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팝’ 혐오 딛고…BTS가 제시한 대안적 남성상

기사승인 2021-07-13 07: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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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팝’ 혐오 딛고…BTS가 제시한 대안적 남성상
신곡 뮤직비디오에서 카우보이 복장을 한 방탄소년단.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넓게 펼쳐진 사막, 그 위에서 일곱 청년이 춤을 춘다. 청바지에 굵은 벨트, 챙이 넓은 모자를 착용한 모습이 미국 서부영화 속 주인공을 떠올리게 만든다. 카우보이를 쏙 빼닮은 주인공은 그룹 방탄소년단. 이들은 지난 9일 공개한 신곡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 뮤직비디오에서 ‘터프가이’의 전형으로 알려진 카우보이 이미지를 뒤집는다. 거칠고 강렬한 매력 대신 친근하고 달콤한 모습으로 희망을 노래한다.

방탄소년단이 시도한 ‘발상의 전환’은 통했다. 뮤직비디오는 공개 당시 230만 명 넘는 ‘아미’(방탄소년단 팬덤)를 불러 모았고, 52시간 만에 조회수 1억 뷰를 달성했다. 음원은 공개 첫날 스포티파이에서 733만9385회 스트리밍되며 ‘글로벌 톱 200’ 차트 2위로 진입했다. 앞서 ‘버터’가 24시간 만에 유튜브 조회 수 1억뷰를 돌파하고 스포티파이에서 1104만2335회 스트리밍된 것보다는 낮지만, 여전히 독보적인 기록이다.

‘게이팝’ 혐오 딛고…BTS가 제시한 대안적 남성상
방탄소년단.
데뷔 초 ‘힙합 아이돌’을 표방하며 사회 문제에 직설하던 방탄소년단은 최근 내놓은 영어 노래에서 긍정적인 에너지와 건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신나고 대중적인 멜로디에 희망찬 가사를 실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팬데믹에 지친 이들을 응원하고 위로한다. ‘퍼미션 투 댄스’ 뮤직비디오는 “우리가 춤추는 데 허락은 필요 없어”(We don‘t need permission to dance)라는 노랫말에 맞춰 여러 인종과 세대가 자유롭게 춤추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안무는 ‘즐겁다’ ‘춤추다’ ‘평화’를 뜻하는 국제 수화를 활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무해한 이 보이밴드는 가부장제를 지탱해온 지배적인 남성상에 균열을 내고, 부드러운 남성성을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방탄소년단은 일찍부터 팬들과 친밀하게 소통하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서구의 강한 남성성 관습을 거슬렀다. 한때 ‘게이팝’이라는, 인종차별과 성소수자 차별이 중첩된 혐오 표현으로 이들을 폄훼하던 서구사회에서도 이제 “(BTS가) 해로운 남성성에 맞서 도전했다”(에스콰이어), “남성성에 관한 엄격한 통념을 본능적으로 거부한다”(롤링스톤) 같은 평가가 나온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팝 시장에서 착하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은 뉴키즈 온 더 블록, 저스틴 팀버레이크, 원디렉션 등 백인 남성 아티스트들이 점유해왔다”며 “그 자리를 방탄소년단이라는 K팝 아티스트가 차지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짚었다. 방탄소년단 리더 RM은 롤링스톤과 인터뷰에서 “무엇이 남성적인지에 이름표를 붙이는 것은 낡은 관념”이라며 “우리가 그것(전통적 남성성)을 무너뜨리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우리는 그런 이름표나 제한을 두지 말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wild37@kukinews.com / 사진=‘퍼미션 투 댄스’ 뮤직비디오 캡처, 빅히트뮤직 제공.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