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로맨스’,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04-21 1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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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킬링 로맨스’,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 [쿠키인터뷰]
이원석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이원석 감독은 영화 ‘킬링 로맨스’를 촬영하며 “우주의 기운이 모인다”고 느꼈다. 아내를 통제하려는 남자 조나단 리(이선균)와 남편을 죽이려는 여자 황여래(이하늬), 4년째 서울대에 도전하는 입시생 김범우(공명)가 노래로 한판승을 벌인다는 기상천외한 이야기에 투자가 들어온 것부터가 그랬다.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으로 오스카 트로피를 쥔 배우 이선균과 영화 ‘극한직업’(감독 이병헌)으로 천만 배우 반열에 오른 이하늬·공명이 합류한 것 역시 기적 같았다. 촬영 내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극성을 부려 시나리오를 급히 고치기도 여러 번. 우여곡절 끝에 영화를 완성한 이 감독을 지난 13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도 아니면 모라고 생각했어요. 데뷔작(영화 ‘남자사용설명서’) 때문인지 개성 강한 시나리오가 주로 들어왔는데, ‘킬링 로맨스’ 시나리오는 안정적으로 느껴졌죠. ‘여기에 당신 색깔을 입히면 어떻겠냐’는 제작사 쪽 제안에 연출을 결정했습니다.” 14일 개봉한 영화는 예상대로 호불호가 갈리는 분위기다. 다만 “감독의 머릿속이 궁금하다”는 감상평엔 모두가 공감하는 듯하다. 이 감독은 “낯선 것 같지만 엉뚱하고 웃긴 상황”에서 재미를 찾는다고 했다. “저는 ‘만약’이란 말이 좋아요. 만약을 붙이면 왜를 묻지 않거든요. 그래서 동화를 읽어주는 장면으로 영화를 열었어요. ‘만약’을 대신한 장치예요. ‘왜’를 삼키고, ‘어떻게’에 집중하려 했습니다.”

 “‘킬링 로맨스’,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 [쿠키인터뷰]
배우 이선균이 ‘킬링 로맨스’ 촬영 중 가장 민망했다고 언급한 장면. 그는 초록색 크로마키 스크린 앞에서 이 장면을 연기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SNS 캡처

이 감독은 ‘킬링 로맨스’가 “10명 중 7~8명이 웃을 수 있는 레벨 7~8의 코미디”라고 설명했다. 레벨 5를 매긴 ‘남자사용설명서’보다 대중적인 영화라는 게 이 감독의 판단이다. 그는 “딱 한 명만 웃을 장면도 있었으나 편집했다”면서 “영화가 흥행하면 (편집을 덜한) 감독판을 공개하고 싶다”고 바랐다. 그가 들려준 편집 장면은 과연 이원석스러웠다. “여래와 범우가 창문에 글씨를 써서 대화하는 장면 있잖아요? 다른 창가에 있던 조나단이 그 글을 자신에게 보내는 것으로 착각해 답글을 쓰는 장면이 있었어요. 창문에 ‘펌글’을 빽빽하게 적는 거였죠. 여래바래(여래 팬클럽) 3기 총무인 이영찬(배유람)이 웃통을 벗고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부르는 장면도 있었어요. 여래가 은퇴한 날이 10월30일이라 그날을 기억하며 노래하는 거죠. 이 정도는 레벨3예요.”

어쩌면 이 감독의 바람이 이뤄질지도 모른다. 개봉 첫날 CGV에서 골든에그지수(평점) 61%로 출발한 ‘킬링 로맨스’는 6일째인 20일 점수를 70%까지 높였다. 작품에서 조나단과 여래가 각각 노래 ‘행복’과 ‘여래이즘’을 무기로 싸우는 장면이 특히 인기다. 온라인에선 ‘SM과 JYP의 대결’이란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배급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는 마니아들 요구를 고려해 싱어롱 이벤트도 고려하고 있다. 또 다른 중요한 곡은 여래가 부르는 전인권의 ‘제발’. 온라인 밈(meme) 덩어리 같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현실감을 가진 노래다. 이 곡엔 비화도 있다. 이하늬가 촬영장에서 라이브로 부른 노래에 소음이 섞여 영화에 싣지 못할 뻔했으나, 달파란 음악감독 등이 소음 하나하나를 걷어내 라이브 버전을 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킬링 로맨스’,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 [쿠키인터뷰]
‘킬링 로맨스’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미국에서 광고를 공부해 젊은 시절 ‘광고쟁이’로 살았던 이 감독은 “보고 나서 물고 뜯으며 화자로 개입하게 하는 게 영화의 힘”이라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킬링 로맨스’는 영화의 맛을 즐기게 할 작품이다. 이 감독 아내와 딸도 영화를 본 뒤 서로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재밌기만 하다. 이해 못 하는 엄마가 꼰대’라며 싸웠다고 한다. 이 감독은 “레벨 8~9짜리 코미디를 잘 만드는 사람은 이미 많다”면서 “주변에서 욕을 먹더라도 후회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돌아보면 모든 게 ‘민트 투 비’(meant to be·이렇게 될 운명)였어요. 최선을 다한 배우들, 제 길을 응원하는 동료 감독들, ‘뭔가 만들어보자’며 힘을 북돋아 준 제작사 대표들, 내 일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일깨워준 모니카 선생님…. 코로나19로 결말이 촬영 이틀 전에 바뀌는 등 힘든 일이 많았지만, 이 모든 사람이 제게 용기를 줬어요. 사람들을 흥분시켜 신나는 경험을 하게 만드는 것이 ‘킬링 로맨스’로 이루고 싶은 제 바람입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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