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과 불신 때문에… ‘파국’ 치닫는 고양시 의회정치

회기 종료 열흘 남았는데 본회의 개최 여부조차 ‘불투명’

입력 2022-12-05 10:43:00
- + 인쇄
불통과 불신 때문에… ‘파국’ 치닫는 고양시 의회정치

제9대 고양시의회가 개원 4개월 만에 파국을 맞았다. 당과 당, 의원과 의장 간 불협화음이 커지며 시 의회정치가 멈춰섰다. 의정활동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시정에까지 악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당장 고양시의회는 지난달 25일 제268회 제2차 정례회를 열어 고양시가 ‘강도 높은 혁신’이라고 자평하는 내년도 예산안과 조직개편안을 오는 15일까지 심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본회의는 개회와 함께 정회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원 17명 전원이 불참했기 때문이다.

이후 5일 현재까지 민주당 의원들의 등원거부는 계속되고, 본회의장의 문은 열리지 않고 있다. 그 와중에 의원들이 직접 선출한 김영식 의장에 대한 ‘불신임안’ 상정 예고까지 이뤄졌다. 문제는 사태가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란 점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등원거부를 지속하며 의장 불신임안도 반드시 상정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반면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당 대 당으로 대응할 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며 관망만 하고 있다.

의장 역시 원활한 의사진행을 위해 중재 역할을 해야 하지만 ‘불신임’의 당사자가 되면서 민주당 의원들을 본회의장으로 이끌지 못하고 있다. 내년 시정운영과 조직개편을 위해 의회의 협조를 얻어야 할 이동환 시장의 집행부 또한 시정 현안 해결에만 몰두하는 중이다.

불통과 불신 때문에… ‘파국’ 치닫는 고양시 의회정치
고양시의회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달 22일 이상동 비서실장의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공문을 김영식 고양시의회 의장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공문이 시장실에 전달되지 않자 28일 재차 공문을 보냈고, 같은 날 고양시는 본회의 중 비서실장의 공식사과는 적절치 않다는 사실상 거부의사를 나타냈다. 일련의 과정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김 의장에 불신임안 상정을 예고하는 통보문도 보냈다. 

◇ “이동환 시장 해외출장은 단초일 뿐 터질 게 터졌다”

열흘째 이어지고 있는 시의회 파행의 시발점은 이 시장이 11일 일정으로 떠난 해외출장이다. 이 시장이 출발한 지난달 4일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이태원 참사’ 국가애도기간 중 관광성 시찰에 가까운 해외출장에 나서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규탄성명’을 발표했다.

그런데 그날 문제가 발생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시청 정문에서 규탄집회를 하는 중 이 시장의 일정 등을 총괄하는 이상동 비서실장이 의원들에게 집회 철회를 종용하며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대표인 김미수 의원은 “시민들 성명발표 할 때도 집행부가 빈정거리며 이래라 저래라는 하면 안된다”면서 이 실장의 당시 행동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이어 “사태가 (파행으로까지) 이렇게 커질 게 아니었다. 당초 의장이 의원들 의견을 들어 비서실장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실장이든 시장이 직접 와서 사과하면 해결될 문제였다. 그런데 의장이 ‘5급 공무원을 본회의장에 결코 들일 수 없다’는 신념을 내세워 중간에서 막으니 일이 복합해진 것”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나아가 김 의원은 “상황이 이런데도 의장과 시장은 나란히 일본출장을 떠났다”면서 “의장은 너무 야당 생활을 많이 해서 본인이 야당이라고 생각하고, 시장도 야인생활을 너무 오래 해 책임지고 뭘 끌고 가는데 아직 미숙한 것 같다. 그런데 주변에 ‘이러면 안 된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젠 불신임안이든 등원거부든 끝까지 가겠다”고 말했다.

불통과 불신 때문에… ‘파국’ 치닫는 고양시 의회정치
고양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지난달 4일 이동환 시장의 해외출장에 대한 규탄성명과 항의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시장실을 방문했다. 

◇ 김영식 의장‧국힘, “시민 위해야 할 정치인으로 부끄러운 일”

반면 시의회 파국사태를 두고 김영식 의장이나 이철조 국민의힘 대표의원은 민주당과 생각이 달랐다. 민주당의 행태가 과했다는 입장이다. 5급 별정직 공무원인 비서실장의 언행에 일일이 반응해 본회의로까지 감정을 이입해 파행으로 이끌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김 의장은 “정치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까지 평했다.

그는 “의원은 시민을 대표해서 시정을 견제하고 심의하는 이들”이라며 “108만 고양시민이 지켜보는 정기회인데 안건을 면밀히 살피고 시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그걸 지적해 올바로 갈 수 있도록 해야지 감정을 앞세워 침소봉대(작은 일을 크게 부풀려 말함)해 의원의 책무를 다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질타했다.

이어 불신임안 상정 예고와 관련해서도 “5급 공무원 한 명과 이런 불화를 만들고, 공문을 보냈냐 안 보냈냐, 믿을 수가 있다 없다고 하는 걸 이해할 수가 없다”면서 “만나서 이야기하고 사과하면 되는데 그걸 본회의로 끌고와서 공개 사과를 받아야겠다느니, 의장에게 공문전달을 시키고 문제 삼아 불신임을 한다느니 하는 것은 의원이 할 행동은 아닌 것 같다”고도 했다.

이철조 의원 또한 “(국민의힘) 의총도 했지만 결론을 내진 않았다. 이건 당대당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당과 집행부 한 직원과의 관계에서 생긴 불화이기 때문”이라며 “이번 회기에 다뤄질 안건이 내년도 예산안을 포함해 중요한 것이 많으니 민주당이 당사자와 빨리 해결할 건 해결하고 등원을 해서 회기를 정상화하는데 동참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정례회 파행사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서로 간의 불신과 불만이 극에 달해 언젠가 터질 상황이었으며 수습 또한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한 공무원은 “평소 의장과 의원들, 집행부와 의원들 간의 기류가 심상치 않았다. 해외출장 건은 기폭제였을 뿐이었다”며 “지역화폐 예산이나 조직개편안을 두고도 의견차가 커 협의가 쉽지 않은데 월급은 제때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고양=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