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보다 무서운 빚”…젊은 암경험자 경력 단절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1-11-29 07: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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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보다 무서운 빚”…젊은 암경험자 경력 단절 [쿠키청년기자단]
항암 전후의 삶을 그리는 유자씨의 인스타툰

‘제발 계속 회사 다니게 해주세요’

두 번의 암 투병을 겪은 전태인(34세·여)씨는 생각했다. 대출과 고정지출이 있는 사회 초년생으로서 암으로 경력이 중단된다는 것은 큰 문제였다. 그는 빚이 암보다 더 무서웠다고 했다.

암은 젊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발표 2018년 기준, 한국 암 발병 수는 24만 3.837명이다. 그중 만 20~49세 암 발병률은 19.32%이다. 암 진단을 받은 5명 중 1명이 20~40대인 셈이다. 20~40대 암 환자는 계속 늘고 있다. 2014년과 2018년 암 진단 수를 비교하면 20대는 44.5%, 30대는 12.9% 증가했다.

그럼에도 한국은 젊은 암 경험자의 ‘애프터케어’(사회복귀와 삶 경험에 대한 정책) 제도가 미약하다. 암 경험자의 치료 후 사회복귀 비율은 30.5% 정도로 OECD 최하위다. 암 경험자의 전반적 문제를 조사한 국가 통계도 없다. 통계가 없으니 어떤 지원을 해야 할지도 불명확하다.

젊은 암 경험자의 고민과 이들에게 필요한 지원은 무엇일까. 20대 유자(26세·여·가명)씨, 30대 전씨, 40대 이주희(48세·여)씨. 세명의 암 경험자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유자
“유자라고 합니다. 인스타그램에 항암 전후의 삶을 그리는 인스타툰을 연재하고 있어요. 호지킨림프종(혈액암) 투병했습니다. 2년 전 투병 당시엔 대학교 3학년 재학 중이었어요. 아르바이트하다 몸이 너무 안 좋았고 혹을 발견하게 되어 바로 치료를 진행했습니다. 기말고사는 거의 치르지 못하고, 휴학해서 항암치료를 받았어요. 항암이 끝난 뒤,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으며 졸업했어요. 현재는 한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인
“34세 전태인입니다. 졸업하자마자 방송국에서 제작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2년 정도 후, 26세에 유방암 2기 진단을 받고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땐 어린 나이라 젊음을 무기로 이겨냈던 것 같아요. 이후에 다른 곳에 취업했지만 34세에 유방암 재발을 진단받고 수술을 했습니다. 지금은 세 번째 직장을 다니고 있는 상태입니다.”

주희
“암 5년 생존자(경험자)인 48세 이주희입니다. 싱글로 살고 있고, 대기업에서 15년 정도 근무를 하다가 유방암 판정을 받게 되었어요. 2016년 1월 건강검진을 하다 알게 됐습니다. 증권회사에 다녔었거든요. 그때 일이 너무 바빠서 아이러니하게 ‘이제는 쉴 수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아요. 회사에서 배려를 해주셔서 2년 후에 복직하고, 지금은 이직한 상황입니다.”

-암 투병 당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유자
“항암치료가 굉장히 힘듭니다. 부작용도 많고요. 머리가 빠지거나 체력이 떨어지는 점이 가장 힘들었어요. 전반적으로 컨디션이 몇 달간 안 좋았던 거죠. 대학교 3학년이면 인턴을 알아볼 시기에 암에 걸리게 돼 당황스러웠죠. 남들은 다 경력을 준비할 시간이었으니까요. 치료가 끝나고 체력이 안 좋은 상황에서 온라인 강의를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암 경험자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동시에 이런 상황에서 취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고민이 많아 힘들었습니다.”

태인
“20대, 30대 투병 경험이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20대 때에는 친구들이 사회생활하고 소개팅도 하러 다니며 노는 게 부러웠어요. 항암치료 중에는 지하철 맞은편에 앉은 여대생들이나 제 또래 여자들만 봐도 눈물이 계속 나는 거예요. 다들 20대 때가 제일 예쁘다고 하는데 저는 그때 대머리로 있었으니까요. 외향적인 성향인데 몸은 따라주지 않으니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30대에 재발했을 때는 경제 문제가 가장 힘들었어요. 저는 비교적 보험 가입이 잘 되어있던 터라 치료 비용의 곤란함은 적은 편이었지만 생활비 및 대출이 문제였죠. 학자금대출, 전세대출, 결혼 준비하느라 또 적금도 들고 고정 지출이 계속 있는 상황에서 아프게 되니까 막막함이 컸습니다. 그래서 항암을 받으면서라도 일을 나가려 했던 거죠.”

주희
“저는 치료 과정이 힘들었어요. 전 절제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눈물이 떨어졌어요. 전혀 생각을 못 했는데 여성성에 대한 부분이 마음에 걸렸나 봐요. 항암치료도 힘들었어요.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긴 해요. 전 체력이 좀 많이 약해져 있어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정서적으로는 크게 힘들진 않았습니다. 혼자 살지만, 가족도 있고, 직장동료들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유자
“엄마 아빠 그리고 친구들이 많은 응원을 해줬어요.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가 빠지는 것이 신경 쓰였지만, 점차 가발도 벗고 제 모습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덜 신경 쓰는 법을 조금 배운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은 굳이 용기 내지 않아도 될, 자연스럽고 멋있는 일이라며 바라보고 응원해 준 소중한 친구들에게 고마웠어요.”

태인
“주변에 암 환자가 있는 사람들은 암 경험자를 잘 이해해 주는 편이에요. 미디어에서는 말기 암 환자들을 자주 그리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아요. 그래서인지 제가 암 경험자였다고 하면 다들 놀라는 편이었습니다. 저처럼 큰 부작용 없이 치료를 받은 경험자들은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하거든요.”

주희
“주변에서 많이 배려해 준 편이에요. 저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악의가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닌 걸 아니까요. 그래도 서운하고 속상했던 부분은 있었던 것 같아요. ‘혼자 살아서 그래’, ‘생활방식으로 인해서 병에 걸렸다’ 이런 말을 들으면 제 탓을 하게 되는 게 싫었어요. 후회스럽거든요. 예전에 먹었던 콜라, 생활습관, 몸 생각 안 하고 일했던 것, 상사에게 힘든 말을 들었을 때 참았던 일까지요. 그땐 사람들에게 함부로 얘기하지 말라고 한 적도 있었어요. 나중엔 너무 예민했나 싶어서 미안하기도 했지만요.”

-다시 일을 시작했을 때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유자
“체력적인 한계요. 체력이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일반인과 같은 강도와 시간으로 일하다 보니 정말 힘들었어요. 이걸 상사나 동료에게 말하기는 꺼려져요. 암에 대한 시선 자체가 아무래도 안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계속 병력을 밝히지 않은 상태로 일하다 보니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혔어요. 채용 검진에서 병력이 나오게 되거나, 병력을 먼저 밝히면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기 때문에 병력을 밝히는 것 자체가 힘들어요.”

태인
“꿈이었던 방송국 일은 어쩔 수 없이 포기했어요. 방송국은 모든 게 빨리빨리 흐르는 곳이에요. 투병 탓에 1년6개월 정도 쉬다가 돌아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같이 일했던 친구들은 PD를 앞두고 있더라고요. 제가 다시 FD로 시작하기에는 모든 게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죠. 회사 분위기도 ‘밤낮없이 일하는데 네가 암 환자 할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흘러갔어요. 선배들도 일자리 추천을 꺼렸고요. 그래서 이 직업을 포기했습니다.

일반 회사로 다시 취업했을 땐, 입사 후 병력을 밝혀야 하는 것에 대해 부담감이 컸어요. 제 병을 알게 된 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으니까요. 보통 암 경험자는 치료 후 5년간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진행합니다.

저는 부산에 살고 있고 병원은 서울이기 때문에 연차 사용이 자유로운 회사인지 확인이 꼭 필요했어요. 그 외에도 항암치료 후 다시 자란 머리, 수술로 인해 움직임에 제약이 있는 경우 등을 설명하고 이를 설득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주희
“사회에 복귀할 때 심리적인 요소가 저를 막아섰던 것 같아요. 재발의 우려 때문에 일을 하는 게 무서웠고, 항암치료를 하는 것도 두려웠어요. 하지만 병원에서도 상담을 받고, 직장에서도 배려를 해주셨던 부분이 있어서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대기업이어서 복지가 있었던 측면도 있었고, 회사에 아는 사람들도 있어서 무사히 복직할 수 있었어요. 배려가 암 경험자가 다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러다 퇴직하게 되고, 이직을 준비하다 면접에서 병력을 솔직하게 얘기하게 됐어요. 암 경험한 지 3년이 지났기 때문에 일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말하는 순간 면접관의 눈빛이 바뀌더라고요. 제 경력을 보고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흘렀었는데, 찰나에 공기가 달라지더라고요. 아무래도 조직을 관리하는 일에 지원한 거니까, 주 6일 근무를 해야 하는데 그 점이 힘들 것이라 생각했나 봐요.”

-병을 앓고 난 뒤 경력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유자
“이전에는 단순히 대학 졸업하고 스펙을 쌓아서 대기업에 가는 게 성공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 방향으로 의심 없이 달려갔었고요. 지금은 달라졌어요.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업무를 해야 하고, 자신에게 맞는 직장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태인
“첫 발병 후에는 ‘잃을 게 없는 사람’이 됐어요. ‘암도 이겨냈는데 못할 게 뭐가 있지’하는 마음이 강해졌거든요. 앞으로 잘 관리하며 살면 되겠다는 생각으로요. 두 번째 발병 이후로는 그냥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됐어요. 열정을 쏟아 명예를 얻는 것보다는 적당히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고, 잘릴 걱정 없이 길고 가늘게 일할 수 있는 업무를 선호합니다. 결혼을 앞두고 있기도 했고, 친구들이 자리를 모두 자리 잡았기 때문에 그냥 남들처럼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제일 강해요. 지금은 공기업같이 안정적이고 복지가 잘 된 곳을 가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주희
“먹고사는 데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일하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남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해요. 예전엔 절대 할 수 없었던 생각입니다. 전 직장처럼 대기업이라는 이름표를 다는 게 사회에서 이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제는 나만의 성공 스토리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암 경험자들에게 필요한 사회 변화는 무엇일까요.

유자
“먼저 채용 분위기입니다. 불이익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병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합격에 영향을 주는 방식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런 이유로 먼저 병력을 밝히지 않거든요. 일하는 중에도 병원을 가야 할 일이 생기는데 걱정 없이 병원에 다닐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태인
“국가 차원의 경제 지원이 필요해요. 질병으로 인한 퇴사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어요. 다만 모든 치료가 끝나고 주치의가 구직활동이 가능하다는 확인서를 작성해 줘야만 실업급여 수령이 가능해요. 결혼을 하면 배우자의 수입이 있다지만, 저 같은 미혼의 경우에는 항암치료를 받으며 직장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주변 사람에게 늘 했던 말이 ‘나는 암보다 빚이 더 무서워서 직장을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전 보험 가입이 잘 되어있었지만, 대부분의 20~30대는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실비 정도 있으면 다행이라고 여기죠. 저와 비슷한 상황에서 보험이 없었던 친구는 경제적 곤란이 심했어요.”

주희
“복직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저는 운 좋게 복지가 좋은 기업에 다녔어요. 배려를 받으며 일해봤기에 그 소중함이 얼마나 큰지 잘 압니다. 많은 기업에 이런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시간제로 일할 기회도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암 경험자들이 체력적으로 주 5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혹은 야근이나 추가 업무까지 하며 일하기엔 힘든 게 많아요.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이전보단 나아졌지만, 저희 같은 사람을 위한 탄력 근무도 많아졌으면 합니다.”

이유민 객원기자 dldbals0125@naver.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