면 선례가 남기 때문에 심사 전 인천시나 인천경제청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아산병원쪽에도 이의를 제기할 예정이고 다른 금연단체들과 함께 공동성명서를 발표할 계획”이라며 “해당 컨소시엄에서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메사추세츠종합병원(MGH)과 연구 협력을 추진한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그쪽에도 항의서를 넣을 예정이다. 법으로 규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윤리적 제한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강숙 한국금연운동협의회장(가톨릭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도 “보건의료인의 행동강령에는 담배 관련 산업과 어떠한 형태의 이해관계도 갖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지만 의사들은 당연히 지켜야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세계금연의날 선언문에도 있는 내용”이라며 “미국 내 많은 대학병원에서는 담배회사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는 것이 금지돼 있다. 담배회사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선 안 된다는 것을 알려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기 때문에 금연학회와 함께 공동성명서를 준비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시민단체는 KT&G가 담배로 인한 건강 폐해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윤미 흡연제로네트워크 대표는 “KT&G가 공단과의 담배소송에서 패소하긴 했지만 사회적 이슈가 있는 상황에서 병원, 은행, 카이스트와 연계해 의료복합타운 사업에 참여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기본적으로 담배로 인한 건강 폐해에 대해 증명된 사실들이 있는데 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등한시하면서 생명 문제를 다루는 복합 단지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 대표는 “건강 폐해에 대해 명확히 책임을 지는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게 먼저다. 의료복합단지는 환자를 치료하는 기관을 만들겠다는 건데 (건강 폐해에 대해 책임을 지는) 그런 것도 없이 자본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업 참여가 용인된다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KT&G는 부동산 투자 목적으로 해당 컨소시엄에 참여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KT&G 관계자는 “회사에는 담배사업 외에 홍삼, 건기식, 화장품, 제약, 부동산 등 다양한 사업 분야가 있으며, 해당 컨소시엄은 부동산 사업 분야에서 재무적 투자 목적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인천시는 이러한 논란에도 공모당시 공개했던 사업평가 기준에 맞춰 공정하게 선정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시 관계자는 “시가 특정 업체들을 고른게 아니라 여러 업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 공모를 신청했고, 시는 최종적으로 어떤 조건이나 평가기준 등에 맞춰서 공정하고 정확하게 평가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suin92710@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