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할당제 폐지’ 공약은 공정할까

‘실질적 공정 맞나’… 정치권, 의심 눈초리
청년 정치인 ‘울상’… “기성 정치인 유리할 수밖에”

기사승인 2021-06-26 06: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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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할당제 폐지’ 공약은 공정할까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제1회 국민의힘 대변인 선발 토론배틀’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쿠키뉴스] 김은빈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내세운 ‘공정’이 흔들리고 있다. 이 대표가 공약한 ‘공천할당제 폐지’가 실질적으로 공정하게 작용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 6·11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청년·여성·호남 할당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나이나 성별, 출신 지역에 따라 결과를 보정하는 것은 특혜라는 취지다. 그는 출마 선언문에서 “실력만 있으면 어떠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공정함을 보이겠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그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공정한 토론 배틀’이다. 국민의힘은 대변인 선발 토론배틀, ‘나는 국대다’를 개최했다. 이 대표는 지난 24일 “기회는 평등했고 과정은 공정하기 때문에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고 불만은 없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의 ‘공정’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청년·여성 공천 할당제라도 있었기에 국회의원 여성 비율 19%, 2030 비율 3%를 지켜낸 것”이라며 “이 대표는 박근혜 키즈로 정치계에 입문하고 청년 할당제인 ‘퓨처 메이커 전형’으로 공천을 받아놓고 정작 공정을 앞세워 사다리를 걷어차는 모습”이라며 비꼬았다.

이 대표가 지명한 수석대변인인 황보승희 의원도 대립각을 세웠다. 황보 의원은 지난 17일 한국여성정치연구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여성할당제에 관해서는) 자칫하면 이 대표와 뜨거운 논쟁이 필요하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황보 의원은 공천할당제가 여성들의 정치권 진입 문턱을 낮출 수 있는 제도라고 강조했다. 그는 “할당제를 통해서 개선된 것들이 있다. (할당제가 폐지된다면) 역행할 수 있다. 기회의 공정’이라는 운동장 만든다는 것을 전제로 할당제 폐지가 논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 역시 지난 19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처럼 개인의 자유와 경쟁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왜 흑인·지역 할당을 하나. 그게 실질적으로 더 공정하기 때문”이라며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를 배려하는 시스템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게 실질적 공정”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특히 이를 바라보는 청년 정치인들은 복잡한 심경이다. 이 대표로 인해 청년 정치가 주목받고 있는 건 긍정적이나 ‘청년 할당제’를 폐지함으로써 청년들이 정치권에서 마이크를 쥘 기회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서다.

같은 당 김용태 청년 최고위원(90년생)은 기성 정치인과 견줄 때 청년 정치인이 불리하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짚었다. 그는 지난 24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신인 정치인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기존 정치인과 경쟁해야 한다. 여론조사나 경선 과정을 거치면 기성 정치인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정치 신인이 기성 정치인을 이겨야 하는 데 있어 돈과 인지도가 문제”라고 유감을 표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95년생)는 청년 정치인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 개선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지난 22일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대표 같은 특수한 개인 외에 청년 세대가 정치권 주류로 진입할 수 있는 수준의 기반이 만들어졌나 의문”이라며 “사회가 평등하지 않은데 규칙만 공평하게 한다는 건 반쪽짜리 공정”이라고 꼬집었다.

이 대표의 향후 정치 행보에 공천할당제 폐지 공약이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정치컨설팅과 여론조사·분석 전문가인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할당제 폐지 공약은 자칫하면 이 대표가 설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어질 정도의 치명타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 대표는 할당이 필요 없을 정도의 정치적 환경을 만들겠다고 자신한 바 있다. 만약 그런 환경을 조성하지 못한다면 이 대표는 청년·여성·호남 출신에게 더 차별적이고 가혹한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말만 번지르르한 정치를 한다고 비판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배 소장은 평가를 유보했다. 그는 “만약 임기 2년 사이 그런 환경을 만든다면 박수를 받을 일이다. 내년 지방선거 때 공천 기준을 보고 판단하겠다”고 덧붙였다.

eunbeen1123@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