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북’ 민경아 “있는 그대로가 좋아”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05-12 06: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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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북’ 민경아 “있는 그대로가 좋아” [쿠키인터뷰]
뮤지컬 ‘레드북’에 출연 중인 배우 민경아. 아떼오뜨

타인에 의해 틀린 존재로 규정되는 이의 삶은 어떨까. 세상으로부터 목소리가 지워진 사람 안에는 어떤 이야기가 쌓여 있을까. 뮤지컬 ‘레드북’은 별종으로 분류돼 사회에서 밀려난 이들에게 귀를 기울인다. 주인공 안나를 통해서다. 안나는 작가다. 그는 여성의 연애와 성 경험을 소설에 풀어내 파란을 일으킨다. 배경은 여성이 자기 신체를 언급할 수 조차 없었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 안나는 노래한다. “내가 나라는 이유로 사라지는/ 티 없이 맑은 시대에/ 새카만 얼룩을 남겨/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배우 민경아는 안나를 “평범한 여자”로 봤다. 금기를 깨고 세상을 뒤집은 안나가 ‘평범하다’니. 지난 3일 서울 원남동 한 카페에서 만난 민경아는 “안나는 솔직하고 당당한 여성이지, 별난 사람이 아니다. 세상이 안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규정했을 뿐”이라는 해석을 들려줬다. 그래서일까. 민경아가 표현하는 안나는 실제 인물처럼 생생하다. 그는 “안나를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뭔가를 더하려고 하진 않았다”며 “그저 솔직하고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민경아는 2년 전 온라인 생중계로 ‘레드북’을 처음 봤다.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과연 메시지가 선명하고 신선해서 좋아 ‘언젠가 나도 출연하고 싶다’고만 상상했다”고 한다. 서정적인 음악과 탄탄한 극본은 창작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탄생시킨 이선영 작곡가와 한정석 작가의 솜씨다. 팬들 사이에선 ‘갓극’으로 불리는 데다가,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작품상을 두 번이나 받았을 만큼 완성도가 높기로는 명성이 자자하다.

‘레드북’ 민경아 “있는 그대로가 좋아” [쿠키인터뷰]
‘레드북’ 공연 실황. 아떼오뜨

안나를 이해하는 첫 열쇠는 ‘난 뭐지?’라는 질문이었다. 민경아는 “안나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인물”로 이해하고 캐릭터에 접근했다. 둘은 닮은 점이 많았다. 발랄한 성격, 솔직한 매력, 그리고 꾸밈없이 존재하려는 열망이 비슷했다. “있는 그대로가 좋아.” 민경아가 SNS 대문에 건 팻말이 이를 반증한다. “나다운 내가 좋다는 뜻으로 적은 문구예요. 남들 시선에 나를 맞추지 말자. 내 모습 그대로 살다 보면 누군가는 나를 응원할 것이다. 그렇게 믿으면서요.” 민경아는 이렇게 말하며 웃어 보였다.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노래 ‘소년과 소녀’를 부를 때. 동료 여성 작가 도로시가 안나를 위로하며 부르는 곡이다. “삶을 부정당한 안나가 혼란에 빠져 무너지기 직전, 도로시가 부르는 이 노래 덕에 안나는 자기 삶과 이야기에 확신을 얻어요. 고마운 장면이죠.” 민경아의 해설처럼, 안나가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동료 작가 등 주변인들과의 연대에서 나왔다. 글 쓰는 여자를 별종 취급하던 사람들에게 떠밀리던 안나를 동료 작가들은 이렇게 위로한다. “안나. 우리는 이상한 게 아니에요. 우리는 우릴 위로할 방법을 알고 있는 거예요.” 민경아는 “그들을 보며 나도 위안을 많이 얻는다”고 말했다.

“제가 저다울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사람, 있어요. 저를 응원해주고 제 진심을 알아주는 동료들과 친구들이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걱정되고 주눅 들 때면 ‘꾸미지 않은 네가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에요. 배우라는 직업은 악평과 미움도 견뎌야 하잖아요. ‘조롱을 끌어안고/ 비난에 입을 맞춰/ 나를 슬프게 하는 모든 것들과/ 밤새도록 사랑을 나눠’라고 말하는 노래 ‘나는 야한 여자’ 가사를 부르며 저도 용기를 많이 얻었습니다.”

‘레드북’ 민경아 “있는 그대로가 좋아” [쿠키인터뷰]
민경아. 아떼오뜨

2015년 뮤지컬 ‘아가사’로 데뷔한 민경아는 지고지순한 귀족 집안의 딸(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엠마)부터 ‘똘끼’ 넘치는 행위 예술가(뮤지컬 ‘렌트’ 모린)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그는 “진취적이고 당당한 캐릭터가 좋다”고 했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 뮤지컬 ‘웃는 남자’ 속 데아, 여리고 연약한 뮤지컬 ‘레베카’의 이히를 연기할 때도 그는 캐릭터에 강인함을 불어넣었다. 민경아는 “두 캐릭터를 다시 연기한다면 좀 더 성숙한 버전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며 “드라마나 연극처럼 노래 없이 연기로만 승부하는 장르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안나가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이라는 답을 발견했듯, 저도 제가 누구인지 알아가고 있어요. 아직 완벽한 답을 찾진 못했어요. 다만 저는 사랑과 행복이 중요한 사람이자 순수함을 잃지 않고 싶은 사람 같아요. 어느새 데뷔 10년 차가 됐는데 마치 이제 (일을) 시작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고요. 그러니까 ‘난 뭐지?’에 대한 제 답은 ‘~ing’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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