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오마카세, 도쿄는 쭈꾸미 [쿠키칼럼]

한일, 일상에서 만나는 친숙함 정치 문제 해결에 도움 됐으면

기사승인 2022-11-15 09: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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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칼럼 - 김동운]

“일본에서 사는 것은 어떻습니까?”

 회사에서나 사적으로나 처음 만나는 일본인과 이야기하다 보면 반드시 나오는 질문이다. 그럼 항상 “살기 좋아요 다들 친절하시고…”라고 말끝을 흐리며 대답하곤 한다. 이런 질문을 받을때마다 일본에 대한 칭찬을 듣고 싶은 속마음이 읽힌다.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일본에 처음 왔을 때는 거의 모든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특히 고속도로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통행료지불시스템(ETC)은 눈이 휘둥그레질 지경이었다. 이제 한국은 하이패스보다 더 진보한 스마트 톨링 시스템을 도입 예정이지만 당시는 종이 통행권을 뽑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일본 고속도로의 ETC는 예전 그대로, 여전히 플라스틱 게이트바가 열리기를 기다려야 한다. 일상에서 접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친절하다.

 한국과 일본에 한발씩 걸치고 살고 있는 나는 매년 두 나라 사이에 편견과 갈등이 쌓여가는 안타까운 장면이 늘어나는 걸 본다. 특이한 광경 몇가지를 소개해본다.

 
일본발 밈(meme 짤방)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일본에서 아침 시간이나 점심 시간 대에 TV를 켜면 사회자와 몇명의 출연자가 등장해 의견을 주고 받는 와이드쇼를 볼 수 있다.

뉴스도 아니고 예능도 아니며 그렇다고 시사 방송도 아닌 희한한 형태의 이 와이드쇼라는 방송을 처음 봤을 때는 굉장히 놀랐다. 코미디언이나 인기 방송인부터 대학교수, 변호사 등등이 나와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넘어서는 문제도 거리낌없이 언급하며 무책임한 발언을 서슴치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코멘테이터라고 하는 독특한 역할의 출연자들은 어떤 주제에도 거리낌없이 말한다.


서울은 오마카세, 도쿄는 쭈꾸미 [쿠키칼럼]
일본 극우 논객 다케다 쓰네야스(竹田恒泰)씨가 와이드쇼 방송에서 한국으로 맥주 수출을 막자고 말하는 장면. 인터넷 갈무리


‘한국에 일본 맥주 수출을 중단하면 큰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해서 크게 화제가 됐던 장면도 와이드쇼에서 어느 코멘테이터가 한 발언이었다. 일본은 굉장하다는 식의 실소 나오는 이른바 국뽕 발언들도 대부분 이런 와이드쇼가 출처다.

와이드쇼는 말 잘하는 유명인을 스튜디오로 데려와 방송하는 수준 낮은 방송이다. 일본 내에서도 부적절한 발언 때문에 자주 구설수에 오른다. 와이드쇼에서 나오는 이런 코멘트들은 당연히 일본 사회를 대표하는 의견도 아니고 그저 한 개인의 무책임한 방송용 발언에 불과하다. 이런 코멘트들을 아무런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은 적어도 내 주위에서는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인터넷 커뮤니티 또는 유튜브에서는 이러한 질 낮은 코멘트들로 만들어진 밈(meme·짤방)이나 한국어 자막까지 입혀진 영상 형태로 널리 공유돼 마치 일본의 주류 의견인 듯 받아들이는 경우를 많이 목격 한다. 두 나라 사이에 왜곡된 편견이 확대재생산되는 데에 일조하고 있는 무책임한 방송들이 무척 원망스럽다.

 내게 일본에서 살기 어떠냐고 물어봤던 일본인들이, 이런 왜곡된 인식이 한국에서 커지는 과정을 알게 되면 무척 섭섭하진 않을까?

 
한일 관계는 정말 최악일까?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대형쇼핑몰과 시내에서 일본 음식을 취급하는 식당을 예전보다 훨씬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돈카츠나 초밥은 기본이고 샤브샤브, 라멘, 일식 창작요리까지 다양한 일본 요리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예전 같으면 왜색 짙은 단어라며 질타 받았을 법한 오마카세(お任せ)라는 말도 할매카세, 이모카세 같은 파생어를 낳을 정도로 거부감 없이 쓰이고 있었다. 곳곳에 있는 이자카야들까지 어쩌면 먹거리에 관한 한 지금 한국에선 일류(日流)가 조용히 확산되고 있는 듯 보였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한국음식과 한국 대중문화는 이제 붐이라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확실히 정착된 느낌이다. 매스컴에서는 한일관계를 ‘파탄난’‘사상 최악의’라는 표현으로 수식하지만, 일본 어느 지역을 가도 한국 식품들이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한국식 치킨은 코리아타운 밖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다. 일본의 10대 20대들은 도쿄 한복판에서 bts와 아이브의 노래를 들으며 한국식 매운 쭈꾸미 요리를 먹는다.

전통적인 매스미디어가 정보를 독점하고 상황을 규정 짓던 시대는 지났다. 소셜미디어나 동영상 플랫폼들을 통해 서로의 문화와 일상을 언제든지 접할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도 이런 소셜미디어의 영향이 날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역사와 정치에서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숙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서로의 좋은 문화만을 취사선택하여 소비하고 즐기고 있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나로서도 알수 없다.

언젠가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정치와 역사 문제를 해결할 결정적인 순간이 올 것이다. 그 때에 일상 속에서 이뤄진 두 나라 사이의 긍정적인 경험과 교류가 좋은 영향을 끼쳐주길 나는 기대한다.

서울은 오마카세, 도쿄는 쭈꾸미 [쿠키칼럼]
일본 열도 끝에 선 필자

김동운

1978년 서울출생.  일본계 모터싸이클 회사의 한국지점 입사를 계기로
2008년 일본으로 넘어와 글로벌 IT기업의 마케팅부서에서 근무하며 한일 양국에 한 발씩 걸친 경계인으로 살고 있다. 현재거주지는 시노노메(東雲). 김동운은 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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