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 시간 요구했더니…계약만료 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기사승인 2021-11-10 19: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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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 시간 요구했더니…계약만료 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10일 오후 3시 서울시 도봉구 창동에 위치한 동북권npo지원센터에서 아파트노동자 동행 워킹그룹 공론장이 열렸다.   정윤영 인턴기자

“관리소장님께 휴게시간을 보장해달라고 건의했지만 돌아온 건 계약만료 통지서였습니다.”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이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근무 현장에 대해 입을 열었다.

10일 오후 3시 서울시 도봉구 창동에 위치한 동북권npo지원센터에서 아파트 경비 노동자의 노동 환경을 논하는 공론장이 열렸다. 이날 총 19명의 경비 노동자들이 참석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이오표 성북구 노동권익센터장은 “경비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법 제도들이 마련되고 있다”라며 “많은 노력과 제도 개선에도 불구하고 미흡한 부분이 있다. 경비 노동자분들의 현장 발언 등을 통해 함께 논의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라며 공론장 취지를 설명했다.

이날 2명의 경비 노동자가 현장 발언을 했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근무했다는 경비 노동자 A씨는 “지난 2019년 입주 아파트 입사 후 이사 차량이 많아 휴게 시간에도 근무를 하며 ‘입주 이후에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라고 입을 열었다.

A씨는 “입주자대표회의가 구성되고, 관리 업체와 경비용역회사가 교체된 이후 작년 11월부터 경비원과 미화원의 계약만료 해고가 이뤄졌다"라며 “3개월씩 단기로 계약을 하며, 수시로 아파트 내 3개의 초소를 오가며 다음엔 누구를 자르겠다고 압박했다”라고 말했다.

휴게 시간 보장을 요구하는 건의 사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씨는 “소장님께 휴게시간을 보장해달라고 건의했지만, 돌아온 건 계약만료 통지서였다”라며 “실장 부임 약 10개월간 12명의 경비 노동자 중 10명이 해고 조치를 당했다”라고 토로했다.

휴식을 제대로 취할 수 없는 휴게 공간에 대한 불만도 나왔다. 서울 모 아파트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경비 노동자 B씨는 “지하 휴게 공간이 없어 좁은 초소에서 취침하고, 밥솥, 전자레인지 등을 놓을 자리가 없는 등 불편한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휴게시간에도 초소에 있으니 입주민들이 업무 시간인 줄 착각해 찾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견디다 못한 B씨는 휴게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회사에서는 계약 만료를 얘기했다.

현장 발언 후 이어진 질의 시간에 경비 노동자들은 “계약서 주는 데를 한 번도 못 봤다”, “계약 전 사직서를 먼저 작성해놓았다” 등 입을 모아 업무 중 겪은 불이익을 말했다.

경비 노동자들은 그동안 업무의 피로도가 낮다는 이유로 감시적 근로자로 규정됐다. 감시적 근로자는 감시업무를 주 업무로 하며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적은 업무에 종사하는 자를 말한다. 감시적 근로자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으면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이로 인해 주휴수당, 휴일, 연장근로, 가산수당 등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노동법상 보호에서도 배제됐다. 격일제 근무라는 전근대적 근무 형태를 띠고 있어 휴식 시간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5일 ‘공동주택 경비원의 감시·단속적 근로자 승인 판단 가이드라인’ 시행을 발표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경비 노동자의 감시적 근로 승인 여부는 ‘감시 업무 외 다른 업무를 수행했는지’가 아닌 ‘심신의 피로도가 근로시간·휴게·휴일 규정을 적용해야 할 정도로 높은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심신의 피로도는 감시업무와 다른 업무를 포함한 전체 업무를 기준으로 한다. 감시적 업무를 하고 있더라도 몸과 정신에 가해지는 피로도가 높다면 주 52시간제 등 규정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 기준이 불명확해 적용 가능성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이날 공론장에 참석한 유상철 노무사는 “경비 노동자가 당연한 권리를 요구해도 업체에 밉보여 해고 당할까 봐 입을 열 수 없는 상황”이라며 “혼자서 목소리 내는 것을 어렵다. 사례를 가지고 외부적으로 항의를 할 것인지, 어떻게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인지 더 논의해 봐야 한다”라고 밝혔다.

정윤영 인턴기자 yuniejung@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