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2관왕 ‘칠흑’ 이준섭 감독 “영화답게 찍어보자 생각했어요” [쿠키인터뷰]

이준범 / 기사승인 : 2021-07-28 19: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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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섭 감독. CJ 문화재단 제공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비밀은 비밀을 낳는다.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코리안 판타스틱 단편 작품상'과 '왓챠가 주목하는 단편상' 2관왕에 오른 단편영화 ‘칠흑’(감독 이준섭)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아내의 비밀을 풀지 못한 남자가 새로운 비밀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시종일관 어두운 영상으로 전개되는 ‘칠흑’은 다음 장면이 궁금해 몰입하게 되는 미스터리 서사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칠흑’을 연출한 이준섭 감독은 최근 진행한 쿠키뉴스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영화답게 찍어보자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영화의 시작은 이랬다. 우연히 CJ 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스토리 공모전 소식을 알게 됐다. 지원사업에 선정돼 오랜만에 단편영화를 찍게 됐다. 영화에서만 가능한 ‘영화다운 영화’가 어떤 것인지 고민했다. 그 끝에 ‘칠흑’ 시나리오가 탄생했다.

“지난해 초 장편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어요. 잘 풀리지 않던 중에 스토리 공모전을 알게 돼서 ‘마음에 드는 이야기로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구상을 시작했어요.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영화를 만드는 거니까 영화답게 찍자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가장 영화적으로 만드는 방법이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가장 영화다운 게 될까 하는 부분에 공을 많이 들였어요. 처음엔 비밀을 이야기 소재가 아닌 주제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과 두 남자가 한밤중에 찾아오는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그 둘을 합치고 발전시켜서 ‘칠흑’ 시나리오가 됐어요.”

단편영화 '칠흑' 포스터

비밀은 이준섭 감독이 과거부터 관심을 가진 주제다. 이전에 찍은 단편영화들도 뭔가를 감추는 이야기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비밀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보여주기 위해 고민했다. 목소리가 녹음된 릴 테이프를 등장시킨 배경이다.

“제 이전 영화들이 모두 ‘칠흑’처럼 미스터리한 영화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뭔가를 감추고 서로 모르는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왜 그런가 생각해봤어요. 우린 살면서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내가 안 볼 때 뭘 하는지 알 방법이 없잖아요. 추측만 할 뿐이죠. 영화가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아무도 없을 때에도 누군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같이 볼 수 있는 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쪽에서 뭔가 일어날 때 저쪽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같이 보여주는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 같아요.”

이준섭 감독은 과거엔 수상에 대한 간절함이 컸다고 고백했다. 이번엔 조금 달랐다. 작품을 만든 과정, 그리고 도움을 준 스태프와 배우들을 돌아봤다. 섭외와 멘토링 등 여러 면에서 도움을 준 CJ 문화재단에 대한 고마움도 빼놓지 않았다. 영화에 대한 고민도 남았다.

이준섭 감독. CJ 문화재단 제공

“좋은 결과를 얻고도 계속 드는 고민이 하나 있어요.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님이 던진 ‘나는 영화를 원하는데 영화도 나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칠흑’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그 질문에 답을 얻고 싶어서 고군분투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결과를 제 고민에 대한 응답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앞으로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질문은 멈추지 않을 거예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열린 GV에서 누군가 ‘칠흑’의 장편영화화 가능성을 물었다. 이준섭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우리끼리 농담처럼 ‘칠흑’이 확장된다면 장편영화보다 시리즈가 재밌겠다는 얘길 했다”고 말했다. ‘칠흑’에 등장하는 신혼부부 외에도 세상엔 다양한 종류의 비밀이 있을 것이고, 두 남자가 찾아갈 곳이 많겠다는 상상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이 감독은 앞으로도 특정 영화에 한정 짓지 않고 다양한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특별한 영화만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영화를 만들수록 이 일을 계속하면 어떤 이야기든 잘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해요. 영화에 숙련된 기술자처럼요. 어떤 이야기든 영화에 정말 잘 어울리면 뭐든 도전해보고 싶어요. 이제 막 시작했으니까요. 지금 활발히 만들어지는 영화보다는 최근 잘 만들어지지 않는 영화, 잊힌 종류의 영화들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이 커요.”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