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출판 노동의 무거움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3-09-18 06: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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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출판 노동의 무거움 [쿠키청년기자단]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청년 출판노동자들이 이직을 넘어 탈출판을 꿈꾸고 있다. 연합뉴스

책 한 권은 가볍지만, 만드는 일은 가볍지 않다. 출판노동자들은 극심한 업무량과 야근에 시달린다. 하지만 포괄임금제로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과 외주 제작이 많은 구조에 처해있어 갑질, 부당해고 등의 문제도 빈번히 발생한다. 청년 출판노동자들은 이직을 넘어 ‘탈출판’을 꿈꾸고 있다.

출판노동자 1명이 만드는 책은 연간 최소 5권~7권이다. 두 달에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셈이다. 곧 1년 차가 되는 편집자 이정민(20대·여·가명)씨의 근무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그러나 오후 8시를 훌쩍 넘겨 퇴근할 때가 다반사다.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하기도 한다. 이씨는 과로로 인한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씨는 “한 달 근무일 중 절반 이상 야근을 하고 있다”며 “정신이 아득해질 때가 자주 있다”고 말했다. 이씨가 많은 업무량을 소화해야 하는 이유는 무리한 출간 일정에 있다. 신간이 계속 발행되어야 매출이 늘기 때문에 회사가 무리한 일정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출판 마감 기간이 아닌 때가 없다”면서 “매 순간 일정이 급박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갑질과 괴롭힘도 탈출판을 꿈꾸게 만드는 요소다. 8년 차 편집자 김현지(30대·여·가명)씨는 6년 전 다녔던 회사 사장으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김씨는 ‘너는 여기서 나가면 아무것도 아니다. 뽑아준 걸 고맙게 여기고 엎드려서 절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김씨는 매출에 따라 직원에게 갑질을 하는 대표도 있다고 했다. 직원들의 능력 부족으로 인해 매출이 적은 것이라며 이런 이유로 더 많은 일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작은 출판사일수록 갑질 문제가 두드러지는 것 같다”며 “이런 곳은 사장 한 사람의 입김이 굉장히 세다”고 말했다. 출판업계 내 5인 미만 출판사의 비율은 70%에 달한다.

참을 수 없는 출판 노동의 무거움 [쿠키청년기자단]
지난 5월1일 열린 비정규직 긴급행동 집회에서 출판노조가 발언하고 있다. 출판노조 SNS

열악한 근무 환경에도 출판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출판업계 대부분이 포괄임금제로 근로계약을 맺기 때문이다. 포괄임금제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연장, 야간근로 등의 수당을 미리 정해 월급에 이를 포함하여 지급하는 방식을 말한다. 출판노동자들은 포괄임금제로 인해 야근수당을 받지 못한다. 대신 대체 휴무가 제공된다. 하지만 출판노동자들에 따르면 야근 다음 날 휴무 없이 출근하는 게 당연시되는 분위기로 대체 휴무 사용 또한 자유롭지 않다.

임금 수준도 낮은 편이다. 출판노동조합협의회에서 공개한 ‘출판계 연 소득 공개’에 따르면 1년 차 이상~3년 차 미만 출판노동자 중 연봉 2400만~2700만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35%로 가장 많았다. 3년 차 이상~5년 차 미만 출판노동자의 경우 연봉 3000만~3300만이 27%, 5년 차 이상~7년 차 미만 출판노동자는 연봉 3600만~4000만이 25%로 가장 많았다. 김씨는 “책을 읽는 사람이 줄어 판매가 저조해지고, 매출이 줄어들고 있다”며 “일은 많고 급여는 오르지 않으니 미래를 막막해하는 동료들이 많다”고 말했다.

무리한 업무량, 포괄임금제와 낮은 급여, 불안정한 고용이 청년 출판노동자들을 회사 밖으로 내몰고 있다. 출판업계 내 평균 근속연수는 2~3년밖에 되지 않는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출판업계의 구조적 한계가 악순환을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표 평론가는 “출판산업의 자본 규모가 타 산업에 비해 작은 것은 사실”이라며 “이 때문에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출판업계는 경기 불황, 매출 부진 같은 업계 상황이 고용에 민감하게 영향을 끼친다”며 “이로 인해 인력 감축이 발생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김아현 쿠키청년기자 ahkim1229@naver.com 기사모아보기