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제, 복잡한 변수들을 단순화하라”

[인터뷰] 고유환 통일연구원장
김정은 정권 10년 평가와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현실적 조언

기사승인 2022-03-19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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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문제, 복잡한 변수들을 단순화하라”
최요한 시사평론가(왼쪽)와 고유환 통일연구원 원장(오른쪽).   사진=임형택 기자

아주 오랜만에 비가 내렸던 지난 14일, 초조한 마음으로 통일연구원의 고유환 원장님을 뵙기로 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박사과정 은사님이신데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 한 번 드리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에 덜컥 인터뷰 약속을 하고 찾아뵙게 되었지요.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은 느낌은 단순히 ‘날씨’라는 물리적 환경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 사람들 대부분의 생각일 겁니다. 대통령 선거가 정말 치열하게 펼쳐졌고, 그 결과로 울고 웃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울진과 삼척에는 산불이 나는 바람에 이재민들도 많이 생겼고, 지구 반대편에서는 무시무시한 전쟁이 벌어져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는 소식에 마음이 우울했습니다. 그래도 대한민국이 5년에 한 번씩 열병처럼 앓게 되는 대통령 선거가 끝났고, 지혜를 빌려야 한다는 생각에 여러 가지 질문주제를 들고 통일연구원을 찾아갔습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이것저것 마음 쓰이는 일들이 켜켜이 쌓여있어 쉽지만은 않은 상황 속에서 그나마 고유환 원장님 덕택에 좀 위안이 되는 인터뷰였습니다. 최대한 녹취 그대로 풀도록 하겠습니다.




최요한 평론가(이하 최) : 올해로 북의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의 집권 기간이 10년이 되었습니다. 원장님께서 내리시는 지난 북의 10년, 총평으로 정리를 해 주시죠.

고유환 원장(이하 고) :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흔히 이야기하기를 ‘한반도 절반의 상속인’이라고 이야기하죠. 그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맡아서 과연 여러 가지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안정적으로 집권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많았었는데, 어쨌든 권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세습되었지만 3대 수령체제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고 현재까지 10년간 권력 기반을 다져왔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김일성 시대의 유일체제, 김정일 시대의 수령중심론 등이 시스템적으로 구축되었기 때문에, 이른바 후계자론과 함께 자연스럽게 3대 수령이 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사실 김정일 위원장이 살아있는 동안에도 ‘후계’를 염두에 두고 ‘세대’를 준비했어요. 이른바 북한에서 ‘혁명 3, 4세대’라고 하는 후계세대를 준비하여, 후계가 누구라고 그 당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단) 정해지면 그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뒀어요. 다만 권력 측면에서는 별문제 없이 이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강력한 도전요인이 고모부인 장성택이었습니다. 장성택이 당 행정부를 중심으로 이권을 장악하고 세력화하는 문제가 있었기에 결국 장성택과 그 관련된 인사들을 숙청했습니다. 그리고 수령체제에서는 수령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백두혈통’인데, 이복형이긴 하지만 ‘김정남’이 (김정은의 대안으로) 중국이 내세울 수 있다, 이런 이야기가 있었고, 이 부분도 잠재적 도전요인이라고 보고 암살을 했던 것이지요.

“북한 문제, 복잡한 변수들을 단순화하라”
고유환 통일연구원 원장.   사진=임형택 기자

고유환 원장은 유난히 ‘세대’라는 단어를 힘주어 이야기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나 다음 <세대>에 대해서는 꽤 예민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라고요 요즘 우리나라는 586 세대가 중심축이기는 하지만 2030세대에 꽤 많은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북한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4년 고난의 행군 시기의 꽃제비 세대들이 성장해서 이제 막 떠오르는 세대가 되고 있는데 말이죠.

최 : 제가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 들은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요, 김정은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그 누구보다 먼저 교수님께서 이야기하셨다고요?

 고 : 그렇다기보다 기본적으로 북한에서는 백두혈통이 아니면 후계수령이 될 수 없다는 ‘내부논리’로 정리가 되어 있고, 그리고 누가 될 것인가? 김정남, 김정철, 김정은이라는 세 명의 아들이 있는데, 누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 외부 세계에 알려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유일하게 외부 세계에 증언한 것은 김정일의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가 일본으로 돌아가서 책을 낼 때, 아마 일본인이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김정운’이라고 외부에 알렸고, 그 뒤로 확인된 것은 대만의 사진작가가 원산의 집단농장에 방문했다가 거기에 써 붙여진 포스터(만경대혈통과 백두혈통을 이은 청년대장 김정은)를 보고 공식적으로 확인했고요, 저는 2005~2006년에 남북관계가 활성화되었던 당시에 북측 관계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여러 군데서 만나본 북측 관계자들 중에 “30대~40대가 실세”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공식적인 서열과 관계없이 비공식적으로는 실권을 대부분 30대와 40대가 가지고 있더라는 거죠. 그것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 ‘아! 이것은 후계와 관련이 있다, 혁명 3, 4세대가 준비되고 있다’라고 느꼈어요.

 최 : 이것이 바로 후계를 위해 혁명 3, 4세대를 시스템으로 준비하였다는 것이죠?

 고 : 김정일 국방위원장 입장에서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집권하는 것을 전제로 하되, 언제라도 유고가 생기면 후계가 작동할 수 있도록 시스템으로 준비했다는 거죠. 3, 4세대에게 ‘핵’을 집어넣으면 누가 되어도 시스템이 작동되도록 한 거예요. 후지모토 겐지의 책에 의하면 김정일이 여러 아들들을 여러 각도로 어릴 때부터 시험해본 결과 김정은이 가장 권력에 대한 욕구가 강하고, 통치에 대한 타고난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어릴 때부터 점지하고 후계 교육을 시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 : 그러면 김정은이 북한 인민들에게 알려졌던 2009년부터 후계가 시작된 것 아니었습니까?

고 : 김정일 위원장이 2008년 8월에 뇌졸중이 있었고, 그러면서 후계를 본격화 할 수 있었던 것이죠. 처음부터 서두를 생각은 없었는데 뇌수술도 하고, 거동도 좀 불편하고, 그래서 2009년부터 후계를 공식화할 수 있었던 거죠.

최 :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세습’으로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에 대해서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거든요? 이 방법밖에 없는 건가요?

이 질문은 정말 원장님께 여쭈어보고 싶던 질문이었습니다. 잠깐 다른 말씀을 드리자면, 돌아가신 제 부친께서 석사학위 논문 주제를 ‘북한의 선거법’으로 하셨기 때문에 제가 옆에서 좀 도와드린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북한 자료를 보며 숨이 턱 막혔습니다. 요즘 한국의 선거를 부정선거라고 부르짖는 분들이 있던데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북한의 선거는 우리 관점에서는 아예 선거라고 부를 수가 없더라고요, 그 지점을 여쭈어본 겁니다.

 고 :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의 시스템은 ‘당-국가 시스템’이라고, 당이 지도적 역할을 행사하면서 국가, 사회를 끌고 가는 체제고, 당의 수반이 최고 권력자거든요, 북한에서는 총비서라고 하죠. 그런데 당의 수반에 대한 임기 규정이 없어요. 그리고 선출 절차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명문화되어 있지 않았고, 그래서 보통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당의 최고 수반은 한 번 뽑히면 죽을 때까지 종신제고, 그 과정에서 권력투쟁으로 인해 축출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죽으면 끝나는 거죠. 북한도 수령중심 체제를 만들어 놓았고 수령의 계승은 과거 왕조시대의 왕위 계승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최 : 그런 부분들이 우리 대한민국 국민과 북한의 인민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고 : 그런데 구(舊)소련도 그랬고, 현재 중국도 공식적으로는 중국 공산당이 지배하는 1당 국가체제인데, 그런 장기집권에 따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연경화(年輕化)라고 연령을 낮추는 개혁조치를 취하고, 보통 5년 임기의 국가주석이나 당 총서기를 두 번만 하자는 등의 조치, 그리고 70이 넘어가서는 더 이상 하지 말자, 라고 관례적으로, 내부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있었지요. 지금 시진핑 체제에서는 그것도 깨진 상황이죠. 시진핑은 3연임 할 가능성이 있다잖아요? 사회주의 당-국가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가 최고권력에 대해 견제가 불가능하다, 최고권력이 종신제다, 라는 것입니다.

 최 : 기왕에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중국에 대해서 여쭈어보겠습니다. 중국은 우리나라에 대해 사드배치니 뭐니 해서 압박하고 있는데, 중국과 북한 간의 관계를 우리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거든요?

 고 : (웃으며) 보통 사람들은 북한 핵 개발에 있어서나 여러 부분에 있어서 중국이 왜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냐. 중국이 제지하면 될 텐데. 라고 많이 이야기 하지만 북한이 성립된 배경을 봐야 해요. 그게 ‘반제 자주’인데,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식민지 경험을 했었기 때문에, 그 어떤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것, 그리고 중국과의 오랜 주종관계, 이것을 끊고 국가를 세웠다는 것이 김일성 정권의 특징이자 정당성의 근거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바로 反중국적 요소가 있는 것이죠. 오랜 기간 이어져 왔던 중국과의 주종관계를 끊고 자주적인 국가를 수립했다, 그러니까 중국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매우 독립적이예요. 중-소분쟁기 때도 어느 나라도 편들지 않고, 나름대로는 줄타기 또는 등거리라고 하는데, 지금 우리식으로 이야기하면 ‘균형외교’라고 할 수 있지요. 나름대로 두 대국 사이에 일정한 분별심만 가지면 두 대국으로부터 지원을 얻고 자주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거지요.

최 : 그런 차원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경제적 차원에서 중국과 매우 밀접한 연계가 있고, 정치 안보적으로는 미국과 연계가 되어 있어서 균형외교를 잘 살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북한도 소련과 중국, 지금은 러시아와 중국이겠네요, 이 사이에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은가요?

고 :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은,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에 이제는 미국과 중국이죠. 지금도 미중 전략경쟁 구도로 되어 있는데, 그래서 김일성 시대부터 계속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노력을 계속 시도했지요. 그래서 북한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일정한 경쟁 관계를 활용해서 생존하겠다, 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뜻대로 실현하지는 못한 거예요, 기왕에 중국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조금 더 보태겠습니다. 북한과 중국 관계가 가장 나빴던 시기가 언제냐 하면 1992년 한중수교 때예요. 1991년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 되었고, 북한은 흡수통일 당하는 것에 대한 굉장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 와중에 전통 우방인 중국이 적이라고 생각하는 남한과 수교하는 것을 보고 ‘아~ 이젠 믿을 데가 없구나’라고 생각한 것이죠. 그래서 그 당시에 북한지도부가 중국 지도부에게 “미국과 수교할 때까지만 좀 기다려 달라”, 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이걸 교차승인이라고 하죠? 그렇게 해서라도 균형을 잡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 중국은 북한의 요구를 뿌리치고 대한민국과 수교를 했던 겁니다. 그래서 북한은 ‘핵 개발’을 해야겠다는 동기가 더 강화되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지만, 북한이 오늘날 저렇게 핵을 가지게 되기까지는 중국 책임도 꽤 크다는 겁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군사력이 세계 6위 수준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군사력이 강하다는 나라가 다 모여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힌 일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강 對 강으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지난 70여 년이 넘는 기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신기한 일이기도 합니다만, 이 시기가 평화의 공존이 아니라 ‘공포의 균형’이라는 사실은 참 서글퍼집니다.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한 미국은 물론이고 혈맹(血盟)이라 불리는 중국 역시 북이 핵을 가지게 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죠. 이어서 고유환 원장은 찬찬히, 쉽게 설명합니다.
 
고: 그런데 당시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요구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첫 번째, 1989년에 벌어진 6·4 천안문 사태, 그리고 두 번째,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 그리고 세 번째, 남순강화(南巡講話)라는 이유가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남순강화인데요, 덩샤오핑 당시 중국 최고 지도자가 고민 끝에 특별한 담화를 발표합니다. 해안지역의 개혁개방 된 지역을 둘러보고 개혁개방을 가속화하라, 라는 담화를 발표해요. 그게 1992년이거든요? 그렇게 개혁개방을 가속화하는 이유는 생산력을 빨리 끌어올리기 위해서 자본주의 국가를 활용하자는 겁니다. 소련이 망한 것도 생산력이 뒤져서 망한 거예요. 생산력 발전을 위해 중국이 가져갈 수 있는 가장 적정한 기술을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었어요. 미국-일본-한국, 이런 수직적인 노동분업 구조로 이뤄져 있었는데, 그 당시에 중국이 가져갈 수 있는 가장 적정한 수준은 대한민국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박정희식 개발모델을 덩샤오핑이 가져간 거예요. 사실상 중국의 개발모델이 어떻게 보면 박정희식 개발모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른바 ‘유치를 통한 개발촉진’, 우리가 마산, 창원 등 자유무역지대를 만들어서 외국 기업과 자본을 유치해서 수출 촉진 정책을 통해 초기 자본축적을 하고 경제발전의 종잣돈을 마련했던 것이거든요. 중국도 선부론(先富論)이라고 해서 해안지역을 먼저 개방해서 발전시킨 다음에 대륙으로 확산시키는데, 그 모델이 박정희식 개발모델인 것입니다.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초기에는 중국 관료들이나 학자들이 와서 많이 배우고 갔습니다.
 
아! 역사에 있어서 결정적인 몇 가지 장면들이 있다면 바로 덩샤오핑의 선부론과 그 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부론(先富論, Getting Rich First)은 1985년경부터 덩샤오핑이 주창한 개혁개방의 기본 원칙을 나타내는 것이라네요. “능력 있는 사람으로부터 먼저 부자가 되어라. 그리고 낙오된 사람을 도와라.”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고, 돈을 잘 벌면 된다는 실용적 생각이겠죠. 이 시기에 북한이 중국을 벤치마킹해서라도 북한식 선부론을 주창했으면 지금의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역사의 장면이죠. 고유환 원장은 어쩌면 역사의 결절점(結節點)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찬찬히 이야기하는 겁니다.
 
고: 연원적으로 보면, 중국의 1992년 한중수교 선택 이후에, 1995년부터 1998년까지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상당수가 굶어 죽었는데, 그때 중국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어요. 만약에 북한이 중국에 요청을 했더라면 굶어 죽지는 않았을 것인데, 그래서 나도 궁금해서 북한 관계자들에게 그 후에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이런 이야길 합디다. “우린 중국도 못 믿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중국에 대해 굉장히 많은 반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자기들의 쌀독이 빈 것을 알면 외부의 위협으로 바로 붕괴될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닫아걸고 안에서 굶어 죽은 거예요. 그것을 중국도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고, 북한도 굳이 도움을 구하지 않은 겁니다.

 이거 충격과 공포 아닌가요? 김일성 사후 북한 전역에 폭탄처럼 떨어진 리더 부재의 위기감! 그리고 대기근과 수해(水害)라는 생채기는 ‘고난의 행군’을 불러왔고, 정말 많은 인민이 굶어 죽어갔지만, 그들의 혈맹이라 불리는 중국에 손을 벌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무모하고 미련하지만, 북한 인민들에게는 이 시기를 극복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유를 이제 겨우 이해하게 됩니다. 북한은 정말 알면 알수록 도무지 모르겠네요. 어휴.
 
최 :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다시 여쭈어보겠습니다. 알려지기로는 ‘당근’과 ‘채찍’ 전략을 활용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10년이 흘렀으니, 김정은 정권은 안정화되었다고 볼 수 있나요?

고 : 그러니까 초기에는 젊은 지도자니까 이른바 내부 단속을 강화하면서 리더십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군 간부들에 대한 군기 잡기를 많이 했어요. 예를 들면 승진과 강등을 반복한다든가, 장성들에게 군기를 잡는다고 사격을 시킨다든가, 바다 수영을 시킨다든가. 이렇게 해서 ‘내가 가장 위협적인 세력인 군부를 확실히 틀어쥐고 있다’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장성택 처형이라든가 김정남 암살 같은 사례를 통해서 권력에 도전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었고, 반대로 철저하게 충성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에 따른 시혜를 베풀고, 공식적으로는 ‘인민대중 제일주의(애민)’ 정치이념을 표방해왔다고 할 수 있지요.

최 : 원래 사회주의 정치체제는 ‘당 중심’ 정치체제인데, 김정일 시대에는 비상사태이기 때문에 ‘선군정치’를 했지만, 이후 아들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 엘리트 집단 중 무력을 확보한 집단은 군(軍)일 수밖에 없기에 공포와 시혜를 적절히 분배해서 정권을 다잡았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럼 지금 김정은 정권의 이런 상태를 사회주의 정치가 정상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건가요?

고 : 김정일과 김정은을 비교해봐야 합니다. 김정일의 경우 1964년 대학을 졸업하고 당으로 들어가서 1967년부터 유일체제 구축에 적극적 역할을 했어요, 실질적으로 1974년 당 내부에서 후계자로 지명되고 나서는 ‘김일성-김정일 공동정권’을 운영했습니다. 그러니까 공식 직함과 관계없이 당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다고 본 거죠. 그런데 당시 김정일은 조선노동당이 무력화(無力化)되어 있다고 인식했던 것 같아요. ‘노인당’, ‘송장당’ 이런 표현을 써요. 당이 제 기능을 못 한다고 본 거에요. 사회주의권 붕괴, 김일성 사망 등 위기 시기니까 위기관리 체제로는 군을 앞세우는 것이 유리하다고 본 것이고, 그래서 ‘선군정치(先軍政治)’라는 것을 내세우고 ‘국방위원장 체제’로 이끌어간 거예요. 그러니까 당을 통하지 않는 직할통치를 한 거죠, 김정일 스스로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니까 굳이 당의 제도적 틀을 통하지 않고 자기 편한 대로 권력 실세들을 요소에 배치해 놓고 직할통치를 한 겁니다. 그래서 1980년 6차 당대회 이후 36년간 당대회를 열지 않은 거예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도 김일성 살아있는 동안에는 개최하다가 이후에는 열리지 않은 것이고, 그런 식으로 군을 내세웠는데, 이게 위기관리를 위한 과도 체제로는 유리해요. 한국도 갑작스러운 지도자 유고가 있을 때는 비상계엄 체제로 들어가잖아요? 그런데 비상계엄을 끝도 없이 계속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김정은으로 후계 구도가 잡히고 나서는 당의 기능을 점차 회복시킨 거예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김정은이 집권하고 나서는 군부의 과대 성장이 후계체제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그것을 막기 위해서 당의 기능을 정상화하고 당-국가 시스템을 회복하고,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소위 말하는 ‘정상국가’ 체제로 전환시켜 놓은 것이죠.

 최 : 북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계속 ‘김정일 애국주의’니 ‘백두의 혁명정신’이니 ‘우리국가 제일주의’니 하는 ‘통치 담론’을 계속 선포하는데요, 북에서의 통치 담론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고 : 사회주의 국가는 기본적으로 정치와 사상의 선도적 역할을 강조해요, 체제를 움직이는 데 있어서 정치와 사상이 선도적으로 끌고 간다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당이 영도한다고, 지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통치 이데올로기가 필요한 거죠. 그래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북한의 실정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한 주체사상’이라는 것이 등장합니다. 후계를 구축할 때 이 주체사상을 김정일 시대는 ‘주체사상의 김일성주의화’, 아버지 이름으로 ‘~주의’로 만든 것이죠. 그러다가 자신의 권력이 공고화되면 다시 ‘주체사상’으로, 보통명사화 되는 겁니다. 이번에도 보면 김정은 시대가 도래하면서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의 이름으로 ‘~주의화’하지요. 김일성-김정일 혁명사상을 ‘김일성-김정일주의’라고 규정하고 당의 ‘최고 강령’으로 명문화했어요, 그래서 결국 김일성 주체사상과 김정일 선군사상 등 두 사람의 혁명사상을 묶어서 ‘김일성-김정일주의’, 마치 ‘마르크스-레닌주의’ 같은 격으로 만들어 순수 이데올로기화 하고, 자기 시대를 끌고 가는 실천 담론(실천 이데올로기)을 만들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 이름을 붙여 ‘김정일 애국주의’라는 말을 썼었는데, 초기에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권위를 자기 쪽으로 이어가기 위해서 썼는데 그게 유리하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이후에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인민대중 제일주의 정치이념이라고 정식화하고, 그 다음에 실천 담론으로 ‘우리국가 제일주의’라는 것을 만들었어요. 그것은 ‘김정일 애국주의’에 근거해서 우리국가 제일주의라고 하고, 지금은 ‘우리국가 제일주의시대’라고까지 표현을 해요. 새 시대라고도 하고, 자존와 번영의 새 시대라고 하면서 우리국가 제일주의시대를 김정은 시대 통치슬로건으로 제시했습니다. 이것이 나온 배경은 2017년 11월에 화성 15형 발사 성공과 함께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자신들의 전략적 지위가 높아졌다, 그래서 스스로 ‘전략국가’라고 칭하고 ‘우리국가 제일주의’라는 통치 담론을 내놓은 거예요.

이야기를 따라가려니 숨이 찹니다. 북한도 하나의 국가이기 때문에 그 나름의 시스템과 질서가 있겠지요, 그런데 마치 정교하게 맞물리며 돌아가는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통치 담론을 만들어내고 이를 수용하도록 엘리트부터 인민대중까지 ‘기획’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효율성도 생각해야 하고 기능성도 생각해야 하는 고도의 심리적 게임이라는 생각까지 드는데요, 다른 측면에서는 우리 대한민국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고유환 원장은 놀라운 이야기를 합니다.
 
고: 이것은 핵무력 완성과 관련이 있어요. 그래서 내부 주민들에게 외부로부터 오는 침략을 막아낼 수 있는 핵 국가가 되었다는 자긍심을 심어주고 대외적으로도 핵 국가로서의 영향력을 과시하면서 이제는 우리 국가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국가가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국가 제일주의’라는 말을 쓰게 된 거죠. ‘우리국가 제일주의’라는 담론 속에는 과거에 민족담론에서 국가담론으로 넘어오게 된 영향도 있어요. 김일성 시대에는 ‘전민족대단결’을 강조했고, 김정일 시대는 ‘우리민족 제일주의’라고 했거든요, 혁명과 건설의 기본단위를 나라와 민족이라고 하고 우리민족을 하나의 단위로 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남북경협도 하고 교류협력도 하자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인데, 김정은 시대에 와서는 ‘우리국가 제일주의’라고 해서 사실상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를 전제로 하고, 그리고 민족단위의 협력보다는 국가 중심적인 통치담론을 내놓고 국가전략을 짜겠다는 거예요. 이건 완전히 달라진 것이라고 봐야 해요. 그 이야기는 지금도 언론에 나온 것 중에 북한이 금강산 남측 관광시설을 철거한다고 하죠? 김정은 위원장이 “너절한 남조선 시설 없애라”라고 이야기했는데, 그건 앞으로 협력하지 않겠다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2020년 6월 개성공단에 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폭파하고 대남 관계를 대적관계로 전환하겠다 했는데, 이제는 남북관계를 민족의 울타리로 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완전히 버릴 수는 없지만, 생각하는 단위가 달라졌어요, 이것이 제가 생각할 때 김정은 시대에 가장 달라진 모습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혁명의 내적 동력을 강화하는 사상’, 북한이 요새 ‘주체적 힘’ 그리고 ‘내적동력’ 그러면서 이를 통한 ‘자력갱생’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김정은 시대의 발전 전략은 ‘자력갱생’입니다. 우리국가 제일주의라는 틀 속에서 자력갱생해서 쌀독을 채워놓고 미국과 장기전에 대비하겠다는 전략 구도가 그렇게 짜였어요.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팩트체크입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의 민족담론에서 김정은 시대에 국가담론으로 넘어왔다는 것은 과거에 대한 ‘독립선언’이라고 판단이 되는 겁니다. 화성 15형 발사를 통해 ‘핵 무력’을 완성시켰다,라고 선언하고 국제적으로는 민족이 아닌 국가를 내세워 남한과의 공통분모를 모두 끊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대남 관계의 적대성을 키운다는 것, 그것을 통치 담론을 변형시켜 결국 ‘자력갱생’을 목표로 한다, 라고 해석이 되는 거죠. 그런 전략 구도를 완성 시켰다면 남과 북의 관계 설정은 이제 전혀 다른 차원으로 접어들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어? 하는 궁금증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은 남한을 적화할 생각을 포기한 것일까요? 어쩌면 가장 궁금할 수 있는 질문을 던졌지요.
 
최 : 이렇게 되면 민족 우선이 아닌 국가 우선으로 전략이 바뀌게 되는데, 작년에 개정된 당규약을 보면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과업수행”을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 발전 실현”으로 바꿨고, 그래서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북한이 대남적화통일 노선을 포기한 것 아니냐?”라는 이야기와 “아니다, 이름만 바꿨을 뿐이다!”라는 논란이 많았습니다, 북이 남한과의 관계 설정에서 민족의 울타리를 벗어났다, 라고 한다면 굳이 다른 나라인 남한에 혁명을 꾀할 필요가 없겠는데요?

고 : 북한 정권의 존립 근거가 원래 남조선 해방이죠? 분단국이니까. 그래서 여러 가지 혁명 전략 중에 직접적으로 전쟁을 통한 적화도 있을 수 있고, 남조선 내에 지하 혁명당을 건설해서 친북연공 정권을 만들어서 통일하는 전략이 있을 수 있죠. 그 다음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니까 ‘민족해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민족해방이라는 것은 여기 남한이 미제의 신 식민지라고 보니까 미군을 몰아내고 해방 시켜서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겠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고 인민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 규정이 있는 동안에는 남북 간 어떤 협력을 하더라도 북한의 의도는 남조선을 혁명시키거나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까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우리가 새로 당대회를 열면 그것을 고치겠다,라고 공개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에게 이야기했어요. 그런 관점에서 고치기는 했는데, 실제로 내용을 보면 자주성 실현이다, 또는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인민민주주의라는 것이기 때문에 ‘남조선해방론’과 ‘조국통일론’의 내용은 깔고 있는 것이죠. 우리도 헌법에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규정하는 것처럼, 분단된 나라에서의 통일은 각각의 체제 정당화의 근거로 삼는 것이죠. 용어가 바뀌었다고 해서 그 목표가 없어졌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자의적 해석입니다, 다만 의도와 능력은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적화할) 능력이 안되니까, 또 지금 북한은 자기 체제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핵’을 갖고 공존하자! 그런 논리에 우선 자기 국가라는 울타리만 쌓아놓고 버텨보자! 이런 이야기죠.

민족 우선과 국가 우선이라는 것은 어감부터 다른데요, 조금은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지금도 서로 동질성 문제 때문에 고민이 큰데 아예 시스템으로 이렇게 남과 북을 ‘국가 對 국가모델’로 만든다는 것은 그만큼 통일에 대한 거리가 더 멀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어쩌면 김정은 정권이 크게 고민했던 지점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미 남과 북은 혈육으로 이어진 공감대는 크게 낮아진 상태이고, 더 나아가 일각에서는 통일 그 자체에 대한 의구심까지 가지고 있으니까요, 북이라고 다를까 싶습니다.
 
최 : 이제는 새 정부에 대한 조언을 해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일단 윤석열 정부에서는 문재인 정부와는 차별화해서 갈 것 같은데, 원장님께서는 앞으로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고 : 일단은 선거 과정의 공약이나 캠페인 과정에서 나온 내용을 보면 현 정부 대북정책에 대해서 여러 가지 지적을 한 것은 사실이죠. 예를 들면 ‘북한 우선론’이라든가 ‘상호주의적이지 못하다’ 라는 이야기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역대 여러 진보 보수정권을 거치면서 대북관여 정책을 해봤고, 대북강압 정책을 해봤잖아요? 하지만 지난 30여 년 동안에 ‘북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남북 관계도 제도화하지 못했어요, 문재인 정부에서는 평화 우선의 한반도 정책을 통해서 북한이 원하는 평화체제 구축과 우리가 원하는 완전한 비핵화를 교환하는 프로세스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라는 이름으로 시도했습니다.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 북미 간에도 두 차례 정상회담, 판문점 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 또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까지 했지만, 결국은 하노이 노딜이 되면서 그간의 노력이 무산될 위기에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아예 소득이 없었느냐? 그건 또 아녜요, 큰 틀의 원칙과 방향은 잡아놨어요. 북한의 비핵화라든가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된 원칙과 방향은 잡아놨다는 이야기예요.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도 트럼프 합의를 계승하겠다고 했단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새 정부도 기존의 그런 틀을 완전히 무시하고 새롭게 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관성이라는 부분에서. 미국도 이전 합의를 존중하면서 가자고 했고, 실제로 그 합의라는 것은 원칙과 방향을 잡아놓은 것이지 실질적인 이행 로드맵은 못 만들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새 정부가 원칙과 일관성을 이야기 한 것 같고요,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로 비핵화가 진전되는 데에 따라 제재를 풀어야 하지 그냥 제재를 풀 수는 없다, 그리고 먼저 로드맵을 만들고 그것에 따라 상응 조치를 하되 상호주의로 접근하겠다, 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그간의 노력들이 다 허물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갈 것인가에 대한 협의를 이루지 못했을 뿐이지 대략적인 큰 틀의 원칙과 방향을 잡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과 북의 관계는 쉽지는 않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어디에서든 협상가(Negotiator)는 반드시 유능해야 하는 겁니다. 고유환 원장이 계속 설명합니다.
 
고 : 아마도 (커다란 틀에 따른) 전략적 접근에 있어서 개별적인 전략은 달라질 수 있겠죠. 그러나 비핵화를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비핵화를 하려면 북한이 요구하는 평화 체제에 관련되는 부분도 어느 정도 정리를 해야 하고, 결국은 흔히 말하는 시퀀스(Sequence), 수순을 어떻게 짜느냐, 과거에는 동시행동, 단계별 일괄타결, 쌍중단(雙中斷,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군사훈련 동시 중단), 쌍궤병행(雙軌竝行,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한과의 평화협정 동시 추진)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어떤 수순으로 교환하느냐에 합의하지 못했어요. 새 정부의 기본적인 원칙은 先비핵화에 가까워요. 검증가능한 비핵화가 추진될 때까지는 제재도 풀 수 없고, 종전선언도 할 수 없고, 그러나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와 관련해서 ‘긍정’까지 할 수 있다는 자세를 보이면 그 수순(Sequence)에 맞춰서 제재를 일부 완화할 수 있고, 종전선언은 따로 하지 않고, 그 진전에 따라 바로 ‘평화협정’을 맺겠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문재인 정부에서는 ‘종전선언’을 ‘입구론’으로 들고 나갔는데, 입구론에서는 감당할 수 없다, 먼저 선언하고 뒤에 미군 철수 문제라든가 여러 가지 전략적 변화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등을 우려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새 정부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한다는 전제 아래 비핵화 이행 로드맵에 따라서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다, 제재를 풀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거든요, 문제는 그 주장은 과거 보수 정부에서도 완전하고 검증이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ing), CVID 방식으로 핵폐기를 하려고 했던 거예요, 그런데 그런 것이 사실상 실패했단 말이죠, 핵 능력 고도화를 막지 못하고 지금 같은 상태를 만들어냈으니까요,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비핵-평화 교환 프로세스는 쉽지 않은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고, 과제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새 정부는 비핵화를 이루기 전까지는 결국 한미동맹을 강화해서 이른바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로 균형을 잡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독자 핵 개발은 우리의 부담이 워낙 크니까 확장억제 방식으로 균형을 잡는 방식으로 이해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새 정부가 북한과 새로운 관계 설정을 하고, 문제를 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라고 예상이 됩니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 라인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지점입니다. 이미 만든 길을 미국도 가겠다고 하는 것이고 북한도 끈을 놓지는 않았어요, 물론 과거보다 더 뻣뻣할 수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 고려할 요소는 많지만 중요한 것은 원칙과 방향은 합의했다는 겁니다. 그나마 긍정적인 요소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유환 원장은 과거를 다시 톺아주었습니다.
 
고: 선거 과정에서는 지지층을 굳히고 집권하기 위한 캠페인성 발언을 하기 때문에 집권해서는 달라질 겁니다. 그런 차원에서 저는 과거를 ’리뷰‘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제를 해결할 타이밍을 여러 차례 놓쳤기 때문에 그동안의 북핵 협상을 되돌아보며 찬찬히 리뷰를 해보라는 겁니다. 현재는 북한이 핵 능력을 고도화해서 무시하지 못할 정도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핵 능력의 객관적 실태를 파악해야 해요. 실험을 통해서 보여준 능력을 보면 사실상 핵 국가이거든요, 그리고 보유한 핵무기 숫자도 60기~100기까지 된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북한이 3대를 이어 고난의 행군까지 거치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우선 하면서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쉽게 버리겠는가? 저는 핵 무력 완성 이후 북한이 ’부분동결-부분인정‘론을 펼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외로 2018년 3월 남측 특사단에게 ’완전한 비핵화‘를 하겠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그 내용은 조건이 붙어 있는 겁니다.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정보장이 이루어진다면 굳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 되돌아본다면 사실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데 실패했다고 봐요, 이 조건을 서로 교환하는 프로세스인데, 우리는 완전한 비핵화만 강조하고 북한이 앞에서 요구했던 조건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안 썼다는 것이지요. 뒤늦게 비핵-평화 교환 프로세스를 가동하기 위해 종전선언을 입구로 들고 나갔지만 이미 때를 놓친 것이지요. 앞으로도 비핵-평화 교환 프로세스의 조건, 순서, 시기를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새 정부의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2년 한중수교 모델을 북미관계에 적용하는 발상의 전환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북한 핵을 인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최 : 사실 그런 것들이 서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신뢰가 되지 않으니까.

 고 : 그러니까 그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때 서로 신뢰를 쌓기 위해서 우선 쌍중단하자, 군사적 위협 해소와 관련해서 미국이 한미 군사연습을 잠정 중단하겠다,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겠다, ICBM 발사를 하지 않겠다는 등 양 정상들 간의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했던 것은 사실이거든요. 그러다가 이제 미국은 미국대로 내부적인 국내 정치가 발목을 잡았지요. 코언 청문회라든가 뮬러 특검, 그리고 재선을 의식한 트럼프가 “잘못된 거래보다는 노딜이 낫다”라는 생각으로 ’노딜‘을 선택하여 어려워졌지만, 사실 코로나라는 변수가 없었으면 뭔가 결실이 있었을 거예요. 코로나가 생기면서 그 이후로 모든 이슈를 코로나가 잠식하고, 미중 간의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고, 그러면서 지금까지 흘러왔던 것이거든요, 톱다운 방식이 실패하게 된 것은 각각의 나라들의 국내 정치구조가 작동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제는 바이든 행정부도 톱다운으로 하지 않겠다고 했고, 지금 우리 새 정부도 아마 리뷰를 해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텐데, 그래서 저는 자체적인 리뷰를 해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런데 지금 봐서는 ’확장억제‘를 통해 그냥 기다리는 정책으로 갈 가능성도 있거든요? 제재를 유지하면서 기다리는 거죠, 그러면 이제 북한이 굴복하거나 아니면 협상에 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논리가 성립될 수 있는데, 그렇게 된다면 윤석열 정부 집권 초기에는 아마 쉽게 풀리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봅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정책 재검토를 끝내고 북한에게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하고, 한국 새 정부 출범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국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 따라 싱가포르 북미합의에 기초하여 대북 관여정책을 지속할 수도 있고, 아니면 트럼프 행정부 초기에 추진했던 ’최대의 압박(Maximum Pressure)‘으로 회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최 : 참 답답하네요, 어쨌든 한국 사람들은 북한에 핵이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지만, 이런 리스크가 있으니까 주가도 잘 안 오르고, 일반 시민들은 직접적으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런 (전쟁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조금씩 알고 있지만, 선거 때 이렇게 확 불거지고 하니까 더 답답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사실 일반 대한민국 시민이 평소에 살면서 북한의 미사일에 대해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면서 살까요? 그저 기사 한 줄 보면서, TV에서 두고두고 우려먹는 화성 15호 ICBM 날아가는 것 보면서 “어? 또 쐈네?”정도로 그치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주가가 오르지 않는 것에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근원적인 한반도 리스크에 대해 생각하기란 쉽지 않죠. 바쁜 하루의 일상을 보내야 하는 소시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유환 원장은 역발상으로 상황을 정리해줍니다.
 
고 : 그런데 역설적인 장면도 있어요, 대한민국은 지금 그런 위기 속에서도 선도국가(중핵국가)가 되었죠, 새 정부는 글로벌 중핵국가라고 하는데, 표현은 달라도 일단 핵심국가로 지금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 많은 소모적인 군사비를 쓰고 남북 사이의 대치 국면을 유지하면서도 성장해왔고, 나름대로 위기관리를 잘 해왔어요, 갈등적인 요소가 오히려 발전의 동력으로, 체제 경쟁이라는 요소가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거든요,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북이) 우리 남쪽을 향해서 채찍질하니 남이 북으로 향하지 않고 세계로 나가서 이렇게 발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우리는 이제 한강의 기적을 대동강의 기적으로 확산시켜서 같이 잘 살자고 하는데, 북은 손을 안 잡아 주거든요? 핵을 가졌으니까. 문제는 북한이 핵 국가가 된 것, 얼마 안 되거든요, 이제 문제가 달라졌지요.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핵을 가진 북한과 공존하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새 정부가 풀어야 할 큰 숙제입니다.

최 : 아무리 그래도 그건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요?

 고 : 그러니까 그걸 이제는 어떻게 풀어나가느냐, 비핵화시켜서 해결하느냐, 공포의 균형을 잡아서 해결하느냐, 그렇지만 핵이라는 것은 여차하면 공멸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왔던 이 성과를 한꺼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요인이니, 다음 새 정부가 진짜 중심을 잡아야 해요, 이제는 방법이 없는, 뭔가 결단을 해서 해결을 해야 하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핵을 가진 북한과 공존을 하느냐, 아니면 사생결단을 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으로 가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새 정부가 서 있습니다. 다음 정부가 이전까지 했던 것을 리뷰해서 바이든 행정부와 잘 협의하고, 싱가포르 이후 하노이 노딜로 가기 전까지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서 딜을 한 번 하는 것, 비핵-평화 교환 프로세스를 작동시키는 것이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봐요, 이전에 했던 것을 리뷰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어찌 되었든 전쟁이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은 한반도에 사는 사람이라면 다들 수긍할 것입니다. 새 정부는 이전의 모든 정부가 걸어왔던 경로를 잘 탐색하고(review) 하노이 노딜 전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고유환 원장의 생각입니다. 고유환 원장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경로의존성(經路依存性, Path dependency)에 빠져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 번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그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성 말입니다. 하노이 노딜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새 길을 개척하라는 말로도 들리네요.
 
최 : 저는 원장님께서 지금 하신 말씀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강의 기적‘과 ’대동강의 기적‘이 함께 가야 된다, 라는 말씀입니다. 이 인터뷰의 원래 의도는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수립된 지 10년이 되었고 또 대한민국에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서는 상황에서 10년 평가와 새로운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하려고 했는데요, 이미 다 하신 것 같아요, 남북관계의 수십 년 동안 정말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공부하시고 종사하신 분으로서 말씀을 좀 해주시면 잘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 : 지난 연말에 미국에 가서 미국 학자들과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제가 개인적으로 한 말이 있어요, “제가 1994년에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교수가 되었는데, 그때 제네바 합의가 이뤄졌다, 그런데 이제 올해 8월이면 제가 정년인데 북핵 문제가 30년 동안에, 그렇게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핵) 고도화를 막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렀다”라고 말이죠.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북한과 만든 합의는 그 예외없이 사문화되었어요, 어떤 이유로든 사문화되었고, 통일도 사실상 점점 멀어지고, 그래서 그동안 우리가 했던 노력을 근원적으로 반성해봐야 한다, 어디서 문제가 있는지 근원적으로 성찰해야 하고. 그런데 우리는 5년 단위로 정권이 바뀌거든요, 그러면 대부분 정권이 바뀌면 전임 정권을 부정하고 차별화 하거든요, 그러면서 시간을 다 보내는 경우가 많았어요, 또 우리는 잘하는데, 미국이 또 정권교체가 됩니다. 거기다가 우리 주변에 중국이라는 변수가 있으니까, 미중 간의 전략 구도 아래 우리가 하위 구도로 들어가는 문제 등등, 이 복잡한 것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니까 지금까지 이렇게 되어왔겠죠, 그런데 지금은 그 복잡한 변수들을 오히려 단순화해서 집중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복잡한 변수들을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정세가 만만치 않거든요, 뭐, 한두 가지가 아니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외교 쪽은 초당적으로 가능한 모든 국가 역량을 동원해서 세계 전략을 짜야 하고, 또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봐요, 그런 측면에서 우리도 국책 연구기관이니까 그런 부분에서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제 지인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북미 수교 문제는 3, 4차원의 방정식 문제가 아니라 30차 40차 고차원 방정식 문제라고 이야긴 하곤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풀리지 않는 문제가 30년이나 되었으니까요, 남북의 문제 × 북미 수교문제 + 미중 패권경쟁만 해도 복잡한데 여기에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과 한반도 개입 문제, 중국의 동북공정까지 얽히고설켜 있는 겁니다. 한반도 문제에 발언권이 있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국과 각 잡고 대립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나비 한 마리가 바람을 일으켰더니 한반도에 태풍이 몰아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까지 됩니다. 아이고 두야~
 
최 : 이런 전반적인 상황이 잘 되었으면 좋겠는데, 옆에서 보면 좀 답답하기도 하고요

 고 : 아! 그 중에 제가 한 가지 빠뜨린 것이 있는데, 미국 가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모든 것은 북한에 문제가 있다.” 이렇게들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우리가 아까 이야기했던 유일체제, 수령체제는 위기로 먹고사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계속 위기 조성을 하고, 또 그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핵·미사일이 없어도 지킬 수 있는 체제가 되어야 하는데, 핵·미사일이 없으면 지킬 수 없는 체제라고 생각을 하니까 답답한 것입니다. 그런 북한을 다루는 외부 세계에도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잘 읽지 못하거나, 오독(誤讀)을 하거나, 무시하거나 이런 것들이 있어요, 그래서 적어도 우리는 다른 외부적인 변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북한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핵심을 찾아서 북한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그런 전략을 펼쳐야겠죠.
 
고유환 원장은 수십 년 동안 동국대학교 북한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 한반도가 또다시 전쟁의 포화에 휩싸이지 않을 것인가를 진지하게 연구한 학자입니다. 학자의 눈에 비친 외부의 눈은 북에 대한 오독과 무시,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후배들에게는 마치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말처럼 이해됩니다.
 
최 : 사실 전 세계에서 북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우리 대한민국 국정원을 비롯해서 이쪽이잖습니까?

 고 :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맨날 세계 석학을 돈 많이 주고 불러왔죠. 그런 행사를 엄청 많이 하는 것을 내가 봤는데, 그런데 지금 이루어진 게 뭐가 있느냐? 제가 ’자아준거적(自我準據的)‘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해야 되는데 자꾸 남의 생각을 빌려다가 뭔가 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석학이 우리나라 문제에도 석학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무슨 행사에 돈 많이 주고, 행사비 많이 쓰고, 그렇게 30년 동안 했으면 뭔가 진전된 게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진전된 것은 하나도 없거든요.

최 : 저는 오히려 제가 교수님 제자로서 북한학 수업 시간에 나왔던 이야기들이 훨씬 더 생산적이라는 생각이 솔직히 듭니다.

 고 : 그래서 미국 가서도 제가 그 이야기를 했어요, 당신들 반성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지난 30년간 뭐 했냐? 어쨌든 유일 패권 국가인 미국이 먹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작은 나라 문제도 해결을 못 했는데, 반성은 해야 할 것 아니냐? 사실 미국도 대중국 전략으로 북한을 활용하려고 하거나, 그런 것들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해결할 수있는 기회를 몇 차례 놓친 것도 그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답답한 것입니다.

 답답한 미국인들을 상대로 퇴임해야 하는 학자의 일갈, 후배들 정신이 번쩍 나는 죽비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 최고의 패권국가라 자부하면서 도대체 한 일이 뭐냐? 도대체 한국사람 당신의 생각은 어디에 두고 허울 좋은 석학이라는 데에 정신이 팔려서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느냐? 라는 것이죠. '자아준거적'이라는 표현에서는 솔직히 충격받았습니다. 골똘히 생각해 보면 과연 한반도의 통일을 바라는 나라와 그런 사람들이 어디에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반도의 위기가 지속되어야 이윤을 챙길 수 있는 무기상들, 분단체제에 이미 익숙해진 화법으로 기득권을 누리는 이들, 정상이 아닌데도 정상이라고 우기는 사람들, 이들은 비단 남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 일본에도 있다는 것을 학자의 한 마디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최 : 감사합니다. 지금 세계 정국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아주 쉽게 북한의 김정은 정권 10년 평가, 그리고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전망까지 잘 정리해주셨습니다. 잘 정리하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인사를 드리고 통일연구원을 나오니 빗줄기는 조금 가늘어졌습니다. 스승님의 말씀을 곱씹다 보니 모르는 것이 더 많아졌습니다. 현실은 갑갑한데 그래도 스승의 말씀을 들은 제자의 마음은 조금은 따뜻해지네요. 그래! 복잡한 것은 단순하게 생각하자!

 비가 그치면 저기 어디메쯤 무지개가 떠오르지 않을까, 기대하며 문을 나섰습니다.

최요한 시사평론가 0192507458@hanmail.net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