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 머니, 스포츠를 지배하다

유럽 축구 구단 인수, 세계적인 선수들 사우디 리그 이적 활발
축구 외에도 골프, WWE, F1 등에도 오일 머니 뻗어지고 있어
중동의 스포츠 투자와 관련해 인권 문제 묻히려는 ‘스포츠 워싱’ 시각 존재 

기사승인 2023-06-23 12: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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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 머니, 스포츠를 지배하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 맨시티는 UAE의 부통령 셰이크 만수르가 구단주다. EPA 연합

최근 스포츠의 중심은 중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축구 스타가 막대한 이적료를 받으면서 사우디아라비아 리그로 거취를 옮기고 있으며, 카타르는 지난해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에 이어 내년 1월에는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을 개최하는 등 ‘메가 이벤트’를 연달아 진행한다.

중동 국가들이 스포츠에 열을 올리는 건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셰이크 만수르 아랍에미리트(UAE) 부통령이 2008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시티(맨시티)를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중동 자본이 스포츠로 본격적으로 넘어왔다. 2012년에는 카타르투자청 산하 스포츠 투자전문회사인 카타르 스포츠 인베스트먼트가 프랑스 리그앙의 파리생제르맹(PSG)을 품었다. 두 구단은 ‘오일 머니’를 등에 업은 뒤 내로라하는 슈퍼스타를 꾸준히 영입했고, 우승컵을 꾸준히 들며 각 국가를 대표하는 리그로 거듭났다.

특히 맨시티는 지난 11일(한국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2023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인터 밀란을 꺾고 창단 첫 ‘빅 이어(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유럽 축구의 최강자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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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겨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알 나스르로 이적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로이터 연합

2021년을 기점으로 오일 머니의 스포츠 침공은 더욱 본격적으로 뜨거워졌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가 실권을 잡으면서 스포츠 산업에 대한 투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3억500만파운드(약 4950억원)에 인수한 뒤 세계 최고의 부자 구단이 됐다. 뉴캐슬은 지난 시즌 EPL 4위에 위치하며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내는 등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하는 선수들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겨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알 나스르로 이적하며 화제를 모았다. 호날두는 2025년 6월까지 매년 연봉과 광고 등을 합쳐 2억 유로(약 2700억원)를 수령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호날두를 시작으로 카림 벤제마와 은골로 캉테(이상 알 이티하드) 등 슈퍼스타들이 연이어 사우디아라비아 티켓을 끊었다. 최근 인터뷰를 통해 EPL 잔류를 선언하기도 했지만, 대표팀 주장 손흥민(토트넘)도 사우디아라비아 구단의 제안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도 막대한 연봉을 제안받기도 했지만, 그는 미국행을 결정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구단들은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는 선수들에게 손을 뻗고 있다. 특히 황희찬(울버햄튼)의 동료였던 후벵 네베스가 알 힐랄로 이적이 기정사실로 되자, 축구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26세에 불과한 네베스는 최근 뛰어난 기량을 보이며 FC바르셀로나, 리버풀 등과 연결됐는데, 돈을 보고 커리어를 포기한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이외에도 베르나르두 실바(맨시티), 칼리두 쿨리발리, 하킴 지예흐(이상 첼시), 로멜루 루카쿠(인터 밀란) 등 아직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 선수들도 사우디아라비아 구단들의 제안을 받고 고민을 거듭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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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A에서 LIV로 이적한 필 미켈슨. AP 연합

축구를 넘어 이제 오일 머니는 골프, 프로레슬링, 포뮬러 원(F1) 등 다양한 종목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PIF는 지난해에는 LIV 골프를 창설해 세계 정상급 남자 골프 스타를 대거 빼가면서, 오랜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던 미국프로골프(PGA)투어를 집어삼켰다. 필 미켈슨, 브룩스 켑카, 더스틴 존슨, 캐머런 스미스 등 특급스타들이 거액의 이적료를 받고 잇달아 LIV로 옮기면서 PGA는 근간마저 흔들렸다.

앙숙지간이던 PGA와 LIV는 최근 우여곡절 끝에 전격 합병을 발표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일단 봉합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양측의 합병은 사실상 명가의 자존심을 내세웠던 PGA가 돈의 위력을 내세운 LIV에 굴복한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월드 레슬링 엔터테인먼트(WWE)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막대한 투자를 받아 프리미엄 라이브 이벤트(PLE) 일부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최하고 있다. WWE는 과거 은퇴했던 선수들까지 복귀시키면서 무리하게 PLE를 진행하다가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국제 스포츠 이벤트 유치에도 시동을 걸었다. 카타르에서 월드컵과 아시안컵이 열리는 데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2034년 아시안게임(리야드)과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네옴시티)을 유치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에 그치지 않고 2030년 월드컵 개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를 위한 초석으로 2027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 이어, 2023 FIFA 클럽월드컵 개최권을 따냈다. 또 2026 AFC 여자 아시안컵 유치도 추진 중이다. 2036년 올림픽 유치를 통해 ‘중동 최초의 올림픽’ 타이틀을 획득한다는 목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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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독일 분데스리가 경기 중 관중석에 카타르 월드컵 보이콧 문구가 적힌 걸개가 올라왔다. AP 연합

이같이 중동 국가들이 최근 스포츠에 열을 올리는 까닭으로는 국가 브랜드 이미지 개선이 꼽힌다. 국가 경제에서 석유 산업 비중을 낮추고, 경제·사회 개혁을 통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길 바라고 있다. 다만 중동 산유국들의 스포츠 산업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유명 대회나 선수 유치 식의 보여주기 조치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각에서는 국가에서 불거지는 외국인 노동자 인권 문제, 여성 차별,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 극단주의 성향의 무장단체 지원 의혹 등의 이슈를 스포츠로 잠재우기 위한 ‘스포츠 워싱(Sports Washing)’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스포츠를 앞세운 이미지를 세탁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카타르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저임금, 위험한 근무 환경, 열악한 거주시절 등을 카타르 월드컵으로 잠재우려 한다는 의혹에 큰 비판을 받기도 했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ESPN은 중동 국가들의 스포츠 워싱과 관련해 “인권 침해와 자유의 부족에서 관심을 돌리려는 시도라고 생각하든 아니든, 현실은 스포츠와의 연결이 반대의 효과를 가져 지역 전체에 걸쳐 문제들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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