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째 소송 중… 시·청각 장애인, 영화 볼 권리 찾을까

기사승인 2022-03-01 0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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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째 소송 중… 시·청각 장애인, 영화 볼 권리 찾을까
단편영화 '반짝반짝 두근두근' 배리어프리 버전. 유튜브 캡처

# 시각 장애인 김필우(42)씨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확산되기 전 한 달에 한 번은 영화관을 찾았을 정도로 영화를 좋아한다. 배리어 프리 영화(시·청각 장애인을 위해 자막과 음성 해설이 제공되는 영화)를 함께 보며 여자친구와 더 자주 만나고 가까워졌다. 하지만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싶을 때 볼 수는 없다. 배리어 프리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과 시간대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애써 찾아가야 하는 불편함에 혼자, 혹은 시각 장애인끼리 가면 자리 찾기도 어렵다.

시·청각 장애인의 영화 관람권이 여전히 제한 받고 있다. 6년 전 시작한 차별구제청구 소송은 1심과 2심을 거쳐 대법원으로 향했다.

시·청각 장애인 4명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영화 관람권을 보장받기 위해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3대 멀티플렉스 극장을 상대로 2016년 2월 차별구제소송을 냈다. 영화관에서 ‘가치봄’이라는 이벤트 형식으로 배리어 프리 영화를 상영하지만, 비장애인에게 제공되는 영화에 비해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청각 장애인의 인권 문제를 다룬 영화 ‘도가니’(감독 황동혁)를 보고 싶어도, 시·청각 장애인들은 원하는 영화관에서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볼 수 없었다.

지난해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멀티플렉스 3사(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와 이외 극장을 포함해 상영된 가치봄 영화는 8편, 상영 횟수는 총 116회였다. 같은해 국내 개봉한 영화는 1900여편에 비하면 영화를 선택할 여지가 거의 없다. 그마저도 주말 상영은 6.8%에 불과하다. 영화관을 자주 찾는 일요일엔 한 번도 상영되지 않았다.

2017년 12월 열린 1심에서 서울지법은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당시 법원은 “피고들(멀티플렉스 3사)이 장애인인 원고들을 형식상 불리하게 대하지는 않지만, 실질적으로 동등하지 않은 영화관람 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봐야 하고,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간접차별에 해당한다”고 봤다.

지난해 11월 열린 2심 결과는 일부 승소였다. 법원 판결에 따르면, 좌석 수가 300석 이상이거나 복합상영관(멀티플렉스) 지점의 모든 상영관 총 좌석 수가 300석이 넘는 경우 1개 이상의 상영관에서 총 상영 횟수의 3%에 해당하는 횟수만큼 개방형 또는 폐쇄형을 선택해 배리어 프리 영화를 상영해야 한다. 서울고법은 “피고는 장애인차별금지법 및 시행령에 따라 화면해설이나 자막을 제공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인정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6년째 소송 중… 시·청각 장애인, 영화 볼 권리 찾을까
한국농아인협회 홈페이지

재판은 최종심으로 이어진다. 최근 원고와 피고 양 측 모두 상고를 결정했다. 원고 측은 멀티플렉스 상영관 중 1개관에만 상영하라는 법원의 결정을 동등한 영화관람권을 보장하는 것으로 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상영 횟수로 언급된 3% 역시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수치이고 적절한 이유도 설명되지 않았다. 원고 측 소송 대리인을 맡은 법무법인 두루 이주언 변호사는 “재판부가 개방형이 아니면 각 상영관마다 폐쇄형 화면해설 수신기기 2대씩 구비하라고 했다”며 “폐쇄형 방식의 장비를 도입하면 계속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상영관을 제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상영 횟수 3%에 토, 일요일을 포함한다고 했는데, 영화관에서 배리어 프리 영화를 평일 조조 영화로만 상영해도 3%에 해당된다”며 “이게 장애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건가 싶다”고 지적했다.

폐쇄형 배리어 프리 영화는 스마트 안경이나 이어폰 등 자체 기기로 영화를 감상하는 방식을 말한다. 음성과 자막으로 영화를 해설하기 때문에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즐기기는 어려운 개방형 대신, 폐쇄형 방식을 이용하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상영관에서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다. 시각 장애인 김헌용(37)씨는 “배리어 프리 영화관이나 영화 시간을 따로 두어서 장애인들끼리 영화를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화면해설이 필요 없는 관객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이어폰이나 애플리케이션으로 보통 상영 시간에 영화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CGV 관계자는 “장애인분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영화 관람이나 문화체육활동에 있어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취지에 저희도 공감하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장애인분들이 불편하지 않고, 비장애인 고객들에게는 방해 없이 서비스가 가능한 표준화된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장애인분들의 영화 관람 환경 개선을 위해 월 2~3편의 작품을 한글자막과 화면해설이 동시에 제공되는 배리어프리 버전의 영화를 상영하는 가치봄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